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오주르디 2005. 5. 3. 02:03

늦여름 소나기 맞고 감기 걸린 딸. 남도 여행 4일째
 

 

서른 고개 넘어 불혹의 능선을 넘으려 할 때

내 생애 첫 아이와 대면을 했습니다

 

출근과 퇴근, 사무실과 아파트 사이를 

잠시 분주하게 오간 것 같은데 그동안

어느새 아이가 훌쩍 커버렸습니다

 

"아빠, 나 열 있어"

이마에 손 얹어보니 따뜻합니다 그래도 강행했습니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아내가 이미 짐 보따리

자동차에 꼼꼼히 실어 놓았기 때문이지요

 

거제도와 주변을 훑기로 하고 출발했지만

원래 이곳저곳 기약없이 기웃거리는 성향이라

거제까지는 하루 이상 걸려 도착했습니다

밤도 늦고하여 한 두번 묵었던 적이 있는

에머랄드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아담한 정원이 내다보이는 호텔 1층 방 

후두둑 굵은 비소리 조차 정겹습니다

호텔 1층 방에서 작은 정원 바라보며

빗소리 음악 삼아 커피를 마셔 보셨나요?

 

야생화들이 빗줄기에 잔뜩 매를 맞고는

아예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구어버립니다

우리 딸아이도 좀 저기압입니다

"아빠, 나 정말 머리 아파" 

이런, 독감이 분명합니다

 

좀 걱정도 됩니다

딸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응, 그래" 이런 대답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그때 아내가 선수를 쳤습니다

"차에 예쁜 핑크색 담요가 있어. 핑크색. 정말 이쁘거든."

아이가 관심을 보입니다

"진짜 핑크색 담요야? 이쁜거야?"

 

그렇게 우리는 딸아이 감기를 담요에 둘둘 말아

차에 싣고 거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비와 바람, 번개와 천둥, 성난 파도,

그래도 차안은 따스했습니다

 

세상에 온통 정신 빼앗겨 허둥거릴 때

내게 기쁨으로 다가온 한 생명,

출퇴근에 쫓겨 관심 주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컸습니다

 

감기를 담요에 둘둘 말고는

엄청안 폭우속에서도 하하 호호

함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늦여름 소나기 맞고 감기 걸린 딸. 남도 여행 4일째.
따님이 너무 예쁘군요. 해맑은 얼굴에 가득 담김 미소가 아빠의 희망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