열린경제

한진수 2008. 5. 24. 04:49

선택, 선택, 선택, 그리고 또 선택

고등학생인 왕 선택군은 매일 아침 휴대전화의 알람시계 소리를 들으면서, 30분만 더 잘지 아니면 지금 일어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일어나면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등교할 수 있지만, 30분 더 자면 만원버스에 시달린 채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만원버스의 고통이 싫어, 당장 일어나기를 선택합니다.

주말에 왕 선택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할인 쿠폰을 쓸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먹고 싶은 수십 가지 메뉴 가운데 한 가지만을 선택합니다.

왕 선택 학생이 살고 있는 집은 다음 달에 전세 계약이 끝나는데, 아버지께서는 계속 그 동네에서 살지,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강남에 집을 구입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집을 산다면 아파트, 연립주택, 단독주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 선택 학생의 어머니는 매달 생활비를 절약해 만든 목돈을 이자율이 낮은 은행에 예금할지, 아니면 대박을 기대하고 주식을 살지, 그것도 아니면 친구들의 추천대로 신도시 부근에 땅을 살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며,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선택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호기심

오래 전에 모 방송국 프로그램 가운데 지금은 대스타가 된 이휘재씨가 출연했던 '인생극장'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A라는 선택을 할 때의 인생과 B라는 선택을 할 때의 인생을 대비시켜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꽤 인기를 얻었습니다.

또 외국 영화 가운데 유명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우(Gwyneth Paltrow)가 주연했던 '슬라이딩 도어즈(Sliding Doors)'도 순간의 선택에 따라 인생이 어떻게 달리 전개되는지를 보여주었는데, 역시 많은 관객을 모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가지 옵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우리 가운데 선택을 한 이후에 후회하면서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지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 작품의 성공 비결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 상태를 적절하게 공략했고, 호기심을 대리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잘 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경제학

우리가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며, 잘못된 선택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합니다. 매우 간단한 선택의 문제의 경우에는 왕 선택 학생이 비교적 쉽게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왕 선택 학생에게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를 결정하기 어렵거나 복잡한 문제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때 왕 선택 학생은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그 도우미가 바로 경제학입니다. 경제학은 어떻게 하면 선택을 잘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학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라 합니다. 즉, 경제학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그리고 단순하고 복잡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선택이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택인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경제학의 연구 대상은 우리 주의의 삶 모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의 진학 선택, 나의 직업 선택, 나의 배우자 선택, 나의 주거지 선택, 기업의 생산 선택, 정부의 정책 선택 등등이 모두 경제학의 연구 대상입니다. 한마디로 경제학이 분석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경제학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거나 성인이 되면, 선택을 부모님에게 의존하기 어렵고, 본인 스스로 책임지고 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그렇다고 친구나 주위의 전문가들이 나의 선택 문제를 항상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자신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어린 자녀의 선택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학을 배워야 합니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선택의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경제학의 내용과 경제 원리를 잘 이해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보다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서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으며, 더 복잡한 선택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희소하기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을 잘해야 할까요?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희소성(scarcity) 때문입니다. 왕 선택 학생은 오늘 용돈 1만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돈을 가지고 영화도 보고 싶고, 피자도 먹고 싶고, 책도 사고 싶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중에 있는 1만원을 가지고는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왕 선택 학생이 갖고 있는 돈은 희소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왕 선택 학생은 희소한 1만원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왕 선택 학생이 아침에 잠을 더 잘지 아니면 일어날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도 시간이 희소하여,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어느 물건을 생산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도 생산요소와 예산이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사업이나 정책을 선택해야 하는 것도 세입이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도 선택해야

희소성과 관련해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삼성 그룹의 이 건희 회장은 돈이 매우 많으므로 '이건희 회장에게는 돈이 희소하지 않다'는 오해입니다. 이 건희 회장도 1천만 원을 가지고 자동차를 살 경우, 그 돈으로는 해외 여행을 할 수 없게 되므로, 역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희소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희소성은 상대적인 개념

'개수가 적은 재화가 희소하다'는 오해도 많이 합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의미에서의 희소성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절대적인 개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적인 의미에서 희소성을 정의합니다. 즉, 어떤 재화가 아무리 많더라도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면 경제학에서는 그 재화를 희소하다고 부릅니다. 반대로 재화의 개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사람들이 그 재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에서는 그 재화를 희소하지 않다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지구에 있는 나무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따라서 수학적으로는 나무의 수는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가지고 인간이 하고 싶어하는 욕구, 예를 들어 집도 짓고, 땔감도 하고, 종이도 만드는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지구에 존재하는 나무가 부족하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나무를 희소한 재화라 부릅니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386 컴퓨터의 수가 몇 백 대에 불과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386 컴퓨터는 희소하지 않은 재화입니다. 이에 비해 펜티엄 컴퓨터는 천만 대가 존재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펜티엄 컴퓨터는 희소한 재화입니다.

즉, 경제학에서 재화의 희소성은 그 재화의 절대적인 숫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희소성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대가가 필요하면 경제재, 공짜이면 자유재

우리 주변에서 희소한 재화는 대가를 치러야만 얻을 수 있으며, 희소하지 않은 재화는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는 재화를 경제재(economic goods)라 하며,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는 재화를 자유재 또는 무료재(free goods)라 합니다. 현재 자유재의 예로는 바닷물이나 바닷가의 모래나 공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번 자유재는 영원히 자유재?

인구가 많아지면서 희소하지 않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자유재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도처에 있는 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식수는 희소하지 않은 자유재였습니다. 봉이 김선달이 유명한 것은 공짜인 자유재를 돈을 받고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게에서 식수(생수)를 돈을 받고 파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이제 식수가 희소해졌기 때문이며, 오늘날 식수는 더 이상 자유재가 아니라 경제재입니다.

지금은 자유재인 공기 역시 미래에는 경제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지금도 일부 기업이 한라산이나 스위스의 맑은 공기를 캔에 담아 팔고 있습니다. 벌써 '신선한 공기'는 경제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 다음 주제: 기회비용(공짜 점심은 없다!)

^*^ 한진수와 함께 하는 경제이야기(http://plaza.ginue.ac.kr/~js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