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윤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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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책을 읽고

2020. 4. 7.






노예계약이니 뭐니 하는 저간의 시끌벅쩍함에 놀랐던 것보다 그 대응에 더 놀라고 대단해보이는 작가의 작품이란 선입견을 갖고 읽은 중편소설이다. 희은과 정민 그리고 그 둘의 아이인 초록과 함께 살다간 첫번째 고양이 치커리와 두번째 고양이 순무에 얽힌 이야기의 얼개를 갖고 있다. 우연인지 계속 연이어 늑대 그리고 고양이 또 고양이에 얽힌 혹은 메타포처럼 계속 동물과 관련된 책을 접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인공은 아니다. 다만 나로 하여금 한번은 고양이의 집사노릇을 해보고도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음!!!!

희은과 정민이 각자의 결핍을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서 치유하고 그리고 그들의 사랑하는 유일한 아이, 초록을 잘 키우기 위해 정말 애쓰는 부모의 얘긴줄 알았다.

'초록은 어떤 아이였는가 하면, 이 모든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정민과 희은 둘 다에게 축복같은 아이였다. 이혼하기 전에도, 후에도 그들은 초록을 사랑했다. 처음처럼 사랑했고 영원히 사랑할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든 초록대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엇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어떻게 해도 초록에게 온전하게는 전할 수 없을 것 같아 각자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여러 번 오랫동안 울었다.'(p.47) 같은 구절을 읽으며 나는 내 아이들을 생각했다. 부정하고 또 밀어냈지만 언제나 폭풍처럼 혹은 절대 바닥이 닿을것 같지 않는 심연처럼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반추해보는 문장들은 위에 문장보다 훨씬 더 길고 정교하고 깊고 은은하게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내용의 상당부분은 희은이 엄마가 되다보면 다 치유될 줄 알았던 결핍이나 상처를 대면하는 과정들로 보인다. 물론 제도 밖에서 이일은 가능해진다.

' 그들이 함께 했던 그 모든 역사.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나왔던 기쁨과 시련들, 희은은 희은이고 정민은 정민이었던 시간, 그리고 둘이 만나 벅찬 마음으로 초록이 엄마와 아빠로 지내온 시간들은 그렇게 없는 것처럼 치부되어도 괜찮은 가? 왜 갑자기 여자일 뿐인 사람이 되어, 남자와 여자로 모든 것을 환원해버리는가? 우리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살기로 약속했잖아. 왜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몰라, 희은씨'(p.62) 희은이 저 세계에서 정민의 시간들, 남자의 시간들을 힐난하고 분노할때 정민이 끝내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하던 얘기들 . . . .

정민과 희은은 제도안에서는 이혼을 하였지마는 현실의 삶에서는 비로소 자신들의 고통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그래서 순무의 죽음앞에서 추억을 딱 거기까지 나누고 서로 위로했을 것이다. 다르다고 생각해서 여태 아무렇지가 않았는데 비로소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해줄수 없는 어느 지점에 이르고 나니 실상 그 약속이 얼마나 헛점투성이엿나? 아니 애초 그 약속은 지킬수 없는 약속이었다. 나쁘더라고 자기자신이 되는 길은 가겠다고 희은이 다짐하는 몇번의 구절이 읽힌다. 그런데 나는 애초 내가 바란게 있지않았다고 느낀다. 자기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엇이 되고 싶다기보단 무엇인지도 살기보다 순간의 죽음을 바라는 간절히 기도하는 나만을 인지하고 있다. 대의는 날 들뜨게 하지만 그것이 날 절망에 밀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