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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공습(Belfast Blitz),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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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영국

2021. 4. 1.

▣ 벨파스트 블리츠(Belfast Blitz)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1년 4월과 5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시에서 전략 목표물에 대한 4차례의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공습 과정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시내 주택의 절반 정도인 56,000채 이상의 주택이 파괴되었으며 2천만 파운드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위 사진) 항공모함이 진수되고 있는 벨파스트의  하랜드-울프(Harland and wolff) 조선소, (아래사진) 쇼트 스털링(Short Stirling) 폭격기를 생산하고 있는 항공기 제작사인 쇼트-하랜드(Short and Harland Ltd)의 항공기 제작 공장

▲ 벨파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수품 생산 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타이타닉호를 건조했던 하랜드-울프(Harland and wolff) 조선소는 6척의 항공모함을 비롯하여 140척의 군함을 건조했으며 항공기 제작사인 쇼트-하랜드(Short and Harland Ltd)는 유보트를 잡는 대잠초계기인 쇼트 선더랜드(Short Sunderland) 125대, 4발 중폭격기로 독일 본토를 폭격했던 쇼트 스털링(Short Stirling) 폭격기 1,200대를 생산했습니다. 또한 벨파스트의 공장들은 포탄과 군복들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도시의 특성 때문에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오른쪽 위사진) 보포스 40 mm 대공포는 영국군의 대표적인 소구경 대공포로 현재에도 일부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베스트셀러입니다.  (왼쪽 위사진) 3.7 인치 대공포는 영국군의 대구경 대공포로 독일의 88 mm 대공포, 미군의 90 mm대공포와 유사한 성능을 보였습니다. (오른쪽 아래사진) 영국 공군의 허리케인 전투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공군 폭격기 요격에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왼쪽 아래사진) 대공 방어용 기구는 북아일랜드에 1940년에 도입되었습니다.
루프트바페의 벨파스트 공습에는  헤인켈  111(Heinkel, He 111), 융커스 88(Junkers, Ju 88), 도르니어 17(Dornier, Do 17)라는 쌍발 폭격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 첫 번째 공습은 1941년 4월 7일부터 8일까지의 밤이었고, 벨파스트의 방어를 시험하기 위해 일어난 작은 공격이었습니다. 8대의 폭격기가 항공기 공장과 조선소 일부를 폭격했습니다. 이 당시 북 아일랜드의 대공방어는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아 취약했는데 대공포로 24발의 대구경포와 14발의 소구 경포가 있었으며 이 중 22개는 벨파스트에  4개는 런던데리에 배치되었습니다. 1940년 7월 20일에는 에든버러 근처 턴하우스에서 허리케인 전투기를 갖춘 왕립 공군 편대의 앨더그로브(Aldergrove, 현재의 벨파스트 국제공항)로 이동하였으나 주간 작전만 가능한 상태이었습니다. 또한 벨파스트 시내에는 시민들을 위한 방공호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 두번째 공습은 1941년 4월 15일(부활절 화요일)부터 다음날까지 180대의 루프트바페 폭격기가 벨파스트 시의 조선소 주변의 주택가를 공격했습니다. 5시간 동안의 폭격에서  673개의 폭탄과 29,000개의 소이탄이 투하되었으며 900명이 사망하고 1,50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번 런던을 제외하고 야간 공습에서 가장 큰 인명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독일 공격의 폭격 후 잔해가 치워진 하랜드-울프(Harland and wolff) 조선소

▲ 세 번째 공습은 1941년 5월 4일부터 5일까지의 저녁과 아침에 일어났고 150명이 사망했습니다. 204대의 루프트바페 폭격기가 벨파스트 시의 조선소와 시내를 공격했습니다. 3시간 동안의 폭격에서  237톤의 고폭탄과 96,000개의 소이탄이 투하되었습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벨파스트 공습은 5월 5일–6일 밤에 일어났습니다.   

 

독일 공격의 폭격 후 잔해가 치워진 성 페트릭 교회(St. Patrick's Church) 주변의 벨파스트 시내 모습

▲1941년 4월과 5월 네 차례의 루프트바페 공습 과정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500명이 부상당했으며 400명이 중상이었습니다.  시내 주택의 절반 정도인 56,000채 이상의 주택이 파괴되었고 11채의 교회 , 병원 2곳, 학교 2곳이 파괴되었습니다.  이 중  1,300채 이상의 가옥이 철거되었으며 당시 화폐가치로 2천만 파운드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22만 명이 독일 공군의 폭격을 피하여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

 

▲ 벨파스트 시내 Saint Anne’s Cathedral 건너편에 있는 작은 박물관인 북아일랜드 전쟁 기념관(Northern Ireland War Memorial Museum)에는 벨파스트 공습(Belfast Blitz)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