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경제

한진수 2008. 5. 24. 11:42

어떤 요인으로 인해 시장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데 실패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합니다. 정부가 이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세금(tax)입니다.

세금의 중요성

왕 선택 학생의 어머니께서 가계 살림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수입이 안정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국가 역시 살림살이를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이 필수적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정부에게 부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면 국민들로부터 거센 조세 저항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안정마저 해치게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금을 현명하게 거둔다면, 필요로 하는 재원을 조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빈부의 격차를 축소시킬 수 있는 소득재분배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적절한 양의 세금을 적절한 방법으로 거두도록 고민합니다.

담세자 vs. 납세자; 간접세 vs. 직접세

왕 선택 학생은 인터넷 교육방송을 보기 위해 컴퓨터를 110만원에 구입했습니다. 이때 왕 선택 학생이 지불한 110만원에는 컴퓨터 가게 주인이 받으려고 했던 가격 100만원 외에 부가가치세 10만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받은 영수증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누가 부가가치세를 부담하며, 누가 세금을 정부에게 납부할까요? 왕 선택 학생이 담세자가 되어 세금을 실제로 부담한 것이고, 컴퓨터 가게 주인은 납세자가 되어 정부에 세금을 납부(지불)한 것입니다. 이처럼 부가가치세의 경우에는 세금을 부담하는 담세자와 세금을 정부에게 납부하는 납세자가 다릅니다. 이런 종류의 세금을 간접세라 부릅니다.

이에 비해 담세자와 납세자가 일치하는 세금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 선택 학생의 아버지께서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해서 재산세가 부과되는데, 아버지는 재산세를 정부에게 납부하므로 담세자와 납세자가 일치합니다. 이처럼 담세자와 납세자가 일치하는 세금을 직접세라 부르며, 직접세에는 재산세, 소득세, 법인세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세의 세목별 비중(2003년)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교통세

관세

기타

18.1%

22.4%

29.2%

8.7%

6.0%

15.6%

 

영수증을 받아야 하는 이유

담세자와 납세자가 다른 간접세의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가게 주인이 왕 선택 학생이 지불한 부가가치세를 정부에게 제대로 납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상품을 파는 가게 주인들 모두의 양심에게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는 탈세를 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탈세 증거가 잘 남지 않아 적발될 확률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문을 보면 실제 매출액보다 적게 신고하여 내야할 세금을 적게 낸 사람이 적발되었다는 탈세 소식이 나오곤 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탈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국세청이 인력을 늘려 이런 가게를 적발하고 적발되었을 경우 처벌을 강하게 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국세청이 무작정 인력만 늘릴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소비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다행히도 있습니다.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한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좋은 소식일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래할 때만다 영수증을 받으면 됩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가게 주인이 영수증을 발급하면, 가게의 매출액이 전부 국세청에 의해서 포착되고 고객이 지불한 부가가치세는 전액 정부에게로 납부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의 물건이라도 영수증 주고받기가 생활화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선진화된 나라입니다. 영수증 받기는 소비자의 권리이자 의무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소비자는 항상 봉인가?

조세는 조세법에 명시된 대로 국민에게 부과됩니다. 정부가 컴퓨터 제조업체에게 법인세를 부과했다고 합시다. 이 세금은 누가 부담할까요? 컴퓨터 제조업체, 즉 생산자가 부담할까요? 아니면 소비자가 부담할까요?

만약 이 기업이 법인세 부과 이후 컴퓨터 가격을 인상한다면, 가격이 인상된 만큼 소비자가 세금을 부담하는 꼴이 됩니다. 이처럼 기업이 소비자에게 세금 부담을 떠넘기는 현상을 조세의 전가라 부릅니다. 그러면 기업은 세금 전체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을까요? 기업은 세금을 얼마나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을까요?

기업이 세금을 전가할 수 있는 힘은 제품 가격이 인상되었을 때 소비자들이 수요량을 얼마나 줄이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격탄력성에 따라 달라져

만약 가전제품 가격이 인상되었을 때 소비자들이 수요량을 조금만 줄인다면(즉,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작다면), 기업은 비교적 마음놓고 가격을 인상할 수 있으며 세금의 대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가전제품 가격이 인상되었을 때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여 수요량을 크게 줄인다면(즉,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크다면), 기업은 가격을 큰 폭으로 인상할 수 없으며 세금의 대부분을 자신이 부담하게 됩니다.

