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방황하다 정착하고 지난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야만 하는 가슴시린 젊은 날의 기록,

[펌] 한평생 거짓말만 했던 독재자 박정희와 그 친인척 비리 / 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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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umanities/22_한국역사

2015. 5. 30.


  (▲ 박정희가 "본인은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는 민정불참 선서식을 하는 장면 )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끝없는 거짓말을 해왔다.

박정희 집권 18년을 살펴보면 61년 5.16 군사쿠테타, 69년 삼선개헌,72년 유신개헌을 통해서 권력을 잡고,장기집권,영구집권을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박정희는 국민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늘어 놓으며 속여왔다. 구체적으로 박정희가 어떻게 거짓말을 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민정 이양 공약과 대통령 불출마 선언.

 

박정희의 군부세력은 61년 5.16 쿠테타를 일으키면서 6가지의 '혁명공약'을 발표한다. 그중 한가지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는 '민정이양' 공약이다. 민간 정치인에게 정권을 넘기고 군은 본연의 자리로 복귀하겠다는 공약이다.

 

또한 박정희는 63년 2월 27일 시민회관에서 눈물을 흘리며 정치를 민간인에게 넘기고 자신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서식을 했고, 이 장면은 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당시 상황을 김준하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는(박정희) 몇 번이고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을 꺼내 닦기도 했다.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박정희 의장의 언동은 진실하게 보였으며 어느 한구석에서 거짓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주연배우의 역을 완벽하고 훌륭하게 해낸 것이다.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보여주고 싶었던 사상 최대의 정치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공약과 선언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63년 대선에 박정희는 출마했고, 결국 그의 눈물은 철저한 국민 기만극에 불과했으며,또한 이것은 박정희 거짓말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삼선 개헌 절대 없다. 이승만처럼 되지 않겠다. 

 

67년 치러진 총선은 철저한 부정선거였다. 온갖 정치공작과 관권,금권 선거가 자행되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나중에 박정희에게 토사구팽을 당하고 결국 살해되었던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다. 67년 총선에서 이처럼 철저한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던 이유는 공화당이 국회 2/3 의석을 확보해 박정희를 위한 삼선개헌을 하자는데 그 숨은 목적이 있었다.

 

박정희의 임기는 71년으로 끝나며 원래 더 이상 대통령을 할 수 없었는데, 헌법 개정을 통해서 박정희를 또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 개헌선인 국회 2/3 의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67년 박정희는 목포에서 출마한 신민당의 김대중을 낙선시키기 위해서 목포에 내려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여러가지 지역공약과 함께 당시 목포에서 출마한 공화당 후보 김병삼의 지원 연설에까지 나섰다.

 

다음은 67년 5월 26일 중앙일보 기사다.

 

지방시찰을 통해 공화당 의원 후보 등을 간접 지원해 온 박 대통령은 26일 목포에서 첫 유세를 벌임으로써 선거전의 제1선에 나섰다. 정부각료들은 이와 더불어 목포에서 이례적인 각료간담회를 열었을 뿐 아니라 정일권 총리의 남·서해안 시찰 및 그 밖의 각료들의 빈번한 연고지 순시 등으로 공화당 후보 집중지원의 인상 짙은 「행정활동」을 활발히 시작했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은 26일『헌법을 개정하여 3선을 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상오 9시 30분부터 약 25분간 목포 역전에서 공화당 후보인 김병삼씨의 지원유세에 처음으로 나선 박정희 공화당 총재는 약 2만명에 이르는 청중에게야당이 주장하는 개헌설에 대해 이와 같은 그의 소신을 밝히고 『대통령으로 나를 뽑아 준 이상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공화당의원을 많이 뽑아달라.』고 호소했다.

