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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빈학당 2017. 3. 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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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빈학당 2009. 6. 7. 07:17

 

조용훈 무고사건의 공범과정 추정 / 2008/12/16 09:22

2008년7월30일 저녁, 31일 목요일 아침 보도 방영

 

7월31일~ 8월4일경

오후 손경학이 한 여성과 동행해 방문 함 이때 손경학이 배익기에게 보도를 시청하고 이를 조용훈에게 전화연락해 줬었다 말함 또 조용훈이 부원동 석운도예 옆에 땅이 있다 함 

이무렵 조용훈이 전화로 배익기에게 팔 것을 말함

 

8월2일 토요일

조용훈이 배익기에게 영주경매장에 같이 갈 것을 전화로 제의 함 배익기는 팔으라는 얘기일 것 같아 거절하고 따라가지 않음

이때 손경학이 민속당에 와서 조용훈에게 배익기를 데리고 가면서 설득하자고 제안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때 다녀오며 이전에 조용훈이 배익기에게 책 30만원어치를 판일이 있음을 손경학이 알게 됨으로 봄

 

8월3일 일요일

각자 거주지인 구미에서 손경학과 정길동이 만나 조용훈이 배익기에게 책더미를 팔았던 사실과 정길동이 이전에 배익기가 자기에게 민속당에 훈민정음해례본을 사러 가자고 말했다며 말함

 

8월4일 월요일

손경학이 주중 상주로 출근하는 월요일 이날 낮무렵 민속당에 가서 어제 정길동에게 들은 말을 조용훈에게 전해 선동 함

 

8월5일 화요일

이에 따라 조용훈은 앞서 배익기에게 팔았던 책더미를 원래 샀었던 “화령사람”을 불러 일전에 방송된 자료를 인테넷을 통해 보여 확인을 요구하자 “화령사람”은 기미를 보고 자기가 팔았던 게 맞다고 하자 조용훈은 놀라 배익기에게 바로 전화해 화령사람이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고 맞다고 한다며 쩔쩔거려 말함

 

8월7일 목요일 저녁 일몰 뒤 조용훈과 처 이동옥 인척되는 풍년방앗간주인 그리고 신원 미상의 남자 이렇게 넷이 배익기집에 몰려와 “그게 잘못 딸려 나갔다며 돌려 내라” 요구함

여기서 조용훈의 성격상으로도 5일에서 6일 7일 저녁까지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인데 바로 오지 않고 이렇게 뜸을 들인 것은 그간 뭔가 의논이 대충 정해지자 행동 이전의 확인 겸 배익기의 집을 찾아 온 것으로 보여 짐

 

8월9일 토요일

이날 정길동이 최사장을 유인 동반해 민속당을 방문하자 정길동은 드디어 배익기에게 30만원 어치를 팔면서 문제의 책을 배익기에게 도둑 맞은 것이라 주장하자 최사장은 그런책을 왜 그런데 방만히 두었냐 하자 잘 몰라서라고 대답하니 마침 옆의 벽지 훈민정음을 가리키며 “저기있네” 하고 가리키자 보고는 크게 놀람

이로 자연 이때 정길동은 일전에 배익기가 민속당에 훈민정음 사러가자고 했다는 말을 조용훈에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되고 정길동은 다시 배익기에게 “ 자네가 도배지 한다고 사갔다며? 고소한다네”하고 신이 나 전화로 일러 줌

 

8월11일 월요일

조용훈이 진정서라는 명목으로 상주경찰서에 절도라 신고

 

8월13일경

조용훈 진술

 

8월14일

배익기 진술

 

8월20일

배익기 무고를 고소

 

10월8일

배익기에 대한 절도혐의가 무혐의로 내사종결 됨
이때 진정서이기에 피의자인 배익기에게는 결정이 통보 되지 않았던 것이라 함

 

10월23일

배익기가 자신의 블로거 도빈학당에 내사종결된 사실의 글을 올림

단 글 올리기 며칠전쯤부터 발설 됨

 

10월24일

조용훈측의 변호사 박진이 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냄

 

10월25일 토요일

이날로 정해진 무고혐의에 관한 대질심문을 조용훈이 연기함

 

10월27일 월요일

대질심문때 김재두가 조용훈쪽의 허위진술로 등장 함

배익기에 대한 무혐의 내사종결의 글이 오르자 즉시 정길동이 손경학이나 혹 김재두를 잘 아는 최정해를 시켜 정길동 자신이 결정적으로 내응하겠다는 정보를 흘리며 연통하여 이로 조용훈쪽에 힘을 대어 움직이게 함으로 계속 배익기를 압박시켜 자신이 책을 넘겨 받고자 한 것으로 보이며 한편 배익기에게 책을 팔지 않을거면 자기에게 전화도 말고 또 책의 다섯장의 지분을 먼저 자신에게 제공하라 요구 함

 

10월29일 무렵

가처분신청 내용에 있은 손의준녹취록 박진규진술서 외에 새로 보정내용으로 김재두진술서 한순택사실확인서 등이 첨부 됨 

 

11월5일

2000만원의 보증보험 공탁으로 가처분결정 됨

 

11월0일 무렵

조용훈이 다시 절도라 고소 함(먼저는 진정서이기에 라고 함)

 

11월 7일

조용훈에 대한 무고혐의가 증거불충분 불기소 결정

 

11월 19일

조용훈 고소사건이 검찰로 이첩

 

11월24일

배익기 항고

 

12월9일

검찰 상주지청 307호에서 배익기 조용훈 김재두 정길동 넷이 오후 2시에서 밤 12시 무렵까지 서로 대질심문

 

*여기서 조용훈이 절도로 몰아갈 틀을 세운것은 언제 무렵일까?

먼저 조용훈의 성격으로 보나 8월5일 이렇게 화령사람을 통해 확인 되었다면 바로 달려 왔어야 할텐데 다음날도 아니고 7일 막 일몰무렵 몰려 왔다 이땐 아직 해가 길때로 꽤 늦은 시간이 될 것이다

또 이렇게 다음날로 미루지도 않고 늦게까지도 찾아 온 걸로 보면 바로 종전까지 무슨 의논과 작전이 대충 서서 이제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온 것으로 보인다

아마 무었보다 대구의 박진규로 까지 공모키로 말을 맞추고 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릴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방앗간을 통해 상주경찰서 임형사에게 자문을 구하던 무렵은 애초로서 5일 내게 전화한 직후나 6일경으로 보인다 임형사는 듣는대로 민사를 하는 것을 말해 줬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말을 들었더라는 것인데 곧 조용훈이 아직 절도라 말하지는 않고 잘못팔았다는 식으로 임형사에게 말한 것이라는 것이 되며 이로 보면 아직 애초가 되는 것이다

아마 7일무렵 손경학이나 누구를 만나 귀띔을 듣고 이때 절도로 모는 작전을 대충이나마 세운 것이다

 

춘추좌씨전에,

정사일 경왕을 장사지내고 왕자 조朝가 구관舊官과 백공百工의 자리를 잃은 자와 더불어 영왕 경왕의 족속으로 인해 작난했다......숙앙이 왕성으로부터 와서 왕실의 난을 말했다 민마보가 말하길 , 왕자조는 반드시 이기지 못한다 그 더부는 바의 것이 하늘의 폐廢한 바이다

 

