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경제

한진수 2008. 5. 24. 11:35

시간이 필요한 소비

우리는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 대개 시간까지 함께 소비합니다. 소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비교적 긴 경우에는 시간이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이나 영화 관람의 경우에는 비교적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시간을 고려하는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왕 선택 학생은 친구들과 영화를 보려고 합니다. 왕 선택 학생이 영화를 보는 비용은 얼마일까요? 학생 영화요금 6,500 원이 비용의 전부인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6,500 원은 영화를 소비할 때 지불해야 하는 금전적인 비용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경우에는 금전적 비용 외에도 시간비용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 왔다 하는 시간과 영화를 보는 시간을 모두 합해 4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기회비용

그런데 시간이 무슨 비용이냐고요? 여기에서 다시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기회비용이 제기됩니다. 물론 우리는 시간을 소비할 때 직접 돈을 지불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공짜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며 경제학적 사고를 지니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 강의의 두 번째 주제에서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면서 기회비용의 의미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기회비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시간비용을 이해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왕 선택 학생은 영화를 보기 위해 필요한 4시간 동안 숙제나 독서 등 다른 기회를 활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를 포기한 채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4시간의 기회비용은 왕 선택 학생이 그 동안에 할 수 있었던 다른 행위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이나 효용입니다.

예를 들어 왕 선택 학생이 4시간 동안 공부를 해서 언어 점수를 2점 올릴 수 있었는데 영화를 보러 갔다면 4시간의 기회비용은 점수 2점에 해당됩니다. 만약 왕 선택 학생이 4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2만 원을 벌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하고 영화를 보았다면, 영화를 보는 비용은 표값 6,500 원과 기회비용 2만 원을 합한 26,500 원입니다.

잊지말자! 시간의 기회비용

이렇듯 시간의 기회비용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큽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간비용을 잊고 의사결정을 한다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의사결정을 할 때 절대로 시간의 기회비용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이와 비슷합니다. 가족이 일 주일 동안 해외여행을 가는 비용은 여행사에 지불해야 하는 여행 경비가 전부가 아닙니다. 가족이 일 주일 동안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이득이나 효용이 여행의 총비용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놀이동산과 시간의 기회비용

시간이 의사결정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놀이동산에서의 놀이기구입니다. 왕 선택 학생은 화창한 주말에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가자마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바이킹' 타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렇지만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옆에는 '여기서부터 예상 대기시간 1시간'이라는 팻말이 놓여있었습니다.

왕 선택 학생은 1시간을 기다려서 좋아하는 바이킹을 탈 것인지, 아니면 바이킹을 포기하고 줄이 짧은 다른 놀이기구를 탈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제 왕 선택 학생은 1시간의 기회비용에 기초해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예상 대기시간은 식당의 요금표

이처럼 놀이동산에서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도와주기 위해 곳곳에 예상 대시시간을 알려주는 팻말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해서 예상 대기시간을 알려주는 팻말은 고객들이 그 놀이기구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며, 이는 마치 식당의 메뉴판 또는 요금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잊자! 매몰비용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때 시간의 기회비용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의사결정을 할 때 잊어야 하는 비용이 있습니다. 그런 비용을 매몰비용(sunk cost)이라 합니다. 물 속에 가라앉아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미입니다. 매몰비용의 의미와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라면 정말 매몰비용을 잊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봅시다.

헛된 과목을 공부한 왕 선택 학생

기말고사를 일 주일 앞둔 왕 선택 학생은 가장 어려워하는 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말고사 전날 수학 선생님께서 수학 시험을 보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왕 선택 학생은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억울했습니다. 지난 일 주일 동안 수학 공부하느라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험을 하루 앞둔 왕 선택 학생은 무슨 과목을 공부해야 할까요? 이 의사결정에서 왕 선택 학생이 고려해야 할 요인은 '앞으로 남은 하루 동안에 무슨 과목을 공부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은 잊어야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일 주일 동안 수학 공부에 투자했던 시간이 바로 매몰비용입니다. 지금부터 어떤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잊어버리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면 됩니다. 즉, 앞으로의 의사결정을 할 때 매몰비용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원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또는 매몰비용을 잊지 못하고 매몰비용에 연연해하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위의 예에서 왕 선택 학생이 지난 일 주일 동안의 시간을 아까워해서 오기로 시험을 보지도 않은 수학 공부를 계속한다면 분명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남은 시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만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왕 선택 학생은 시험을 보는 국어와 영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매몰비용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매몰비용은 금전적인 비용일 수도 있고, 시간비용일 수도 있습니다. 위의 기말고사의 경우에는 매몰비용이 시간이며, 왕 선택 학생은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매몰비용이 시간과 관련된 것인 경우에, 비교적 잘 잊어버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시간을 경시하고 있어, 미련을 두지 않고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비해 매몰비용이 돈과 관련된 것이면, 사람들은 매몰비용을 잊지 못하고 미련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또 다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더욱 커다란 손실을 입는 우를 범합니다.

극장 요금은 매몰비용

왕 선택 학생은 영화를 보러 갔는데, 30분 정도 보다 보니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만 보고 집에 가서 숙제나 할까 아니면 계속 볼까 고민하다가, 왕 선택 학생은 6,500 원이라는 요금이 아까워 그냥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왕 선택 학생은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요? 선택의 기준이 잘못되었습니다. 왕 선택 학생이 지불한 극장 요금 6,500 원은 매몰비용입니다. 그가 30분만에 나가든, 1시간만에 나가든 한 푼도 환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즉, 왕 선택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 회수할 수 없는 비용입니다.

재미없는 영화를 계속 보면 잘못된 선택

그렇다면 왕 선택 학생은 매몰비용인 극장 요금 6,500 원은 잊고, 남은 영화 상영시간 2시간 동안 집에 가서 숙제를 하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그냥 재미없는 영화라도 보는 것이 나은지를 비교해서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집에 가서 숙제를 하는 것이 왕 선택 학생에게 더 큰 효용을 줌에도 불구하고 6,500 원이 아까워 계속 영화 보기를 선택한다면, 왕 선택 학생은 재미없는 영화를 보기로 잘못 선택한 데 이어, 2시간을 또 다시 낭비하는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게 됩니다.

속담 속의 매몰비용

서양에 'Let bygones be bygones'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난 일은 따지지 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도연명 시인은 '옛날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걱정하자'라고 했습니다. 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모두 매몰비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며, 매몰비용을 잊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제의 원리를 충실하게 지켜온 조상들의 현명한 가르침입니다.

 

*** 다음 주제: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

^*^ 한진수와 함께 하는 경제이야기(http://plaza.ginue.ac.kr/~js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