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이기자 2007. 12. 19. 16:41

 

그녀, 막무가내다. 무턱대고 사과하란다. 그토록 '사랑스런' 얼굴을 하고선, 상민(설경구)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다. 어이가 없어 기가 '턱턱' 막힌다. 일부러 한 것도 아닌데, 사과를 강요한다. 슬슬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에잇, 정말 김태희만 아니면….' 나중엔 숫제 애원까지 한다. "제발, 제발, 사과해주라"고. 파르르 떨리는 진아(김태희)의 입술에 짜증은 돌연 측은한 마음으로 바뀐다. 역시, 예쁜 것들 앞에선 한없이 나약해진다.

 

'모' 아니면 '도', 선택의 기로에선 상민의 내공도 만만찮다. '바람 풍'이라고 해도, 못 이기는 척 "'바담 풍'이 맞다"고 해줄 수도 있겠건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도 참 독하다. 곤충을 돌볼 때 보였던 다정다감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는 게 그리 어렵나. 기 싸움을 하다 마지못해 꺼내는 말이 고작 "유감이다"라는 애매한 말이다. "부릉부릉~" 사랑스런 그녀 진아, 전투력이 급격히 상승한다. 이내 싸움은 시작된다. 이성은 집나간 지 오래다. 동물적인 전투 본능만이 남았다. 둘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어차피 시작한 싸움이다. 제대로 하는 게 관객들에게 보답하는 길임을 둘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말다툼을 하다 도끼로 머리를 내려찍고, 자동차로 미친 듯이 들이받는다. 비가 내려 질척해진 땅을 부둥켜안고 수 바퀴 구르며, 쇠몽둥이를 거침없이 휘두르기까지 한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처절한 격투신 저리가라 할 정도다. 정말 '제대로 조진'다. '공공의 적2' 강철중 검사가 보면 흐뭇해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 맞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못 씹어서 안달 나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도 않다. 상민이 다쳤다는 소식에 만사 제쳐두고 한달음에 병원을 찾는 그녀다. 성난 암사자 같지만, 마음은 한없이 여리다. 노래 가사처럼 정말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다. 그의 마음 안에도 진아가 있다. "너네 이혼한 지 얼마나 됐냐"는 친구(서태화, 축산과 교수역)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3개월하고 이틀째."

 

 

헤어짐 뒤에는 지독한 외로움만 남았다. 상민은 죄 없는 욕조를 수세미로 벅벅 문지르며 화를 달래고, 진아는 '미친년 가발'(펑키 스타일)을 쓰고 펑펑 운다. 그것도 유리로 만든 관 위에 앉아서.

 

노골적인 휴대전화(이른바 김태희폰), 우유광고는 보는 맛을 떨어뜨린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치가 떨리도록 깔끔한 성격의 소심남 역을 맡은 설경구 특유의 농익은 연기와 김태희의 예쁜 얼굴 덕에 저급한 부부싸움 이야기에 빠질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친절한' 한지승 감독은 싸움의 해결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만능 해결책을 말이다. 상민이 시계추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에 답이 있다. 그리고 이건 여담. 독하게 나를 미워해줄 사람이라도 곁에 없는 이들은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좋다. 한없이 서글퍼진다. 13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