젠장 가만보면 이미 지것도 잘못하는 것들이 백폐구흥百廢俱興 하겠다고 남의 선을 무고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보다시피 조용훈 정길동의 그런식 업은 이미 하늘이 버린 때지난 시절로서 요새 어디 뚫을데나 마땅한 물건도 나오지 않아 모두 세놓고 이층으로 올라가서 그나마 폐업 상태가 오래고 한순택도 마찬가지로 별 다른 안목은 없이 그냥 옛날 시골서 생활이 변혁되는 과정에 이제 가정에 쓰임없거나 뒤떨어져 신식으로 교체되어 나오는 구식 중고품 헐값에 거두듯하던 시절이 다 가면서 골동 그만두고 몇년간 수위노릇이나 하다가 다시 근년 늙어 소일거리로 옛날 하던짓 정도로 하고 있고 박진규도 모르긴해도 같은 물의 사정이 비슷할 것이며 김재두는 보다시피 일찌감치 그렇게 떨어 먹었는데 이중 그나마 정길동이도 보면 법조쪽으로 좀 관련있다 하여 종래 누가 얼마나 의뢰했는지는 모르나, 물론 내게 압박을 주기 위해 특히 그런 예만 들어 말한 것이기도 할수있지만  여태 그 말을 들은 것을 보면 다만 예전 언제 자기가 밤에 각산 어디선가 도굴해 오는데 어디 다리건너다가 검문을 당해 잡혀 다음날 동생에게 연락하자 사과받고 바로 풀려 나오긴했는데 다만 밤중에 잡힘으로 다음날 연락될때 까지 밤새 열나 당한 것이 억울했다는 그런 제 일 정도고 막상 뭐 누굴 위해 좀 봐줬다는 것은 들은 바없이 오히려 남의 일을 봐준 것으로는 뭐뭐는 어째서 안되더라거나 간신히 되도 뒤끝도 안좋더라는 재판에 대한 의지박약 자신없는 얘기만 몇몇 들었는데 그중 대구에 같은 골동업자로 구정길이라는 자가 있어 보물급 지도 여러장을 두고 누가 태클을 걸어 소송이 걸렸는데 이 과정에 서로 말이 오가고 부득이 사정이 곪아 터져 나오면서 증거물로 법원에 제출했다가 이도저도 아닌채 그로 압수되었다 한다

뭔가 의심스런일이 있으면 심지어 턱없는 시비까지 사주해 걸어 말이 일어나게하고 이를 구실로 조사해 드는 것은 특히 골동에 매우 상투적인 일이다 지금 박수근 그림에 대한 시비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그래서 정길동이가 찾을수있으니 계속 소송을 하자하였으나 당시 구정길이가 그만 포기했다는데 나는 도록에 실린 그 지도들을 보고 이런 물건을 어째 그리 쉽게 포기할까 여겼는데 정길동 말로는 장물로서 이외 다른 것이 집에 더 있어 이것 때문에 이는 그만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격고 생각되는 것은 보나마나 의뢰받은 것을 소위 도와주느라 사정을 캐고는 유, 불리의 향배를 보고 사리私利를 헤아려 센쪽에 붙어 정보를 바치고 도리어 공작업무를 받음으로 이로 뺏기도록 일조하며 다른것까지 더 캐드는 위협이 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며 설혹 이 아니라도 그 일 봐주는 지분의 양이 무리한데다 또 얼마나 힘들여 언제 이기기나 할지도 모르는 일을 두고 사전에 먼저 요구하였던 까닭이 있지 않나 싶다

 

손경학 통화 녹취록 / 2008/11/25 21:22 

2008년 9월 18일 배익기 손경학 통화

 

손:민속당이 고소했어?

배:거서 고소 훔쳐갔다고 고소했대요. 뭐.

 

손:훔쳐 갔다고 고소를 해?

배:예

 

손:하이 씨~ 거 자네가 훔쳤나?

배:아니, 그래 나는 무고라고 또 맞고소를 해 놨어. 그게 하마 한 달이 넘었어요.

 

손:아이고, 민속당 거도 어지간한 사람이네.

나는 그런 얘기 일체 못 들었는데. 안 본지는 한달 좀 됐다고, 내가

배:예?

 

손:안 본지는 한 달쯤 됐다고.

배:거 사람 왔을것 아니에요 민속당이 전화

 

손:아니 전화도 안 왔어. 나 한테 전화도 안왔어.

배:안왔더라고요?

 

손:전화 일절. 나는 고마 이 사람아 괜히 자네가 얘기도 안 되고 중간 얘기로 아무 값도, 안되고 이러니까 나는 뭐 아무한테나 얘기할 것도 없고, 나는.얘기할게 어딨노 그래 나는. 자네 물건 자네가 마음대로 하는 데 내가 중간에 이런다고 자네가 내 말 듣나 응? 내 언제 내말

배:그러니까 최사장

 

손:다른사람들은 아니, 최사장이 아니고, 민속당이나, 그 저 이름이 뭐냐 구미에 정길동이나 어?

배:예

 

손:뭐 다른 최사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자네 내 말은 자네가 좀 듣는다고 이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하고 있더라고

배:그렇지도 않을낀데?

 

손:그래도 내말은 좀 자네가 좀 듣는다 이런 인식을 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알아듣도록, 그래서 내가 그랬지 , 이 사람아 가가 그래 보통사람이가 내 말 안듣는다, 이랬지

배:그 뭐 얼마나

 

손:옛날 이야기야 지금 얘기는 옛날 얘기야

아니 그래 한달반쯤 된 지난 얘기야

배:중간에서 좀 할려고 그쪽에서 뭐 화해 뭐 카고 그카고 이라는 것 같던데

 

손:그건 모르겠어 그런 얘기 나한테 일절 안 들리던데? 나는 고소했다는 것도 나는 지금 처음 들었어, 지금.

배:그거는 그래 생각을 안 한다 이기지. 거는 얘기 해봐야 도로 안 된다 이기겠지.

 

손: 아니, 내가 전번에 고소했다는 얘기 내 자네한테 처음 들었어 나는 금시초문이고, 내 한 달 반, 두 달 전에 날보고 중간에서 좀 사달라 이러더라고,

배: 예,예.

 

손: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전화했지. 내가 저

배: 땅 있다 하는 것 그 얘기가, 그 얘기가

 

손:거는 구강이 사러 갈려고 헀었어.

배:예?

 

손:구강이.구강이

배:예

 

손:구강이 사러 갔다가 땅이 너무 악산이 되어서 구강이 안 산대.

배:예,예 그래 그 민속당은 얼마에, 얼마에 그거를 사달라고 카던데요?

 

손: 그 얘기는 안 하지

근데 뭐라고 그냥 사달라 그러지. 민속당 뿐만 아니고, 저 정길동이도 그러고, 다른 사람들도 말하고, 그래서 내가

배: 예.

 

손:당신들은 내말 들을 꺼라고 그러지만은 가가 내 말을 안 들을 꺼라고 그랬지 내가.

배:예

 

손:자네가 내 말 듣나?

배:아니 들을 것은 듣고, 안 들을 것은 안 듣고 그러지 무조건 다 듣고 안 듣는.

 

손:그럼 내가 얘기해도 이사람아 그 이야기도 안 하는데, 나한테 솔직하게 이야기도 안 하는데 그래서 나는 포기하고

배:얘기 할수있게끔

 

손:나는 그래서 책에 대해서 포기하고, 포기도 아니고 나하고 관련도 없다 해 가지고 나는 지금 방관하는 상태라, 지금.

