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칠부능선 2022. 1. 21. 13:18

    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 소감

    내 안에 웅성거리는 무수한 타자들

     

    구지가(작자미상)는 주술성이 강한 역동적인 노동요입니다. AD 40~50년 경, 김해 구지봉에서 신()의 계시가 들려와 모든 백성들이 구지봉에 모여 신의 말씀대로 흙을 파헤치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노래를 불렀다 해요. 300여 명의 군중이 춤추며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로 싼 금빛 그릇이 내려왔다지요. 그릇에는 6개의 황금알이 담겼는데 알들은 6명의 귀공자로 변했다지요. 귀공자들은 각각 6가야의 왕이 되었고요. 그 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귀공자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라고 합니다.

    아득한 시간성 속에 고고한 숨을 내쉬는 신화의 한 가운데, 구지가가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노래의 기능을 생각할 때, 문화 예술의 도시 김해시가 구지가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제정한 제1 <구지가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저로서는 매우 영광스럽고 두렵기마저 한 게 사실입니다. 심지어 구지가라는 노래가 지닌 주술성이 저를 불러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 마저 합니다.    

    연일 비가 내렸습니다. 수상 소식이 있던 날도 비가 내렸습니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우산을 받고 길을 나섰습니다. 두 해 전에 시,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가 왔던 둑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둑길에는 산사나무 서너 그루 있습니다. 바람소리 빗소릴 들으며, 그걸 등으로 다 들으며 천천히 둑길를 걸었습니다. 여전히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는 중입니다. 하나의 어항을 쓰는 두 마리 물고기의 유영처럼 우리는 서로를 스쳐 지납니다. 그때, 등 뒤로 한꺼번에 가을이 와버린 걸 알았습니다.

    존재와 인간의 눈 맞춤에서 사건은 일어난다. (파르메니데스)”고 합니다. 이때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말은 세계와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인식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사건이나 인식의 자리에 시()를 놓아도 좋을 테고요.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 시는 부러진 꽃가지나 산사나무나 존재하는 모든 심리만상이 나 아닌 것이 없다는 갑작스런 인식에서 왔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시를 쓰는 일은 스스로 악기가 되고 연주자가 되어 존재의 현-string을 우는 일일 텐데요. 대상을 더 깊이 듣고 연주하는 일에 나를 더 내 주어야겠습니다. 모든 존재들에게 이 상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수상 소식 이틀 전 꿈속에 저에게 글라스 가득 맑은 술을 따라주신, 돌아가신 어머니께 이 기쁨을 올립니다.

    2021 9. 조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