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eunbee 2007. 9. 19. 01:55

 여섯살된 고양이 꺄비는  뱃속에  애기 고양이를 가지고 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어디선가 살그머니 다가와 내 몸에 자기의 몸을 정답게 부빈다.

소리도 없이 가벼운 몸짓으로 반갑다는 듯이, 자기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온 몸으로 미끄러지듯 부빈다.         매우 우아한 몸짓이다.  그 동작은 참으로 정겹고 사랑스럽다.

먹이를 달라고 할때도 똑같은 몸짓으로 칭얼댄다.

 

은비네 가족은 꺄비가 정원으로 나가기 편하라고 1층에서 살고있다. 고양이는 부엌 창문을 통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정원으로 나간다. 정원에 나가기 전에 창문턱 위에 앉아서 밖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리고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가볍게 뛰어내려 잔디위에서 또다시 한참을 앉아  여기저기를 본다.         바람에 불려 다니는 나뭇잎도 보고, 무언가를 쪼아대는 비둘기도 보며, 때로는 몸을 낮추고 사냥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비둘기를 노려보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새 한마리를 낚아챌 것만 같다.     새들을 포기했는지 사뿐사뿐 우아한 걸음으로 꽃밭을 지나 나무 밑으로 가 앉는다.

몸을 옹크리고 앉아 편안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다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돌아 온다. 자기가 보아둔 비밀 장소에 가서 응가를 하고

뒷처리를 아주 깔끔하게 하고 오는 것이다. 응가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모래나 흙으로 잘 묻고,

자기의 몸을 깨끗이 핥아서 닦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주 우아한 걸음 걸이로 느긋하게 나타난다.

자존심 강한 귀부인이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모래나 흙이 젖어있으면, 집안에

마련한 자기의 전용 화장실에서 일을 본다. 화장실 속에서 응가를 한 후 모래를 긁어 덮는 소리가 벅벅벅 요란하다.

 

정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놀다가 동네 고양이를 만나면 앙칼진 소리를 내어 방어한다. 캬악-소리에 놀란 동네 고양이는 지은 죄도 없는데 줄행랑을 친다. 꺄비는 다른 고양이가 무서운가 보다.

새끼를 갖기 전에는 가벼운 동작으로 창문으로 뛰어 올라와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뱃속의 새끼들이 점점 커 갈수록 몸이 무거워져  스스로 뛰어 올라 올 수가 없게 되자, 창문 밑에 와서 '아웅, 아웅'거리며 올려 달라고 옹알거린다.  내가 나가서 꺄비를 들어 올려 창문으로 들여보내던지, 사위나 딸이 의자를 사용해서 발판을 만들어주면 냉큼 뛰어 올라 집으로 들어 온다.

 

  

어느날 밤, 꺄비가 새끼를 낳을 기미를 보였다. 우리의 침대위로 올라와 이불을 긁어대며 무언가 불안해 하며 야웅야웅 자꾸만 울어댔다. 사위가 침대밑에다가 새끼낳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모두들 잠이 들고 나도 자다가 무슨 기척에 잠을 깼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꺄비가 새끼를 낳아 탯줄을 먹는 소리와 갓 태어난 새끼의 울음 소리였다.

꺄비가 불안해 할까봐 나는 조용히 숨소리를 죽이며 꺄비의 출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새끼의 울음소리도 찌익찌익 들린다. 꺄비가 가여워졌다. 출산의 고통을 견디며 새끼를 낳고 처리하면서도 소리한번 지르지 않는 작은 짐승이 가엽고 한편 위대하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세상의 모든 어미는 위대하구나.

출산이 끝났다는 감이 오자, 나는 옆방에서 자고 있는 사위를 조용히 깨웠다. 소리가 크면 꺄비의 신경이 날카로워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사위가 우리 방으로 와서 불을 켰다.

 

아-- 내 입에서는 놀라움과 탄성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몇시간에 걸친 산고의 흔적이 이렇게 깔끔할 수가... 

마련해 주었던 이불 한자락에 새끼 세마리를 낳아 소중스레 핥고 있다.

주위는 매우 깔끔한 상태다. 출산을 한 자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흔적없이 정돈되어있다.

