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경제

한진수 2008. 5. 24. 22:03

대공황을 묘사한 소설이자 영화 분노의 포도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유명한 미국인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대표작입니다. 1930년대 미국 농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한 대작으로서 이 때문에 한 때 금서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다음 해에 이 책은 존 포드 감독에 의해서 같은 제목으로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이것 역시 여러분 모두 한번쯤 볼 만한 좋은 영화입니다.

'분노의 포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을 누리던 미국에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 공포가 미국 사회 곳곳을 초토화하는 모습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가뭄과 대공황에 쫓겨 농지를 잃고 서부로 이주하는 기나긴 행렬, 빵 배급을 받기 위해서 긴 줄을 선 사람들,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 등은 대공황 시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모던 타임즈부터 신데렐라 맨에 이르기까지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나 영화는 매우 많습니다. 유명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도 대공황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대공황 시절을 경험하던 채플린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본의 아니게 폭동을 주도한 혐의로 감옥에 가지만 수감 생활이 끝난 후에도 감옥에 다시 가기를 원합니다. 길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아무도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05년에 개봉된 러셀 크로우 주연의 '신데렐라 맨(Cinderella Man)' 역시 대공황 시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들마저 친척집에 보내야 했던 주인공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링에 올라 일생을 건 최대의 혈전을 벌입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대공황

이렇게 대공황이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나 세계 경제에 큰 충격과 극적인 파노라마들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를 최대의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경제위기 당시 실업률의 3.6배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대공황이라고 표현할까요? 1933년 미국의 실업률은 25.2%였습니다. 참고로 1997년 경제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겨우(?) 7.0%에 불과했습니다. 25.2 대 7. 당시 어려운 상황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요?

만들기만 하면 팔렸던 대공황 이전

세계 경제는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물건은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금방 소비되었습니다. 시장에서는 항상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으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세계사를 생각해본다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시 기업의 생산 능력은 지금과 비교해보면 보잘 것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수요자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양이 충분히 생산되지 못했습니다.

과잉 투자로 이어져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시장에서 수요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불황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생산을 늘릴 수 있을까?'로 집약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업들은 너도나도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물건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반전된 것입니다.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가 어느새 과잉 투자로 바뀌게 되었으며,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의 등장

이제부터 요구되는 것은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조금만 기다리면 실업자가 해소되고 생산이 활발해져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경기는 갈수록 악화되었습니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황하고 있을 때 케인즈(Keynes)라는 위대한 경제학자가 정부의 시장개입을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케인즈의 주장은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케인즈의 주장이 비합리적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역시 그 때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지배했던 자유방임주의

그 당시 사람들은 정부가 경제에서 할 역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효율적이다. 개인의 사리추구 행위가 국부를 가져다준다.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되는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사상에 따르면 어떤 어려움이 닦치더라도 시장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경제가 불황에 놓여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시장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그저 국방이나 외교 같은 일을 하는 곳이고 경제와 관련해서는 최소한의 역할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관건

케인즈는 고정 관념을 타파했습니다.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업자가 많이 발생하고 기업의 생산이 부진한 것은 시장에 물건을 살 수요가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원인이 밝혀지면 대책은 간단합니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까요? 후보자로는 소비자, 기업, 정부가 있습니다. 바로 경제의 3주체들입니다. 어떤 경제 주체가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지 하나씩 생각해 봅시다. 첫째, 소비자입니다. 실업률이 25%에 이르고 그나마 취업자라 할지라도 언제 일자리를 잃을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소비를 할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혹시 있더라도 미래를 대비해서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비 증대를 통한 수요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기업입니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됩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재고가 쌓여있고 소비가 부진한 데 기업이 투자를 늘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대할 곳은 정부밖에 없어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경제 주체가 바로 정부입니다. 정부가 수요를 창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케인즈의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영국 경제학자인 케인즈의 주장을 시험해본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Roosevelt)는 정부의 공공사업을 통한 수요 및 고용 창출을 시도했습니다. 이를 뉴딜(New Deal) 정책이라고 부릅니다.

강력한 뉴딜 정책을 미국에게 권고

케인즈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철도 사업과 같이 대규모로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 부문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대출해줌으로써 경제를 조기에 성장시켜야 한다. 물론 그 목적은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다."

"더 큰 허리띠를 산다고 해서 마른 사람이 살찌지 않듯이, 화폐 공급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미국이 대공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더욱 강력한 뉴딜 정책을 촉구하는 케인즈의 편지 내용입니다.

사람들의 심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루즈벨트 대통령

루즈벨트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을 여러 가지 했습니다. 그 가운데 구태여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국민들의 쓸데없는 공포를 불식시키고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라디오를 통해 정기적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국민들을 경제 위기 극복의 주체로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라디오 연설은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고 불렸습니다. 노변정담으로 인기를 얻게 된 것을 알게 된 정치인들은 이후 이를 많이들 답습하고 있습니다.

위기 이후에 스타 탄생

그는 당시의 경제 상황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고하고 정부 대책에 대한 협조를 구했습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근거 없는 공포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마비시켜버린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루즈벨트는 국민과 가장 친근했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미국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세계대공황은 인류가 겪은 최대의 경제 비극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인류는 문학, 영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스타 탄생을 지켜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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