 

박정희 총재는 특히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여당을 뽑아야 된다.』고 강조하면서 『김병삼씨가 장관직에 있으면서 출마를 꺼렸으나 내가 가장 신임하는 박력있는 일꾼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출마를 권유했던 것』,『김병삼씨를 뽑아주면 그와 협조하여 이 고장발전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박정희는 당시 이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 했고, 또한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삼선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박정희는 기자회견에서 삼선개헌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고『정치인은 진퇴를 분명히 해야한다』면서『나를 제2의 이 박사로 만들 셈이냐』고 단호히 발언했다. 장기집권을 시도하다가 국민들에 의해서 쫓겨난 이승만(박사)처럼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이런 발언과 약속은 모두 거짓이었다. 5.16 쿠테타를 일으키면서 내세웠던 "민정이양" 공약과 "대통령 불출마"  선언에 이어서 또다시 공수표가 되버렸다. 69년 공화당은 박정희의 삼선개헌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던 것이다.

 

이번이 확실한 마지막, 영구집권론은 인신공격

 

권력의 화신 박정희의 거짓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71년 김대중과 맞붙었던 대통령 선거, 당시 우리나라 국가예산은 5242억원이었는데, 박정희는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규모의 600억-700억의 돈을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6백억 김종필 증언,7백억 강창성 증언, 동아일보 김충식 기자의 책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에서)

 

이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선거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이 되자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이번이 마지막" 이라며 또다시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  71년 4월 26일 중앙일보 보도를 보자.

 

박정희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나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이번 선거에서 다시 한번 국민이 나를 신임해준다면 보다 대국적인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해 여당에 대해서는 정권을 계승할 유능한 후계 인물을 육성하는데 힘쓰고 야당에 대해서는 정권인수 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온갖 협력과 지원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중략)

박정희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25일 『나를 한번만 더 뽑아달라고 하는 것이 이 기회가 마지막임을 확실히 말해둔다』고 말함으로써 4선 출마를 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박 후보는 이날 하오 2시 서울 장충공원에서 열린 마지막 대도시 유세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나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부정부패를 뿌리뽑은 후 정부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박 후보는 『요즘 야당 사람들은 나를 이번에 또 대통령으로 뽑으면 총통제를 실시하여 죽을때까지 대통령을 할 것이라고 인신 공격하는데 이 자리서 분명히 말하거니와 내가 한번만 더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 기회가 마지막임을 확실히 해둔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박 후보는 24일의 부산 유세에서 『재작년 국민투표 때 내가 벌인 방대한 사업을 매듭짓기 위해 한번만 더 나가도 되겠느냐고 물어,여러분들이 두 번·세 번이 아니고 한번 만이라면 좋다고 하여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처음으로 4선 출마를 하지 않을 뜻을 밝혔었다.

 

국민들에게 이처럼 "이번이 마지막"임을 여러차례 강조한 박정희는 72년 10월 유신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어용단체를 통한 대통령 간접 선거 방식으로 바꾸어 종신 집권을 시도한다.

 

72년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를 제8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전체 대의원 2359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박정희는 2357표를 얻었다. 2표는 무효표, 그야말로 100%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71년 대선때 김대중이 예상한 그대로 박정희 영구집권의 1인 총통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후 수많은 국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엄령과 9번의 긴급조치등의 폭압 통치로 마지막 순간까지 대통령 자리에 집착하다 결국 79년 10월 김재규의 총탄으로 박정희 시대는 끝나고 말았다.

 

박근혜는 이런 박정희를 '사심없는 지도자' 라고 높이 평가하지만 '사심없는 지도자'이기는 커녕,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국민들을 끊임없이 속여왔던 '사심으로 꽉찬 지도자' 며 '독선에 빠진 독재자'라는 평가가 정확할 것이다.

 

출처: 서프 디케 (gdhwang)

 

 

박정희 친인척들의 비리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었다. 

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박정희의 또 다른 딸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또 어떻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나? 육영재단도 수천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무슨 수로 코스닥에서 한방에 46억원 짜리 대박을 치나? 

이게 청렴한 대통령의 표상이라는 박정희의 모습이다. 