배:예

 

손:아니, 소개비를 양쪽에서 누가 좀 준다카면 내가 소개는 해 주지

배:최사장이, 며칠전에 왔을때 최사장이 보냈다고 그런식으로 최사장 그사람말이 나오는 것던데

 

손: 안그래 나는 그런사람 말 안했어 직접 다시 알아봐 나는 그때 이사람아 가다가 기간이 있어서 들렸어 도계에서 강의 시간이 빨라 가지고

배:예 예

 

손:그래서 들러 지나는, 그런일없어, 이 사람아

배:예 그리고 뭐 민속당이 그 뒤로는 내하고 고소하고 이래가지고 이제 더 안 하는 모양이구만

 

손:몰라 난 한번도 안 가봤지

연락을 안 왔어 잘, 나한테 연락을 안해 잘,

지나가다가 그 민속당 집앞에 그 건너편에 세멘트파는 집앞에 거 있다가 내가 글로 상주가다 보면 잠깐 내렸다가 내가 보고 갔지 옛날에

나한테 전화도 잘 안해 이사람아 잘

배: 하여튼 몰라요 지금 고소하고 그렇게 돼있어요

예 알았어요 그러면 나중에 내가 한번 전화할게요

 

손:아니 그리고 이사람아 자네가 이사람아 나한테도 언제고 그만큼 팔겠다 얘기 해주면 이사람아 내가~

배: 고소가

 

손:고소가 걸릿기나 말기나 그게 문제가 되나 그게.

배:그게 값이 문제지만서도

 

손:그래 문제도 안되고 그래 얼마에 팔려고 그래? 내가 민속당한테, 자네 없을때는 내 누구한테 들었는지 아 대상이 이사람아 어디 한 두 사람이가

배:사라고 민속당은 사람보내 가지고 10억에 자기가 다시 사겠다 이 카던데

 

손:몰라 나는 그런얘기 나는 금시초문이야 나는

배:누가 그래서 머

 

손:민속당이 10억을 준대? 민속당이 무슨 재주로 10억을 만드나 택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배:그러면 누가 중간에 하면 되잖아요, 그래

 

손:아이고, 민속당 지 능력으로 10억도 없고, 되지도 않아.

배:가져가 10억 더 받으면 하면 되는 거지 안 그래?

 

손: 아 몰라 이사람아 전화 끊어

배: 예 알았어요

 

손: 나 얘기 안 하고 응

 

*한달반쯤 전 이란 곧 방송 직후 무렵이다 일전에 정씨가 내게 "손원장 안 오지?" 이러면서, 방송 나간 처음쯤 손경학에게 얼마에 사달라고 하니 소개비로 나 5억주나? 하여 그러겠다 했더니 도리어 그뒤로 일체 소식도 없더라며 이게 아무래도 간첩질을 한 것 같다 했다

절도로 신고한 사건의 이 시기에 조용훈이 안간힘으로 온데 더덤고 손을 벌리면서 다른사람도 아닌 손경학에게 전화도 한통 않았다면 그건 사정이 뻔 한 서로 말 나누기 곤란한 사정이 있을뿐 아니라 더하여 무슨 혐의를 피하려는 것이니,

첫째. 처음 물건을 사 달라고 졸라 놓았다가 이후 같이 완전히 공모하기로 전환한 것도 아닌데 나중에 도둑 맞은 것이라 주장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말하기 곤란할 것이고

두째. 너 집에서 나간 것이라 일러줌으로 조용훈이 비롯한 것이면 역시 마찬가지로 그럴수 밖에 없다

7월31일 방송후부터 8월7일 조용훈 일행이 돌려 달라며 우리집에 몰려 올때까지의 처음 며칠새 한두번 우리집에 오더니 이후 고소건이 걸리던 즈음부터 나 한테 일체 연락 없다가 어느날 어디 무슨 합의 이런얘기가 새자마자 갑자기 제일 먼저 살그머니 때 맞춰 나타나 나한테 "한 몇억받고라도 팔지?" 이랬던 것인데 이후 나는 들은 소리도 있고해서 그날 우리집에 왔던 것은 혹 최사장이 보낸 건가 물으니 이렇게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싸움 붙여 놓고 예의주시해 첩보를 수집하고 가늠하며 심지어 한쪽으로 정보를 흘리고 밀어 쫓게 하는 한편 다른 한쪽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이용해 나꿔치려는 것이다

손경학이 줄 닿을 곳은 정이나 민속당이 아니라면 최밖에 없다 최정해는 김재두에게도 책을 구하면 25억에 살 사람을 바로 대 주겠다고 하며 바람을 넣은 적이 있고 이후로도 내 글을 뽑아 들고 다니며 온데 선동하고 다닌다고 하였다

보다시피 조는 그런거 살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여겼는 것이고 그럼 정 보다 더 받을 가능성 있어 보이는 쪽으로 붙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소식을 모를리는 만무한 것이다 다만 사건후 정은 물론 민속당에 일체 또는 거의 연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일 것이다

또 누구보다 민속당은 나와 손경학 둘이 서로 자기가게에 오면 입만 떼면 서로 극구 비방하며 무었보다 내가 그렇게 여기는 것을 중간에서 너무 잘 알기에 서로 가게에서 내기바둑도 두며 자주 만나니 말은 내어 타진했겠지만 그렇게 애써 꼭 기대해 내게 있는 것을 손경학을 통해 사리라고 의존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도 않을낀데? 라고 한 내말은 이를 두고 그게 그렇겠냐는 뜻이다

어차피 내가 호락하지 않은데다 일이 터지고 납작 숨어 찬스를 보다가 마침 내가 압박을 받아 그만 넘겨 버리려고 한다고 잠깐 잘못 소문이 샜는데 기막히게 때 맞춰 바로 나타났던 것이다 

손의준녹취록에서 보는 것 처럼 내가 합의 보잔단 소리는 처음 조용훈 입에서 나왔겠지만 조용훈이 꼭 직접이라 보기 보다 손희준에서 직접 또는 최사장을 통해 나갔을 수 있다

이날도 전화왔는데 처음 옆에 여럿 무슨 다른 소리가 나는게 사람들과 있는 자리 같았다 

무었보다 내가 지금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은 만약 손희준이 "그 물건이 집에서 나온게 아니고 산거라 캤다"며 조용훈을 처음으로 선동하여 조용훈이 단지 이말에 따라 자기집에서 나간건가 여겨 일이 발단 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가장 먼저 생각해 볼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자기 또한 설마 절도로 고소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결국 밝혀질 것이다

 

김재두진술서 / 2008/11/10 08:10

 진술서 

성명 김재두

주소 상주시 성동동 백합맨션 102동 602호

전화번호

 

1. 진술인은 골동품에 관심이 많아 중국까지 왕래하면서 10여년을 골동품을 취급해 오다가 1999년경 도자기와 한문에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있다고 하여 상주시 낙동면 구잠리에 사는 배익기를 만나 함께 일을 하기로 하고 상주시 냉림동 주공아파트상가를 임대해서 조그마한 골동품가게를 열고 그곳에서 배익기와 함께 먹고 자면서 전국의 골동품가게를 돌며 물건을 사고 팔면서 약 10개월 가량 일을 하다가 진술인의 사정으로 인하여 가게를 정리하고 배익기와 사이좋게 헤어진 적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특별히 무슨 일이라고 같이 하기로 약속해 시작 한 바도 없고 다만 이때 내가 보니 그전에 사 두었던 잔챙이 물건이 좀 남아 있어 나중에 이를 자기 분식하던 가게인가 어느 아파트 귀퉁이 가게에 두고 팔아 쓰고자 하였는데 이땐 내가 컴퓨터로 특히 차글을 정리해 책으로 내려 하던 때라 여기 며칠 밤으로 컴퓨터를 이용하고자 지내기도 한 적은 있으나 하루도 같이 먹고 자며 지낸 적은 없다 몇군데 가보자해서 들러 본 적은 있으나 몇번 정도고 일지를 보니 이때가 2002년 봄으로 내가 다른사람도 아닌 김재두 어머니에게 그렇게까지 말이 나가도록 서로 그리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무슨 10개월 까지 걸렸겠나 그 전 겨울무렵이니 한 몇달되었겠지 자기말대로 알기 시작한지 10개월이라 해도 먼저 내가 말한대로 2001년 경부터 서로 알기 시작한게 증명되고 1999년이 아니다)

