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경제

한진수 2008. 5. 24. 22:02

침착함을 거부하는 패닉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실내 체육관에서 누가 "폭탄이다." 하고 외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폭탄이 터져서 발생하는 피해보다는 폭탄이라는 말에 겁을 먹은 사람들이 서로 뒤엉키는 아수라장 속에서 치이고 밟혀서 당하는 피해가 더 클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차분하게 순서를 지켜 그 자리를 벗어나는 침착성만 갖고 있었다면 인재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심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일부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게 되면 그것은 금방 확대 재생산되어 엄청난 공포, 즉 패닉으로 발전합니다.

화재보다 무서운 패닉

극장이나 좁은 통로에서 화재가 발생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화재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에 대해서 느끼는 패닉이라고 합니다. 침착하게 성냥불을 발로 끄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불을 끄기보다는 서로 먼저 자기만 살겠다고 밀치고 나가면 엄청난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패닉이라는 말의 유래는 팬이라는 신

이번 강의에서는 패닉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패닉은 그리스 신화의 팬(Pan)이라는 신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패닉은 매우 이상한 모습을 지녔다고 합니다. 하반신은 염소의 발과 꼬리를 가지고 있었고 상반신은 사람의 모양이지만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있었으며 얼굴은 덥수룩한 수염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상상이 가나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간호사도 놀라서 도망간 팬의 생김새

팬이 태어날 때 간호사가 생김새에 놀라서 도망쳤기 때문에 공포를 의미하는 패닉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와 다른 설도 있습니다. 패닉은 목동의 신으로서 산과 숲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숲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몰래 숨어서 나뭇잎들을 바스락거려 두려움을 조장했습니다.

나그네가 발걸음을 재촉하면 팬은 더 빨리 달려가 다음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나그네를 놀라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패닉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도 합니다.

경제에서의 패닉

역사적으로 패닉의 위력을 가장 실감나게 체험한 것이 세계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일 것입니다. 1929년 10월의 이야기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기업 생산도 활발했습니다. 그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량 생산과 고성장이 지속되었습니다.

대량 생산 시대를 연 컨베이어 시스템 도입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동차였습니다. 포드자동차 회사는 1913년에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모델 T'로 불리는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화 생산 방법의 도입으로 자동차 한 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630분에서 93분으로 단축되었다고 합니다.

공급의 증대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가격은 825달러에서 290달러로 크게 낮아졌습니다. 이처럼 가격이 낮아지자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자동차를 수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입니다.

주5일 근무제도 자동차 수요를 창출

포드는 또 하나의 획기적인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바로 주5일제입니다. 그것도 1926년에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요새 주5일 근무제를 대기업부터 도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보다 80년이나 늦었습니다.

당시 미국사람들 가운데에는 포드의 주5일제 근무를 우려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포드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5일 근무제가 자동차의 새로운 수요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말에 여가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쇼핑이나 여행을 위해서 자동차를 새로 사기 시작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보기 좋게 �어버린 것입니다. 매사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우리는 포드로부터도 배울 수 있습니다.

자동차 혁명과 경제 성장

포드자동차에서 시작된 자동화 시설의 도입은 자동차 혁명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리고 포드자동차의 이러한 경영은 후에 포디즘(Fordism)이라고 불리기 시작합니다.

자동차 혁명은 20세기 말에 있었던 IT 혁명에 비유할 만한 영향을 전세계에 미쳤습니다. 자동차가 보급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도심에 사는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교외에 주택 건설 붐이 일어났습니다. 또 도심과 교외를 연결하는 도로 건설도 활발해졌습니다. 한 마디로 건설 붐이 일어난 것입니다.

라디오 방송과 소비

당시의 경기 호황을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은 매우 많지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1920년에 정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으며 라디오를 통한 광고 방송도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광고를 들으며 그리고 기업의 활발한 생산 덕에 두툼해진 지갑을 이용해 또 다른 소비를 하게 되는 선순환이 지속된 시기가 1920년대입니다.

소비 여력이 딸리기 시작

이처럼 모든 것이 순탄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 역시 매우 소중한 도움말이며, 우리가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어야 할 명언입니다. 1920년대에도 이 명언을 그대로 유효했습니다.

기업이 활발한 생산을 통해 많은 이윤을 벌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근로자의 소득도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기업의 이윤은 매우 빠르게 증가했지만 근로자의 소득은 이만큼 빨리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까지와는 달리 기업이 생산한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구매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업이 충분한 돈을 근로자들에게 건네주어야 소비가 이루어지고 기업의 생산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이 이윤은 많이 확보하면서 근로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아 근로자의 주머니가 상대적으로 점점 얇아지기 시작하면서 소비가 생산을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시장도 투기 열풍

주식시장은 항상 다른 시장을 앞섭니다. 모든 정보가 가장 많이 그리고 먼저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식시장이 경제 또는 경기에 선행한다고 말합니다.

1920년대의 주식시장은 상승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주식을 사기만 하면 돈을 쉽게 번다는 인식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본업을 접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주식 투자에 매달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힘들게 일을 하려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계속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런 현상이 지속될수록 주가는 상승에 상승을 거듭할 뿐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대출을 받으면 됩니다. 이자 몇 푼 정도는 주가가 며칠 오르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대출을 받아 주식을 샀습니다. 한 마디로 투기 열풍이 분 것입니다.(이전 강의 #36 '버블' 참조)

일부 전문가들이 위와 같은 문제점을 들거나 역사적인 버블 경험을 들면서 우려를 표명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패닉의 발생

그러던 어느 날. 1929년 10월 24일 오전 11시쯤이었습니다. 갑자기 주식을 파는 주문이 대량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상한 흐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의 매도 주문이었는지 또는 그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주식 중개인들은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그러자 저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팔아" "무조건 팔아"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중개인들도 따라서 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조건 남을 따라 하는 비이성적 상황이 나타난 것입니다.

세계 대공황의 서곡, 블랙 목요일

누구에게서 그리고 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패닉이 주식 시장 전체를 뒤덮었고 주가는 곤두박질쳤습니다. 주식을 팔려는 사람만 있었지 사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날은 목요일이었는데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져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을 어두운 검은 색에 비유해서 이 날을 블랙 목요일(black Thursday)라고 부릅니다.

근거 없는 패닉 심리를 극복해야

목동의 신이었던 팬이 조장했던 패닉은 근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팬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패닉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발생하는 패닉 가운데에는 뚜렷한 근거 없이 발생한 패닉이 꽤 있습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남들이 이 길로 가더라도 자신은 신중한 선택의 결과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면 패닉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신중함을 충분하게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런 패닉은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확대 재생산되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에는 패닉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확고한 체제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패닉이 패닉을 낳게 하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패닉 심리입니다. 근거 없는 패닉을 범하지 맙시다. 자신과 남과 경제를 믿읍시다.

 

*** 다음 주제: 세계대공황: 최대의 비극과 스타 탄생

^*^ 한진수와 함께 하는 경제이야기(http://plaza.ginue.ac.kr/~js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