결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힘이 약하며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하는 제품이라면 기업은 세금의 대부분 또는 전부를 소비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강하고 기업끼리의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기업이 세금의 대부분을 부담합니다.

 아파트에 부과된 세금의 경우

정부는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의 일환으로 일부 투기 지역의 경우 세금을 큰 폭으로 인상했습니다. 이 세금은 아파트 판매자와 구매자 가운데 누가 부담할까요? 정부의 세금 강화 정책으로 인해 6억 짜리 고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파트를 팔 때 이전보다 5천만원의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합시다.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이 이 세금을 전부 부담할까요?

인기 있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사려는 사람이 항상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제 용어로 초과수요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아파트 판매자가 아파트 구매자보다 더 커다란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경우 아파트 판매자는 추가로 부과된 세금 5천만원을 아파트 가격에 반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판매 가격을 5천만원 인상하더라도 수요자는 아파트를 삽니다. 약간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인기가 별로 없는 아파트라면 모르겠지만, 인기가 매우 좋은 아파트의 경우에는 가격이 6억원에서 6억 5천만원으로 오르고,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세금을 내는 꼴이 됩니다.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 조세부담률

어느 나라든지 세금을 충분히 걷는 것이 국가 운영의 전제조건입니다. 세금이 충분히 걷히지 않는다면,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세금은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세금을 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득도 충분하지 않은데, 거기에 세금까지 내라니 말입니다. 또 자신이 내는 세금만큼 국가가 자신에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의 크기나 비중을 측정하는 지표로 조세부담률이 있습니다. 국민이 부담하는 각종 세금액을 그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입니다. 2004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2.6%로 추정되며, 이는 국민 일인당 일 년에 318만원을 각종 세금으로 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증가 추세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확실시됩니다. 그 이유는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빚을 많이 졌는데, 어쨌든 정부는 이 빚을 갚아야 합니다. 정부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세금을 많이 거두는 길밖에 없습니다.

복지 지출에 대한 요구도 많아져

조세부담률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으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선진화됨에 따라 경제 구조도 선진국형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복지에 대한 요구 수준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복지 관련 지출 통계를 봅시다. 2001년 기준으로 각국의 사회복지 지출 규모를 그 나라의 경제 규모(GDP, 국내총생산)로 나눈 비율을 보면 스웨덴 29.5%, 독일 28.8%, 프랑스 28.5%입니다. 물론 모든 회원국의 비율이 이처럼 높은 것은 아닙니다. 영국은 22.3%이며, 캐나다 17.8%, 일본 17.5%, 미국 15.2%입니다. OECD 회원국의 전체 평균은 22.4%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일까요? 짐작해보세요. 답은 8.7%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와 성장 단계를 고려할 때 선진국들에 비해서 보잘 것 없이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사회복지 관련 지출이 증가하는 일만 남았다는 점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요구하고, 정부가 결심한다고 해서 복지 지출을 그냥 쉽게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입이 있어야 지출을 할 수 있지요. 모든 일에는 비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결국 정부로서는 세금을 더 거두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웃지 못할 세금들

왕 선택 학생의 아버지도 세금 홍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받는 임금에서 소득세를 내시고,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마실 때 주세와 교육세를 내시고, 에어컨을 구입할 때 특별소비세를 내시고, 외제물건을 살 때 관세를 내십니다. 누구나 세금 없는 세상을 꿈꾸곤 하지만, 말 그대로 꿈에 그칩니다. 역사적으로 별의별 세금이 다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지금 내고 있는 세금들은 양반이라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17세기의 영국 왕 윌리암 3세(William III) 때에는 벽난로가 있는 호화주택에 대해 벽난로세가 부과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 벽난로가 있는지를 정부가 조사하기 어려워지자, 집 외부에서도 손쉽게 판단할 수 있는 창문의 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터무니 없는 세금과 관련해서 경제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창문세(window tax)입니다.

사람들은 부당한 세금에 대해 저항해

여러분은 터무니 없는 세금이 부과되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착실한 시민들이니 차곡차곡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세금을 싫어합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실제로 영국민들은 창문세에 대항해서 집의 창문을 없애버렸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어두컴컴한 생활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세금 내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에 따른 것입니다. 이처럼 저항이 심했던 창문세는 결국 1851년에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창문세 외에도 유럽에서는 장례세, 공기세, 독신세, 초야세 등도 있었다고 합니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지금은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 다음 주제: 좋은 조세와 나쁜 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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