 

1.2008년 8월 31일 TV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상주에서 발견되었고 배익기가 집천정을 수리하다가 나왔다고 하여 깜짝 놀라고 있었는데 저녁 7시경 그랜드헬스장을 경영하는 이동춘이 전화가 와서 배익기와 같이 있다고 하여 진술인은 헬스장으로 가서 배익기에게 축하한다고 얘기하고 웃음꽃을 피우며 훈민정음 책자에 대하여 같이 애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증명되는 거짓말이다

티브이에 방송된 것은 8월이 아니라 7월 31일 경이고 무려 한달 뒤쯤인가 내가 헬스장을 들러자 이동춘 사장이 김재두가 예전에 좀 돈 되는 골동을 사고 팔은 것을 알고 또 평소 이웃한 정도의 김재두 가게와 서로 친히 잘 알기에 전화로 불러내어 이에 대한 가치를 물어 보고자 한 것이다

자기는 보지도 않고 들은 걸로 맞춰 거짓말을 하다 보니 시간 맞추기에 실수한 것인데 내가 집천정에서 나왔다고 한적도 없을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그렇게 방송 보도 된 바도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집수리 과정을 계기로 나왔다고 하니, 조용훈측 진술서에도 보면 이런 김재두와 같은 말이 있는데 이는 조용훈도  임의로 그렇게 추리하였거나 그런 낭설을 누군가에 들은 것으로 곧 이는 잘 듣고 본 것도 없이 단지 조용훈과 말 맞춘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웃음꽃이나 마나 이날도 뭔가 안색이 한편으로 쳐져 마지못해 웃는 표정 같이 했다 뭔 이런 맛빠진 소릴하고 있나)

 

1. 그로부터 3일후인 2008년 9월 3일 오후 2시경 진술인은 문경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는 봉정복에게 갔는데 그곳에 배익기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ㅇ사장은 일본에 물건을 구입하러 갔다와서 그동안 일들을 얘기하고 또 구입한 물건도 구경하다가 배익기와 훈민정음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진술인은 상주로 돌아올때 배익기가 승용차가 없어 내차로 함께 상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돌아오는 차안에서 배익기는 훈민정음 해례본 책얘기 도중에 "지금 그책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신경질이 나서 못살겠다" 고 하기에 왜 그러냐고 물으니 배익기는 민속당에서 자신을 절도죄로 고소를 했는데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의논할 사람조차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다고 하기에, 진술인이 무슨 사연인지 내가 도와줄수 있을 부분이 있으면 함께 해결해 보자고 얘기가 되었습니다.

 

(*봉정복 역시 알긴 잘 알아도 종래 나와 친하지는 않고 또 얘는 집에 컴퓨터를 놓고 인터넷을 이용해 틈틈히 골동경매싸이트나 일본 골동싸이트에 들어 보기에 내가 이런데 올리는 글을 이전부터 알고 있어 나와 몇년째 전화도 수신거부해 놓은 상태고 어떨때 나가서 일부러 공중전화로 한번 걸어 보면 낸줄 알고는 바로 끊었으며 또 내가 가서 뭘 살려고 해도 인근 ㅇㅇㅇ의 가게와 마찬가지로 소위 호리다시를 당할까봐 나에게는 무조건 팔지도 않을려고 하는 것을 같이 목격한 사람들도 더러 있으며 또한 마찬가지로 내 흉을 심히 보기에 나도 여기 그리 좋아서 간 것은 아니고 바로 옆집도 골동가게에 곁에도 하나 있어 이리로 가다보면 들러게 된 것이다

ㅇㅇㅇ이 바로 김재두로 인해 그때 중국에 다녀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서로 친해 이후에도 언제 ㅇㅇㅇ이 상주 시민운동장옆에 있을때 보니 김재두의 잔챙이 물건을 자기 가게에서 위탁 판매해주고 있어서 더러 찾아 오는 것을 보았으며 이 것이 끝나고는 이때 처음 ㅇㅇㅇ의 가게에서 김재두를 본 것이다

아마 무슨 미행이라도 한게 아니라면 이날 ㅇㅇㅇ이 내가 오자 연락해 주었을 것으로 통화기록을 빼 보면 확인할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때 나는 곧 먼저 나오려했고 셋이있는 자리에서 서로 훈민에 대해 별로 이렇다할 말을 꺼낸 적이 없으며 무었보다 여기 진술에 느닷없이 ㅇㅇㅇ이 일본에 구입하러 갔다온 일을 이야기했다는 거짓말을 꺼낸 것은 의도가 있다

ㅇㅇㅇ이 김낙준을 따라 일본에 다녀오고 또 가끔 일본에 뭘 들고가서 그곳에 가 있는 우리 물건과 바꿔오거나 사오기도 하는데 보아하니 이미 ㅇㅇㅇ에게 내가 같이 일본으로 물건을 빼돌리자고 말했다고 위증하라고 권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 이렇게까지 말을 안하는 것을 보니 그리 여기엔 응하지 않았거나 또 ㅇㅇㅇ은 비록 나를 마땅찮아 한다해도 성격이 이런일에 좀 겁내 조심하는편에 지몸은 지가 아는 선견지명이 있는지 이미 전부터 스스로 뭔가 극구 나와의 혐의를 피하려고 한데다 늘 짜고 "지만 뺑이 치도록" 일해서 설혹 잘 되봐야 자기에게는 별로 돌아올 것도 없다는 것을 격어 알며 수십년간 가이다시로 바닥을 놀며 상대한 것이 워낙이 자기 주위로 깍정이들이 이중사기까지 치다가 당하는 것도 많이 격고 듣기 때문에 불신 또한 많은터라 쉽사리 응해 빠져들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 바로 옆가게가 자기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곳이라 여기 의견도 감안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골치아프니 신경질이니하고 또 내 주위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니 하는 것이 과연 이것들이 뭘 믿고 짠 것이냐의 악질을 보여 준다

내가 주위로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또 성격이 사람을 따지고 가리는편인데다 그러면서도 홀로 주관으로 무릅쓰는 일이 많으니 이를 이용해 오랫동안 덮어 씌워 온 것을 보고는 역시 자기들도 이런 궁리를 해 몰면 될거라 여긴 작전이다

김재두가 예전에 졸부이나마 어쨌던 돈 있는 금꾀꼬리표를 다는 양 했는데 까마귀 올빼미나 개똥짜바리새떼 속에 둘러 싸여 놀더니 진짜가 아니어선지 같이 놓아 두어도 오리는 물로 가고 닭은 절로 밭으로 향하듯 그렇게 본능적으로 그 물로 스스로 당해가면서도 찾아 놀려들더니 영락 한 한참 이후로 이젠 아주 스스로 본연의 색으로 드러 나기라도 한 것인가 안되겠다)

 

