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eunbee 2021. 5. 19. 15:41



이곳엔 슬픔만 울창하여 내가 너에게 자리를 물려주나니
우리 떠난 자리에 강한 산성비는 다시 내려도 너는
자라지 않는 사랑의 낮은 키로 척박한 땅에 뿌리내릴 것이라
향긋한 숲의 향기를 이끌고 떠날 곳을 찾지 못한 마음만
자꾸 산중턱에 감기고 다시 비가 오면 메마를 뿌리
거두지 못한 채 산성의 슬픔은 진달래 철쭉의 붉은 위험신호로
깜박이는데 섬뜩한 예감의 핵우산을 쓰고 잿빛 하늘을 나는
아이들의 꿈은 아황산가스로 덮인다
밤마다 벌목꾼의 시퍼런 도끼날 아래에서 베어넘겨지던 창창한 꿈과
수액의 아픔이 온 산을 울리던 시절에도
나뭇잎이 받쳐드는 햇살만큼은 싱그러웠던 아름드리나무의 숲
전설처럼 전해질 때 낮게 포복하며
황폐한 산자락을 움켜쥔 덤불의 산야에서 너 또한
어느 시름겨운 잡초에게 이 산을 넘겨주리니
이곳에 근심이 깊어 푸르지 못한 사랑도 쉽게 시어버리누나

ㅡ염명순 시집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 에서ㅡ





***

어제 나는
테니스코트에서 경기 관전이나 하자고
천변 둔덕에 자리한 코트엘 갔다.
그 옆에는 상상도 못한 때죽나무 네 그루가 조용히
세월을 살고 있었고, 그들의 꽃철은 한창 무르익어
꽃잎이 눈처럼 내려 있었다.

어제는 많은 선물을 받은 날.
해거름에 여울물 소리 들으며 명상 30분
때죽나무 꽃비
찔레꽃 향기
깊고 푸른 저녁의 눈썹달

아, 얼마나 복받은 날이더냐.
세상이여,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