게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었다던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딸 박재선을 의사와 결혼시키고, 형 박상희의 둘째 딸 박계옥의 남편 김용태를 그 막강한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 뿐이랴!!!! 

박상희의 세째 딸 박금자를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반기언과 혼인시키고, 결정적으로는 박상희의 막내 딸 박설자를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의 아들인 김희용과 결혼시켰다. 김희용은 현재 벽산계열인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회장이다. 

이 박설자로 말미암아 박정희 집안이 드디어 그랜드 서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박정희의 조카 박설자의 남편 김희용의 형 김희철이 현재 벽산그룹 회장이다. 

김희철의 부인, 그러니까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가 바로 LG그룹의 한 축인 삼양통상의 창업자 허정구의 딸 허영자다. 이 허영자의 조카사위, 그러니카 허영자의 남동생의 사위가 바로 조선일보 후계자로 알려진 방준오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 참 웃기는 거 발견했다.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인 허영자의 오빠가 현재 삼양통상 회장인 허남각이다. 

이 허남각의 딸 허정윤이 얼마전에 정대호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이 정대호가 그 유명한 황해도 재령의 대지주의 아들인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의 손자이자, 현재 강원산업 회장인 정문원의 아들이다. 

이 정문원의 부인 최금자의 언니가 최금숙이다. 최금숙이 누구냐? 바로 얼마전에 형제의 난으로 물러난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의 부인이다. 

게다가 정문원의 동생이 정도원인데 정도원에게 두 딸이 있다. 

큰 딸 지선이는 기아자동자 회장인 정의선과 결혼했다. 정의선은 누구냐? 현대자동차 정몽구의 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회장의 손자다, 이 말이다. 

작은 딸 지윤이는 박성빈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이 박성빈은 또 누구냐?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포철 박성빈이랑 현대 정의선이랑 동서가 된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철강산업을 하려고 부지까지 선정하러 다니다가 포기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박성빈을 좀 파헤쳐보면 아주 재밌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서프앙들에게 미안해진다. 양해 바란다. 

박성빈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다가 요즘 무슨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파이프 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까 무슨 다국적 기업인 것 같은데 국내 대리점을 영업하는 듯 하다. 전자신문같은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듯 하다. 잘 나갈 수 밖에 없다. 예를들면 사운드파이프에서 무선랜 환경을 구축했다는 아산병원은 현대 계열 아닌가?? 

박성빈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박태준이 국무총리직에 있을 때 드러난 박성빈의 부동산만도 강남구 역삼동의 170평짜리 카센터와 강남구 신사동의 빌딩 등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남동에 빌라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없다. 

박성빈의 매형 김형수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수는 박태준의 한국화가 딸 박유아와 결혼을 했는데, 박유아는 본래 변호사 고승덕과 살다가 헤어졌다. 

이 김형수는 또 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맥도널드 사장과 국내에서 일본 도요다 자동차 렉서스를 수입판매하는 렉서스 케이모터스 대표이사다. 

그런데 이 김형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다. 이 김도근의 이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지향적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등등 골 때리는 이력이 꽤 많다. 

문제는 김도근의 큰 아들이자 김형수의 형인 김진재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박정희시절부터 여기저기 부산지역을 마구 쑤시고 돌아다녔다. 청년회의소니 부산 싸이클 연맹이니 뭐니 닥치는대로 자리라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총력안보 부산시 협의회 특별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부산시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부산 동래구 새마을지도자연합회 고문직도 맡았다. 

열심히 하면 위에서 알아보는 법, 전두환이 급조한 민정당 간판을 달고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내리 5선의원이 되었다. 

이 김진재의 아들인 동일고무벨트 기획이사 1972년생 김세연이 그 유명한 춘천 한승수의 딸 한상은과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왜 한승수가 무소속으로 있다가 뒤늦게 또 다시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는지 답이 나온다. 