1.진술인이 그 책이 도데체 어디서 나온거냐고 물으니까 배익기는 민속당에서 헌책을 사면서 이책을 몰래 끼워 넣고 라면 1박스, 조금 넘는 양을 내가 담아서 현찰 30만원을 주고 샀는데 민속당 영감은 이 책이 끼워 들어간 것도 모르고 그냥 내주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배익기는 지금 TV를 보고 상인들이 물건을 사겠다고 연락이 오는데 20억~30억 얘기를 한다며 진술인에게 판매부분도 힘을 좀 써주고 또 변호사 선임문제도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진술인은 자신이 잘 아는 강ㅇㅇ변호사를 얘기 하였더니 배익기는 강ㅇㅇ변호사는 안된다면서 내가 이전에 책에 대해서 전화로 여러사항을 자문을 구한 사실이 있어 일이 잘못되면 법정까지 갈 경우 증인으로 나올 사람이라며 거절하여 고ㅇㅇ변호사를 추천하여 배익기가 그렇게 하라고 하여 진술인이 미리 예약을 하기 위하여 고변호사 사무실에 들렀는데 재판중이라고 하여 경리에게 메모를 남기고 나온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10월27일 대질심문때 진술에서, 차 안에서 내가 민속당에서 샀다고 했다며 떠들은 것을 담당형사는 물론 여러 직원들도 같이 들었을 텐데 여긴 아예 훔쳤다고 했다고 진술해?

그날 앞에 것은 새삼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고 내가 강의길 변호사를 기피한 이유는 말대로의 증인으로 서야할지도 모르는 그런 까닭도 있지만 한편 역시 김재두 친구라는 소리를 듣고 놀라 그친 것이다 그간 김재두를 알기에 반드시 일 나가다가 중간에 무슨 다른 생각도 있거나 심지어 필경 무슨 변고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야 합당한 이유지만 이때 내가 기피한 까닭에 실망했을지는 모른다 고지환 변호사는 누군지도 모른다

강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방송되기 이전에 내가 그전부터 아는 변호사가 있어 찾아가려니 이날 마침 토요일이라 사무실이 닫겼고 이때 강변호사만이 마침 사무실에 나와 연락이 되어 이로 어떤 물건의 국보지정에 관한 법률적자문을 들으려 했는데 강변호사가 굳이 무슨 물건이냐 물어 부득이 훈민정음이라 말해주니 과연 진품인지 어떤지 먼저 확인되어야 한다는 그런 얘기가 있었다)

 

1. 점촌에서 출발할 때 시작된 얘기가 너무나 중요한 얘기라 진술인은 최대한 천천히 운행하면서 왔습니다

  배익기는 고소사건이 조사가 끝나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고 민사까지 넘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느냐. 나는 그렇게 오래가면 안된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하여 진술인이 직접 민속당을 만나 해결하면 빨리 끝나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배익기는 그런일은 당사자가 하기는 뭐하니까 김사장님이 민속당을 만나서 해결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술인이 그러면 내가 민속당 사장을 만나 되던지 안되던지 얘기  해보고 연락주겠다고 얘기를 하고 상주버스터미날앞에 도착하여 서로 헤어졌습니다.

 

(*나는 한마디도 권한 일 없고 이동춘 사장이 개인적으로 혹 뭘했는지는 모르나 내가 누누히 김재두를 끌어 들이지 말것을 권고한 것을 잘 알고 있다)

 

1. 그후 진술인은 민속당 조사장과 배익기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고소를 취하하고 서로 좋게 해결하면서 배익기가 TV에 나오게 하여 책 가치를 올린 부분도 있고 하니 책을 판매하여 적당한 지분으로 서로 나누기로하고 이를 공증하자는 쪽으로 서로 얘기가 되어 가다가  서로간에 오해가 생겨 중도에 결렬되고 만 사실이 있습니다.

 

(*무슨 오해의 사정이 어떤 경과였는지 분명히 진술하는 바도 없이 내가 녹음해 놓았지 싶으니 50대50의 거짓말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1. 그러던 도중 2008년 9월 5일 헬스장 이동춘사장과 진술인은 낙동 배익기집에서 차를 한잔 하다가 이동춘이 배익기에게 그 귀한 책좀 구경좀 하자고 하였더니 배익기가 책은 지금 볼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만약을 생각해서 분첩을 해서 여러곳에 분산시켜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동춘과 진술인이 분첩이 무슨 말이냐, 왜 분산을 시키느냐고 물었더니 배익기는 만약을 생각해서 일이 잘못되어 빼앗기기라도 하면 몇장이라도 가지고 있을려고 한다 정부에서도 내놓으라고 해도 내놓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분첩이니 이런 말은 이런데 정확한 용어도 아니고 내가 쓰는 말도 아니다

500년 이상 된 옛날책 그것도 낙질이 제대로 끈매져 있는게 있나 그것도 제껍데기도 아닌데, 또 선장본은 실을 풀고 나누고 다시 합쳐 묶으면 되지만 그나마 나는 원래 낡고 서로 흐트려지려는 것이다)  

 

1. 위 내용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2008.10.31

진술인 김재두

 

*위 인감은 신고되어 있는 인감임을 증명 합니다 2008년 10월 29일

 

(*이것도 사실확인서가 아니라 박진규와 함께 가증스레 마치 이전의 경찰 대질진술에서 그렇게 진술한 것 처럼 진술서라 쓰고 있다)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도빈학당 2009. 5. 28. 20:59

 

 

골동 / 2008/12/20 07:29

윤태경의 가게는 행정으로는 상주 함창읍이지만 점촌과 붙어 여기를 가면서 점촌 간다고 할수는 있고 그외로 이무렵엔 아직 봉정복이 지금 곳으로 오기 전일 것이니 점촌 있음이 되고 이외에 또 지역 골동상으로 등록 된 김씨가 있다

한편 조용훈의 동생인가 누가 작고 전에 점촌 살며 사업 한 사람이 있었다니 이날 꼭 사건과는 관계없이 다른일로 점촌 갔을수도 영 배제하지는 못한다

점촌은 작은 마을이 종전에 탄광산업이 일면서 문경읍보다 더 커져 마침내 시가 되었던 것인데 다만 우리풍습에 촌이란 말을 좀 멸칭처럼 쓰는 경우도 있어서인지 점촌시가 마침내 작은집이 큰집된데서 급기야 문경시로 까지 개명한 것 같은데 다만 선산 구미와는 달리 원래부터의 문경읍이 따로 있기에 저으기 혼동이 되고 해서 지금 주민 습관에 여전히 이곳은 점촌으로 부르고 있다

이외 이렇게 지금 문경시 시가지 일데서 벗어난 딴 곳은 같은 문경시지역이라도 점촌간다 말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정길동 최사장에 의해 조용훈이 내게 책 30만원어치를 팔은 적이 있다는 첩보가 들고 이게 다시 손경학이던 누구에 의해서든 8월5일까지 조용훈에게 정길동의 말이 든 것이다

 

골동이라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나름인데 값도 천양지차일뿐 아니라 대체로 집안의 가보처럼 주욱 그대로 일정한 가치를 가진 것과 일종의 재활용품 처럼 나오는 것이 있다

일제때 직 간접적으로 마구잡이 캐 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총독부에 뇌물 처럼 이미 집안에 지켜 전하던 보물을 이렇게 빼내간 것도 못지 않다

지금 조선 백자 주병이나 특히 입이 넓은 광구병(기름병) 같은 것은 생각보다 바로 종전의 아직 전기가 들어 오기전 호롱불에 쓸 기름을 담아두던 그릇으로 집집이 있다 시피한 것으로서 이것이 보다 쓰기 편하고 쉽게 구해지는 소주댓병으로 바뀌고 또 이나마도 시골로까지 전기가 들어오면서 차츰 폐물화 되어 불과 70년대초 까지만 해도 껌을 주고 하루에 수십개씩 수거해 오던 것들이다 

