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숲

eunbee 2007. 9. 10. 15:16

오늘은 바람이 부는군요.

바람에 제 몸을 맡긴 창밖 나뭇가지들이 , 스치는 세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백로라는 절기를 지났으니 정녕 가을인가 봅니다.

 

손을 뻗으면 잎새들을 잡을 수 있는 높이에 사는 내가,

내 아파트 베란다를 기웃대는 나무들과 얘기나누며 산지도 벌써 8년이 지나가고 있군요.

 

지난 봄엔, 한꺼번에 화안한 웃음소리를 내며 피어난 살구꽃을 디카에 담아뒀습니다.

두 그루의 살구나무는 봄마다 환하게 깔깔대며 내 창을 밝힙니다.

봄이 무르익으면 살구꽃은 예쁘고 탐스런 노오란 열매를 잉태하고 키워서, 사람들의 손길을 부릅니다.

노랗게 익은 먹음직스런 살구를 따가는 주민들에게 '오래오래 두고 보자'고 베란다에 나가 간청을 해 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 하더군요.  열매가 익는건 맛있게 먹어 달라고 익는거라고....

 

두 그루의 살구나무 옆엔 두 그루의 모과나무가 있지요.

나는 모과나무를 참 좋아합니다.

줄기는 초록과 갈색과 회색이 서로 잘 조화된 파스텔톤의 멋진 의상을 입고, 매끈하고 튼실하고

아주 야무진 질감으로 강직하게 또는 정직한 모습으로 가지들을 받쳐주고 있답니다. 

믿음직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멋진 가지마다에, 봄이 되면 고급스런 분홍빛의 꽃을 피웁니다.

 

살구꽃들이 한꺼번에 와-하고 웃는 개구장이 처럼 피어난다면,  모과꽃은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온

어여쁜 소녀처럼 귀티나고 수줍은 미소로 내게 옵니다.

도타운 잎새사이에서 띄엄띄엄 피어있는 연분홍 빛깔의 모과꽃은

내 소녀적 얘기를 들춰내는 것같습니다. 꽃잎도 도타워서 참으로 귀한 품위를 지녔습니다.

 

그 예쁜 꽃들이 몽글몽글 동글동글 귀여운 열매로 바뀌었네요. 이 가을에 말입니다.

아직은 푸르지만, 조금만 더 바람이 쓰다듬어 주고  햇볕이 보듬으면, 노오란 빛깔의 반질거리는

모과덩이가 꿈처럼 주렁주렁 매달릴 거예요.

사람들은 못생긴 것을 '모과덩이 같다'라고 말하지만,  잘 보세요.

모과 만큼 멋진 열매도 드물답니다.

 

모과나무 살구나무엔 새들도 와서 노래합니다.

아침 일찍, 몸이 작은 새들이 날아와서 맑은 소리로 내 잠을 깨우기도 하고

비오는 날엔 까치들이 날아와 앉아 잎새사이에 몸을 숨겨 보기도 합니다.

새가 많이 날아와 재재거리는 시각은 아침과 저녁 무렵이지요.

창밖의 나무들과 얘기하며, 여덟번의 봄과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를 이곳에 살게 해준 8할은, 모과나무와 살구나무와 이곳에 와서 노래해준 새들이지요.

 

 

 어쩌면 이 가을의 얘기를 끝으로, 창밖의  나무들과 헤어져야 할 지도 모릅니다.

강마을에 사는 아드님 내외가 이국땅으로 직장을 옮길 것같군요.

나이가 들면,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참 두려워진답니다.

누구보다도 청청한 나무처럼 씩씩하던 내가 이런 말 하면 모두들 믿기지 않는다고 하겠지만요.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앞에서는 자꾸만 머뭇거려지네요.

 

누군가가 이 집에 와서 사는 동안, 나만큼 저들을 사랑해 줄까요?

나처럼 저들과 자주자주 얘기 나눠 줄까요?

새들의 먹이를 담은 접시를 숨죽이며 창밖에 내 놓을까요? 

..........................ㅠ ㅠ

누군가도 그렇게 하겠지요.  걱정 안할래요.

 

  

  살구꽃 그늘에 이름 모를 새 한마리 숨어있네요.

 

   귀티나는 모과꽃이랍니다.

 

 

   봄날의 꽃들은  이 가을에 열매로 익어갑니다.

   내 세월도  함께 익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강마을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군요...
전 맹그로브 숲이라고 해서 이국의 어떤곳인가 했어요...
시간이 나면 이곳부터 한번 더 들여다 보아야 겠군요....
제 글을 차근차근 읽어 주시는 소리님, 고맙습니다.
소리님 같은 문장가께서 제 어눌한 글이 읽을 것이 있을까요? ㅋㅋㅋ
마냥 고마운 마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