고양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우아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깔끔한 친구들이구나.

 

 꺄비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는 먹이를 허겁지겁 먹지 않는다.

먹이를 달라고 졸라대어서 주면, 배가 고프지 않은척 잠시 나를 한번 쳐다보고 먹이 그릇을 지긋이 바라본 다음 아주 천천히 핥아서 먹는다. 먹이를 준 사람에게 한껏 자존심을 내 세우며 먹는다.

그런 모습이 나는 정말 좋다. 꺄비가 저렇게 자존심있고 우아하게 행동하며 자기 관리를 한다는 것에

경외감마져 갖게 된다.  새끼를 낳은지 수주일 동안 내가 꺄비에게 밥을 먹여주었다.

젓가락으로 떠서 입앞에 들고 있으면 잘 받아 먹는다.  부엌에서 거실로 나올때도 문을 열어주었다.

그랬더니 아예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리고, 문도 열어 달라고 야웅 거린다. 사위가 말했다.

고양이는 주인이 자기에게 잘 해 주면, '내가 왕인가 보다, 사람들은 내 종이고' 그렇게 생각한댄다.

개는 주인이 잘해 주면 '아이구 우리 주인은 왕이구나. 충성을 다하자.' 이런다나?

나는 참치캔 뚜껑에 손을 베어가면서도 꺄비에게 정성스럽게 먹이를 주었다.

엄마라는 위치가 얼마나 갸륵하고 처연한 희생이 요구되는 가를 잘 알기 때문에.

 

새끼가 태어난지 두달이 되었다. 예쁜 애기 고양이들의 재롱은 온 가족들을 행복에 빠뜨린다.

꺄비는 우리가 잘 보살핀 까닭인지, 새하얀 털은 윤기나고  아름다운 자태는 다시 되돌아왔다.

자기 새끼들이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않으면 야웅거리며 찾아 다닌다. 젖도 잘 물린다.

엄마 처지를 아는 나는 자꾸만 새끼들을 어미에게서 떼어놓고, 애기 입장인 은비는 자꾸만 꺄비에게 애기들  젖주라고 난리다.  그 언젠가는 은비도 내 맘을 알게 되겠지. 자기도 엄마가 될거니까.

 

 미술과 영화를 전공한 사위는 고양이의 관절과 근육이 얼마나 완벽하게 아름다운지, 고양이의 자세를

조각작품에 비유하며 내게 설명해 준다.

고양이가 자태도 물론 아름답지만, 정갈하고 자존심있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완벽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모든 고양이가 꺄비 같다면  말이다.

순하고 우아한 꺄비는 동네 고양이에게 그처럼 앙칼지게 굴면서도, 은비에게는 끌고 다니던 넘어뜨리던 베고 눕던, 그 모든것을 참아주며 함께 잘 논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냉정하고 이기적이라고 말 하지만, 우리 꺄비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족이 외출하면 문앞에서 기다리고, 은비가 귀찮게 굴어도 잘 참아주고, 그들이 둘다 어렸을 때는

둘이서 숨바꼭질도 잘 했었다.

 

애기 고양이들은 생후 석달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갔댄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들이  생후 두달이 지나갈 무렵에  은비랑 나는 한국으로 왔다.

그렇기때문에 애기들을 다른사람에게 주어 버리는것을 막지 못했다.

은비는 전화로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울면서, 다시는 애기 고양이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엄마는 못됐어.  엄마는 참 못됐어.'하며 슬퍼했다.

꺄비는 한동안을 먹지도 않고 울며울며  자기 애기들을 찾았다고 한다.

가슴이 싸-하니 저려오고 눈물이 핑그르 돈다.  꺄비의 마음을 생각하니까...

왜 그렇게 모두 보냈을까. 한마리라도 엄마 곁에 있게 해 주지. 자기들도 부모이면서...

 

파리에서 꺄비랑 함께 생활하는 동안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몸을 부비고 사랑을 표현하던 꺄비가 보고 싶다. 밍크보다 더 보드랍던 새하얀 털이며, 보석처럼 빛나는 파란눈이 그리워진다.

조용히 사랑을 보내던 그 우아한 몸짓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