이게 90년대에는 시골의 장독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에는 우선 예전의 수거상들이 시골버스를 타고 가서 며칠씩 자가며 마을로 다니며 거둔 것을 화물로 부치던 것과는 달리 대개 트럭을 몰게 되어 큰독을 운반하기 쉬움과 사회변혁이 이젠 가정에서 예전처럼 큰독을 쓰지는 않게 된 것이다

멧돌 돌구시 따위도 마찬가지로 즉 이제 남의 폐품을 구해야 쉽지 서로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것으로 구한다면 단지 이는 생활에 쓰이는 중고품인 것이다

지금은 이미 시골도 나갈것은 다 나갔고 변할대로 다 변해 뭐 더 이상 쓰임이 폐한 것으로 새삼 이렇게 또 나올것도 없어 보인다 

한참 이런 변혁기엔 시 군마다 매일 수십명씩 전업 부업으로 이런 "폐물"류를 헐값에 거두는 사람이 있고 또 저녁으로 이들을 기다려 다시 거두어 가는 중간상이 있어 성황이었다 하는데 지금은 지역에 몇몇 골동상이 있다해도 거두러 다니지도 않고 그나마 한 둘 소위 가이다시가 있다 해도 열심히 다니지도 않는다 수석고갈 처럼 이게 한때지 재생산 되는 물건이 아니기에 금광에 금이 나오지 않으면 폐광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국 이런 사람들은 안목 보다는 일시적으로 싸게 나오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 관계가 생긴 것이고 이게 끝나면 자연히 같이 따라"폐"해 지는 것이다  

골동수집이 본격 시작된 일제때 부터 쓰이는 가이다시라는 일본말은 아마 일선으로 家(가이) 마다 다니며 사는(다시) 것을 말하고 또 일본말로 굴掘을 호리라고 하는데 이렇게 호리다시는 호리꾼의 도굴품을 사는 것을 말하는것이 될 것이나 이에는 그 습성상 헐값에 사게 된 데서 남모르는 것을 한탕 잘 사게 된 것도 호리다시라고 전용해 말해오게 된 것인가 싶기도 하고 또 흔드는 것을 후리라 하니 곧 값을 후리쳐 산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해와 달이 하늘을 얻어 능히 오래 비추고 사시가 변화해 능히 오래 이룬다는 말 처럼 재활용도 재활용 나름이다 곳곳에 떡방앗간이 생기며 오랫동안 폐물로 구석에 쳐 박혀있다가 썩고 땔감 해 버린 떡판이 마침내 차풍을 타고 찻상으로 다시 살아 나거나 직접 쓰임은 아니라도 맷돌이 관상 조경용으로 다시 빛을 보는 것이 이런 것이다

 

사건발단과정 / 2008/12/18 15:15

낮에 시내서 마침 손경학을 잠깐 만났는데 조용훈과 영주 같이 간 적이 없단다 다른것은 어찌되었건 이점은 완강히 부인하는게 곧 드러날일을 거짓말 하지는 않는 같고 그럼 이점 잘못 짚었나?......   

혹 최사장이나 다시 정길동 등 지금 나로선 누군지 이점은 더 추론을 못하겠다

그런데 당시 우리집에 손경학과 같이 방문한 사람의 말로는 땅보러 가자해서 각자 점심먹고 구미서 자기차에 손경학을 태워 상주에 왔는데 먼저 손경학과 민속당에 들러니 조용훈이 점촌갔다해서 나와서 부원동 땅을 가 보고는 뭐 이런데로 데려왔나 하고 손경학이 그 곁의 석운도예에 들러 그릇을 하나 얻어 나와 오는길에 다시 구태여 민속당으로 가서 조용훈을 만났는데 "배익기가....." 이러며 내 얘기로 둘이 따로 한참 쉬쉬하는게 땅보기는 핑계고 자기차로 민속당에 오기 위해서 같다 했다

 

그런데 이때도 혹 뭐라 조용훈에게 일렀는지는 모르지만 보통 조용훈이 점촌 갈일은 없다 설혹 뭔 물건이 떳다해도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흥정에 안 꺽일려고 가져와보라 하지 잘 가는일 없다

여기서 나중에 내가 들은 바는 최사장이 보도난 처음무렵 가게마다 다니며 배익기에게 책 판적 없었냐 묻고 다녔다는데 틀림없이 이날 뭔 일로 누가 불러내어 최사장과 잘 아는 봉정복이나 윤태경가게와 같은 점촌의 골동가게에 갔거나 누굴만났을 것이다

문경은 예전에 수석산지가 되어 이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차츰 돌이 고갈되자 겸해 하던 골동품으로 많이 전환하여 점촌과 붙은 함창까지 해서 가게가 일곱 여덟개쯤 있고 집에서 여가적으로 하는 사람도 몇있다 

그럼 날자는 8월2일 토요일은 아니고 다음 일요일은 이사람이 성당 가는 날로 아니고 그럼 8월1일 아니면 4일이다 그리고 다음 5일 잘못딸려 나갔다며 들썩한 것이다

결국 아직은 조용훈과 정길동이 아는데 먼저의 넷이 대질에서 정길동이 손희준과 손경학에게 말했다고 스스로 말한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또 최사장도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조용훈의 도둑맞았다는 주장을 의심한 것도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특히 처음 사건 초기 일반 다른 외인들이 그렇게 혹시하고 주저하는 것을 보면 최사장 머리라고 다른 아는 까닭없이 그렇게 쉽게 판단하란 법은 없다 

결국 조용훈은 이미 남들이 다 알면서도 모른척 하고 이용해 놀리는 허위를 남이 별로 모르는 줄 알고 위기를 밟으며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더래도 손경학이 전한게 아니면 조용훈이 2일 토요일 영주경매장 가서 여럿중에 발설한 것이 발단이 되어 3일 누군가에 수소문 되고 결국 이게 4일 무렵 다시 조용훈에게 말이 들은 것일 것이다

 

 

 

무고 피의조서 / 2009/05/19 09:27 

(*조용훈측<이하 曲側으로 표기>에서 일전에 법원으로 문서송부촉탁신청을 해 지정된 자료의 하나인데 보니 곡측의 뭣때문인지 그나마 여직원 이름 같은데 대리인으로 시켜 내용을 지정하고 이렇게 하는척만 했을뿐 사건내용을 숨겨 막상 지정되어 재판부로 와 있는 것이란게 두서도 없이 그냥 군데군데로 되는대로 몇몇장해서 뭐라 수사내용이라곤 거의 없는 중에 한 대목이다

으음...

 

3. 검찰에서 수사가 종결 되는대로 문서송부촉탁을 통하여 사실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이렇게 먼저 준비서면에서 말한데 따라 단지 문서송부촉탁을 하는 시늉만 한 것 같다

그런데 마치 수사에서 여태 그러는 것 처럼 곡측의 변호사도 그래? ...... 

