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 ...봉학사지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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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한국의 문화재

2011. 10. 18.

 

괴산 봉학사지석조여래좌상

소재지;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산2번지(충북유형문화재 제30호)

 

찾기가 여려운 것이 아니라 오르는 길이 험하다.

차량도 한 대만 통과할 수 있고.....그냥 편하게 오를것이란 내 짐작은 틀리고 말았다.

 여하튼 보광사 대웅전에 자리하고 있다.

어느 스님께 양해를 구하고 법당안으로 들어선다.

 

 

 

 

 

 

불신만 남아 있는 이 불상은

왼쪽 팔목의 보수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신체에 비해서 큰 얼굴은 앞으로 숙여져 있으며

옷은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다.

손은 오른손 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은 모습이다.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은 앉은 자세는 그 예가 드문 편이다.

 

 

평판적이고 굴곡이 없는 네모진 상체

 목에 있는 3개의 주름, 둔감한 옷주름선 등에서 도식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조선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글인용; 문화재청)

 

 

 

대웅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이 불상은 본래 봉학사의 법당에 있었는데, 조선 헌종 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1602~1666)의 자손들이

김소의 묘를 법당 자리에 쓰면서 불상을 근처에 파묻었다.

이 절터가 풍수지리설에서 금계포란형의 명당자리로 소문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 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일러 주었고,

자손들이 그 말대로 하자 집안이 망했다.

금계포란형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인데, 물이 흐르지 못하여 알이 썩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던 것이다.

 

그 뒤 19세기 중엽 보광산 아래 하도마을에 사는 손(孫)씨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서

옛날에 파묻은 불상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이제 때가 되었으니 보광사 남쪽 언덕에 있는 땅속에서 불상을 파내어 봉안하라’고 하였다.

이에 손씨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올라가 불상을 파내고 봉안하였는데,

이후 손씨 집안은 크게 번창하였다고 한다.

1935년까지만 해도 건물 밖에 있던 불상은 김봉삼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