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칠부능선 2022. 5. 12. 08:52

    황홀한 노동

    송혜영

                                                                                                                            

     

     그들이 왔다.

    긴 머리를 야무지게 뒤로 묶고 왼쪽 귀에 금빛 귀걸이를 해 박은 대장을 선두로 그들은 우리 마당에 썩 들어섰다. 젊은 그들이 마당을 점령하자 이끼 낀 오래된 마당에 활기가 넘쳤다. 대장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재며 장비를 풀어놓았다. 그리곤 진군하듯 헌 집을 접수해 나갔다.

     ‘두두둑’ 오랜 세월 소임에 충실했던 노쇠한 양철지붕이 끌려 내려왔다. 이가 빠진 창문도 급히 몸을 빠져나왔다.. 제 구실을 못한 지 오래된 굴뚝이 뭉개졌다.

     마당 가득 유월의 때 이른 폭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로, 귀 뒤로, 싱싱한 뒷덜미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셔츠의 등판은 금세 땀에 젖어 몸에 척 들러붙었다. 나는 바람 한 점 없는 이른 무더위가 내 탓인 것만 같아 돈을 주고 일을 시킨 게 외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런 내 심경이 무색하게 그들의 얼굴에는 짜증과 피로의 기색이 없었다. “이번 현장은 너무 빡세다”며 투덜거리는 뒤끝에도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간간이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지방이 완전히 연소된 그들의 팔과 다리는 좀처럼 쉬지 않았다. 작업 틈틈이 잠깐 숨을 돌려 담배 한 대 달게 피우는 게 휴식인 셈이다. 그들의 잰 손과 부지런한 다리가 가 닿자 오래된 집은 세월에 입은 깊은 생채기와 갈라 터진 속이 말끔하게 치유됐다.

     그들은 아침 일곱 시 반이면 어김없이 우리 마당에 들어섰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내 게으른 습관은 조정이 불가피했다. 기상 시간을 파격적으로 앞당겼고 낮잠도 멀리했다. 그리고 그들의 ‘빡센 노동’에 대한 보답으로 국수를 삶고 빵을 구웠다. 아껴두었던 매실 원액으로 차가운 음료수도 열심히 만들어 바쳤다.

     나는 현장 감독을 빙자해 일하는 그들 사이를 마음 놓고 누비고 다녔다. 이것저것 참견하려고 했지만 입 댈 데가 별로 없었다. 그저 그들의 활기찬 노동을, 정직한 노동으로 단련된 몸을 황홀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의 알배기 종아리를, 암갈색 팔뚝을 홀린 듯 따라다녔다. 노골적으로 바라보다 들키면 그들도 나도 민망할 것 같아 슬금슬금 안 보는 척 훔쳐보았다. 국수에 얹을 애호박을 볶으면서도 간유리에 비친, 진지하게 일에 몰두하는 그들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보여준 황홀경은 삼인 일조의 젊은이 여섯이 한꺼번에 지붕에 올라 기와의 일종인 ‘슁글’을 덮을 때 절정을 이루었다. 이슬이 미처 마르지 않은 맨 지붕에 오르는 건 자살행위에 버금간다. 그나마 좀 시원한 아침녘에 기와를 덮는 작업을 할 수 없는 이유다. 물기가 바싹 마른 지붕에 그들이 올랐을 때, 여름 해는 젊은이들의 정수리를 녹이려고 작정한 듯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푸른 하늘만을 배경으로 그들은 작업을 시작했다. 땀에 푹 젖어 박자를 맞추며 경쾌하게 기와를 맞추는 그들을 입을 벌리고 올려다보려니 눈이 부시었다. 그날 햇볕이 유난히 강렬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건강한 젊음이, 정직한 육체가 내뿜는 광채 때문에 더 눈이 부시었다. 나는 목을 뒤로 잔뜩 젖힌 채 그들의 노동에 한껏 매료되어 있었다. 그때 가늘어진 눈으로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이 돌연한 물기는 무엇인가. 그들의 몸이 보여주는 황홀경에 감동해서 눈물겨워진 것인가. 아니면 폭염 속 그들의 치열한 노동이 안쓰러워서인가. 아! 나는 한 번이라도 저들처럼 삶과 치열하게 정면으로 마주 선 적이 있던가. 부끄러움도 섞인 복잡한 눈물이었다.

     나는 내내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내딛는 발자국 하나까지 무심할 수 없었다. 몸뚱이를 금쪽같이 아껴가며 신통치 않은 머리만 굴리며 삶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데 이골이 난 터에, 가까이에서 접한 그들의 정직한 노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침내 나는 잔머리 굴리지 않고 몸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경의(敬意)를 보탠, 진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일주일 간 속도전으로 일을 끝낸 그들은 장비를 챙겨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그들의 빠르고 야무진 일솜씨 덕에 위태위태하던 헌 집은 산뜻한 새집으로 거듭났다. 이제 마당은 이전의 고요를 찾았고 나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그들이 깔아놓고 간 튼튼한 대청마루에 예전처럼 하는 일 없이 앉아 있다. 그들은 지금 어느 ‘빡센 현장’에서 짬짬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가. 앞으로 오랫동안 그들이 남기고 간 시큼한 땀 냄새와, 알이 꽉 찬 종아리와, 황홀한 노동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