원래 재판을 하자면 수사와 달리 서로 주장을 봐야 하는 것이나 이렇게 재판부에 넘어온 조서들은 아직 기소된 것이 아니기에 비록 수사종결된 자료라도 자기편 진술만 뽑아 볼수있지 상대편것은 제공되지 않는것이라 한다 그러나 처음 조용훈이 진정서라는 명목으로 신고했고 이에 따라 막상 조사해보니 이것이 절도나 무고로 입건하지 못하겠자 내사종결처리 했기에 그간의 수사자료는 고소건과 달리 검찰로 송치되지 않고 그냥 경찰서에 그대로 남게 된 것이 되어 이것은 먼저 나의 문서송부촉탁에서 내가 지정하는대로 쌍방것 모두 재판부로 넘겨져 여기서 다시 내게 빼내 제공된 것이고 이외 곡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도 빼내진 것이다

여기서 2009.3.1.로 상주경찰서에서 법원으로 보낸 내용에는,

 

1.관련근거

사건 2008가합 555물품인도

2.위와 관련 원고 조용훈이 2008.8.11. 우리 경찰서에 피고 배익기를 절도로 진정하여 무혐의로 내사종결된 수사자료 기록일체를 문서송부촉탁 신청인(변호사 박진)의 대리인(ㅅㅈㅎ)이 열람후 지정한 문서사본을 첨부와 같이 송부합니다.

첨부:문서촉탁대리인이 열람후 지정한 문서사본 끝.

 

라고 한 것을 보면 곡측이 지정해 나온 본 자료도 역시 경찰서에 남은 진정으로 내사종결처리된 자료의 일부인 것 인데 당시 내가 지정을 위해 열람을 할때는 본건은 살핀 기억이 없으니 그때 일부러 숨기진 않았을 것이고 내가 간과했던가 보다

그리고 곡측이 지정할때는 비록 내가 지정한 것과 중복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먼저 내가 지정한 것과 중복되지 않는 것을 위주로 당시 몇몇 내가 별 내용없이 복사가 번거로와 지정에서 누락된 것을 위주로 지정되었던 같다

그러나 곡측이 내가 지정한 것의 세부적인 것을 알리는 없을테고 법원의 기록에도 그때까지 곡측에서 내가 지정한 것을 빼내본 기록이 없으니 그럼 아마 곡측이 여직원을 시켜 전체를 복사 지정 하고 이를 보냈으되 재판부에서 먼저 내것과 새로 곡측 이 양쪽의 지정 되어 온 것 중 중복되지 않는 것으로 추려진 것일 수 있겠다 나는 당시 재판부에 자료가 제공된다는 의미는 미처 생각 못했고 단지 내가 자료를 가지기 위해 촉탁신청을 내었던 것이고 그래서 특히 녹취록 같은 복사의 양이 많고 이미 내가 가진 자료는 지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이런 업무를 잘 모르는데 따른 이해부족이 있으니 일단 단정은 못한다

어쨌거나 내가 무고로 조용훈을 고소한 수사에서 곡측의 진술내용과 조용훈의 신고가 내사종결된 뒤에 새로 고소하고 또 검찰항고한 곡측자료는 사정상 자진제공되기라도 하지 않으면 아직 빼내보지 못하고있고 또 기소되어 재판부로 서류가 넘겨지지 않는 이상에는 비록 수사가 완전 종결되어도 검찰에서 상대편 자료는 제공해 주지 않는 같다)

 

(*원래 조용훈의 진정신고 얼마뒤 내가 무고를 고소했는데 이때 내 고소건의 수사자료도 동일사건임에 따라 진정건에 합철했던 것이나 고소건보다 진정건이 먼저 내사종결로 처리되어 쌍방의 첫회 무고조사의 진술받은 부분만 합철되었고 이나마 따로 고소건이 되어 검찰로 송치된 것이기도하므로 이후 내가 지정할때는 내것외에 곡측의 지금 이 무고진술은 보여지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곡측이 지정할때는 역시 자기편 첫회진술만 이렇게 지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 : 조용훈

위의 사람에 대한 무고 피의사건에 관하여 2008.8.26. 상주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사무실에서 사법경찰리 경사 임ㅇㅇ은 사법경찰리 경사 ㅇㅇㅇ을 참여하게 하고 아래와 같이 피의자임에 틀림없음을 확인하다.

......

이에 사법경찰관은 피의사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피의자를 신문하다.

 

문:......

답:... 선고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문: 상훈 연금관계는 어떻게 되는가요

답: 없습니다

 

문: 학력 및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요

답:학력은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상주 재래시장에서 여러가지 자영업에 약 5년간, 민속당 상호로 골동품 매매업에 약 5년간 각 종사를 하였고 그 외는 무직으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문:재산 및 월수입은 어떻게 되는가요.

답:저의 명의 재산은 거주지 가옥 시가 3억원 가량이 전부이고, 월수입은 민속당을 경영하여 월 100만원 가량의 수입이 있습니다

(*이로 보면 역시 손경학이 땅을 구한다는 한 중년여성에게 조용훈이 부원동 석운도예 옆에 조용훈이 물려 받은 땅이 있으니 소개해 주겠다며 사기쳐 차편을 이용하며 대동해 그릇이나 얻어가며 다닌 것은 나를 놓고 정길동과 조용훈 사이에서 구매공작에 관한 야료의 목적이었다

그래놓고 손경학은 내가 고소를 하자 그런다고 자신이 내게 유리할 진술을 해줄줄 아느냐며 취하하지 않으면 도리어 불리한 진술을 하겠다며 버티고 있고 또 나는 책만 지키면 되지 않느냐는 말로 회원인 같이 데리고 이용한 여성에게 다른 진술을 말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엇놈이나 미리 말하지만 모두 지가 무슨 대단한 뭘 아는게 있어 그로 되고 마는게 아니다 다 모른척 알고도 넘어가려는 것이고 얼버무려지려는 것이니 그 붙어 그러는 것이지 무슨 놈의 지 마음대로 좌우 되고 말고...

이미 내가 고소한 것도 가만 경과를 지켜 보면 한순택은 아예 말할것도 없고 가만보면 비록 기소될지라도 김재두 손희준건 처럼 모두 사건의 무고에 대한 증언이 될 만한 부분은 가리켜줘도 확인 노력은 커녕코 모두 이핑계 저핑계에 모른척 살살 피해 빼돌리고 있다 그래서 결국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뭔 개요가 섰단 말인가?)

 

문:피의자가 본건 고소인 배익기를 진정한 구체적인 요지가 어떻게 되는 가요.

답:그에 대하여 별건 진정 사건의 진정인으로 출석하여 진정인 보충 조사시 구체적으로 진술을 하였는데 요지는,

본건 고소인 배익기가 2008.7.27. 오후경 상주시 복룡동 469-2. 2층 소재 제가 경영하는 "민속당" 내에서 고소인이 "홍사집"외 잡서 등 도합 70여권을 금 30만원에 매입하면서 동소 목기로 제작된 궤짝위에 보관하던 위 훈민정음 해례본 1권을 저를 몰래 가지고 가 이를 절취하였으니 처벌하여 달라는 진정 요지 입니다.

(*입만떼면 거짓말에 진술번복을 더 뭐라하랴 만은 교의에서 궤짝위로 장소가 번복된다 또 "저를 몰래"가 아니다 이동옥과 둘이나 있었다)

 

답:......하여 한순택(연락처 011-516-86**)에게 전화를 해서 좀 만나자고 하였더니 영주에 경매에 참석하기 위하여 가던 중 위 같은 날 09:00경 제가 경영하고 있는 민속당으로 왔기에 제가 한순택에게 배익기가 훈민정음 해례본과 관련하여 배익기로 들어 들은 이야기가 없느냐 라고 물어보니, 배익기와 전화 통화시 "골치 아퍼다, 민속당에서 물건 내 놓으라고 그런다"라고 하기에 "너들이 알아서 해라" 등 취지로 대화를 하였다고 하기에 저와 한순택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여 두었고,

그 외에도 김천에 거주하며 조선시대라는 박물관을 개관하기 위하여 준비중인 손이준(40세 가량)에게 전화를 하여 보니 2008.7.29.경 고소인이 전화를 하여 고소인의 거주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직접 목격을 하였고, 그 출처에 대하여 물건을 30만원을 주고 매입한 곳에서 가지구 왔다고 하였으나 구체적인 매입처에 대하여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은바가 있습니다.