그런데 이 괴상한 상황을 우리 서프앙들이 알아야 한다. 이 한승수가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한승수의 장모가 육영수의 큰언니 육인순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에게 한승수는 사촌 형부다. 한승수의 장인은 일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낸 홍순일이다. 

이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사위들이 세명이나 국회의원이 됐다. 예전에 서주산업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혀바닥 시뻘겋게 되는 아이스 바를 다들 먹어 봤을거다. 그 서주산업의 회장이 바로 국회의원을 지낸 홍순일의 다섯째 사위 윤석민이다. 

한승수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홍소자가 혜원여고 교장을 지냈는데 알아보니까 혜원여고 이사장 윤석민의 처형이네?? 헐... 신문에는 그런 관계가 안 나와서 참 재미가 없다. 

홍소자랑 열린우리당 이미경의원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또 만주지역에서 엄청나게 크게 농장사업을 벌였던 천재라는 장덕진이라는 사람이 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사위다. 이 사람은 박정희정권 하에서 장관도 지냈다. 분명히 장덕진과 한승수가 춘천고 동문으로 친분이 있어서 동서가 된 거 같다. 

전국민이 뻔질나게 소풍가는 한국민속촌 회장 정영삼도 육인순의 사위로서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어쨌든 이렇게 오만가지 요직은 다 해먹었는데 무슨 박정희가 친인척을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승수의 아들 한상준은 얼마전 이희현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내가 깊이 파보니까 이희현의 아버지, 그러니까 한상준의 장인은 유니드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이화영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웬걸?? 

이 이화영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개성상인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에서 띄워주는 성북동에 사는 동양제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회림의 아들이었다. 다들 봐서 알겠지만 ITV 폐업할 때 그 모습이 마지막 개성상인의 모습인가? 

내가 그동안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후원회장 이회림이 왜 그랜드 서클 안에 안 들어오나, 의아했다. 그러니까 이회림과 한승수가 사돈을 맺은 거다. 

어쨌든 한승수같이 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낸 학벌 좋고, 경력 좋은 사람이 부인까지 데리고 가서 박정희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깜빡 속아넘어가겠다. 여러분, 한승수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에요, 조카사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까 언급했던 박태준의 사위 중 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박태준의 딸 가운데 디자이너인 박경아가 있는데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과 이혼을 하고, 김병주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김병주는 1962년생인데 얼마전까지 미국 칼라일 그룹 아시아지역 회장 겸 이사였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졸업하였다. 

김병주는 국민의 정부시절 자민련이 연정을 할 즈음 박태준이 총리가 되기 직전에 칼라일 코리아 사장이 되었다. 김병주는 쌍용정보통신을 꿀꺽하더니, 5000억원을 쏟아부어 한미은행을 먹었다. 하나은행마저 잡아먹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한미은행을 4억달러에 사서 씨티은행에 27억달러에 팔아먹었다. 물론 그 이익은 미국 칼라일의 몫이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외국계 인사로 초대된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요즘 칼라일 간부 5명과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돈을 긁어들이고 있다. MBK는 마이클 병주 김의 약자다. 싱가포르 정부투자기관에서 5억 달러를 끌어들였고, 캐나다 교직연금에서 2억 5천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삼성생명, 대우정밀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인물은 민주개혁세력이 끊임없이 눈여겨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 청렴하다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박재석은 연필장사를 하다가 박정희 덕분에 국제전기기업 회장이 되었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던 조부영같은 사람이 거기 이사출신인 걸 보면 대단한 은혜를 입은 거다. 

게다가 박무희의 또 다른 아들 박재호는 벽돌공장에 다니다가 박정희가 집권한 후 동양육운 회장이 되었다.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있나?? 

박정희가 친인척에게 엄했고 공사구별이 철저했다는 소리는 다 뻥이다. 말이나 못하면 얄밉지나 않겠다. 이상과 같이 해 줄만큼 다 해주고 해먹을 만큼 다 해먹었다

 

 

 


ⓒ 민족정기

출처 : 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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