(*정길동이나 손희준이 처음 어떻게 조용훈을 선동하였는지 충분히 짐작 간다 2008.7.29.이면 방송취재의 전날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 손의 허위선동이라 해도 보면 모두 절도와는 관계없는 내용인데도 그렇게 고소한 것을 보면 정길동이 절도로 형사고소해라 내가 증언서 주겠다고 사실상 무고의 교사가 있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정길동이 했던 말로 조용훈이 까짓거 무고 팔개월 살 각오하고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말이 단지 그때 최정해와 민속당 갔을때 그때 나온 말인가 했는데 지금 그게 아닌 같다 그래 지금 가만 생각하면 그때 단지 들러리로 최정해를 끌어 넣고 서로 그런 의심의 말이 나온 자리에서 무슨 그런 무고라도 하겠다는 식의 말이 나왔을리는 없는것이다 이미 그전에 정길동과 둘이 상의할때의 나온 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문: 그럼 손이준과 대화한 내용에 대하여는 녹음한 부분이 없는가요

답: 그에 대하여는 녹음을 한 부분이 없는데 다시 통화를 하고 그 내용을 녹음 한 후 한순택과 대화한 내용과 함께 녹취록을 작성하여 증거물로 제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로 보면 원래는 손희준이 아니다 이러고 다음날인 8월 27일 손희준과 서로 통화가 있은 내용의 손희준녹취록의 첫 머리에 정길동이가 형사 민사 증언 다 서준다 해놓고 오리발 깐다고 불평을 하는 것을 보면 이미 먼저 정길동에게 증언을 요청하다가 정길동은 이렇게 손경학과 내통해 중간에서 숨어 야료를 쳐 단지 조용훈을 이용해 나를 압박시킴으로 제게 물건이나 넘겨 받자는 의도일뿐 선동만 하고 막상 요청하니 직접 나서주지 않자 이렇게 손희준에게 넘어 간 것이다)

 

문:......작성하여 둔 부분이 있는가요.

답:현재까지 보관하고 있는 물품 등에 대하여 사진 촬영을 하여 물품 목록 등을 작성하여 둔 사실은 전혀 없으나 앞으로는 사진 촬영을 하고 목록 등을 작성하여 보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2008.9.17.의 제3회 진술에서 금년 8월부터 등재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간 2개를 등재했다 거짓말을 했는데 그럼 8월 26일 이때 조사뒤부터 9.7일 조사까지 그제서야 두점 등재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미 조사된 대로 2007.7월부터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고 골동품을 취급하는 자는 관리대장을 작성하여야하며 관리대장에는 골동품에 대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등재를 하여 관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지만)

 

조용훈의 무고가 충분히 입증되고 남는 정황들  /  2009/05/12 11:49

그간의 경과를 살펴보며 조용훈의 무고가 충분히 입증되고 남는 정황들을 정리하면,

 

1. 방송이 나고 2008년 8월2일 토요일의 영주 경매장에 갔을때 배익기가 그 것을 3억이나 달란다며 그게 그렇게 가는게 아니라며 허위 구매공작을 한 사실확인이 있고

 

2.역시 바둑친구이고 고객인 손경학에게 방송초기 구매 알선을 부탁하고 이에따라 서로 구체적으로 논의한 사실이 있고

 

3.방송초 조용훈의 민속당에서 수리일을 하는 김모가 있는데서 조용훈이 "쟈 십억 벌었다"하고는 저런게 어디서 났어요? 하니 "뭐 보나마나 온 동네 방네 다니며 줏었지"라고 함

 

4.2008년8.5일경 이때 비로소 배익기에게 전화해 "화령사람"이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고 자기가 팔았는게 맞는다고 한다며 야단을 떰 (화령사람은 나보다 수사에서 쉽게 찾아 당시 조용훈에게 무슨 청탁을 받고 확인해 줬는지 사실을 확인해 볼수 있음 조용훈은 나중에 십여년전부터 구입해있던 것이라고 하고 또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라고 번복했음)

 

5.그의 인척인 풍년방앗간 김모를 통해 상주경찰서의 모형사를 만나 자문하니 그런경우 민사로 해야 한다 말해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전에 말하던것과는 달리 엉뚱하게 절도로 고소해 왔음

 

6.그런 물건을 도둑 맞았다면서 2008년8월11일에야 절도라 신고하며 무엇보다 7월 30일 저녁 처음 지역방송으로 나고 이틀 전이 되는 2008년7월 28일 오후는 조용훈이 주장하는 배익기에게 책을 판 날로서 이는 이미 그전부터 배익기가 소유하고 있었음이 입증 되었음

 

7.해당물의 도난당했다는 장소가 교의 위에 둔 것을 커피 타는사이 가져갔다에서 나중에 김재두의 허위 진술에 맞춰 다시 궤짝위의 것으로 번복 되었고

 

8.십여년전쯤 사들인 물건이라는 주장에서 방송을 통해 조상으로 물려 받은 것이라 번복함

 

9.십여년전 구입 또는 조상으로 물려받아 소지 하던 것으로 박진규가 1000만원 주겠다는 것도 값이 맞지 않아 팔지 않았다는 물건의 표제를 그린 것이 엉터리로 드러났고

 

10.한편 이에 대해 박진규는 1500에 사려 했다고하여 서로 말이 틀리고

 

11.책을 창밖에 널어 말리다가 비를 맞힌적이 있다는 주장에서 민속당의 책들을 창밖에 널 데도 없으려니와 조용훈의 같이 맞혔다는 다른 책들은 쭈구러지도록 심했지만 그무렵 상주에 그렇게 소나기 온적도 없고 해당물은 아무 그런 관계가 없음이 증언과 방송 된 영상으로 입증 됨

 

12.이나마 그동안 조용훈의 무수한 이력에서 압수수색이나 그간 거래대장에 이런 물건이 드러난 바도없었음

 

13. 그간 민속당에 출입한 무수한 상인중에 그무렵만 해도 ㄱㄱㄱ. ㅇㅇㅇ등 고서에 관심있는자가 민속당에서 몇되지 않는 책을 살펴 보았지만 오직 박진규외에 그것을 봤다는 사람이 없으며 그나마 박진규의 진술도 모호한데가 많은데다가 특히 책장수 최정해가 정길동과 방문하여 그런책을 왜 그런데 두었나 하고 의심해 말하니 잘몰라서라고 하자 저기있네 하고 마침 민속당의 가게에 붙은 훈민정음을 디자인한 큰 도배지를 가리키자 크게 놀랐으며 그 뒤 최정해는 먼저 자기가 그집책을 다보았지만 그런 비슷한것도 없었다고 잘라 말함

 

14.도난당했다는 것을 김재두를 통해 10억에 도로 사겠다느니 지분을 반반으로 서로 나누자느니 청한 증거가 있고

 

15.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완전히 아예 자기 민속당에서 나오지 않은 것으로 스스로 여기고 있는 거짓반응이 나옴

 

이게 무고가 안되면 뭐가 무고가 되며 그렇다면 굳이 수사란게 더 의미가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것도 이 이상 더 증거가 나와야 할거라면 세상의 사건이 얼마나 수사할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