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편린들

eunbee 2007. 10. 10. 16:14

하늘이 어둡습니다.

올 가을엔 파아란 하늘을 맘껏 볼 수 없어, 구름 한뭉치가 가슴속에  늘 잠겨있는 듯합니다.

이대로 맑은 햇살을 저편 구름 속에 묻어 둔채,  이제 이곳을 떠나야 겠습니다.

내일 모레면 아름방송 직원이 와서 인터넷 연결 장치도 걷어갈 것입니다.

모든 익숙한 것으로부터 격리 되어짐을 확연히 느끼게 되는 거겠지요.

살면서

이별 연습을 그렇게도 많이 했건만

이 마을을 떠난다는 것이 왜 이렇게 가슴 아릴까요.

어제도 그제도 또 그그제도 난 이렇게 늘 우울했습니다.

 

창밖에 말없이 서 있는 모과 나무가

오늘은 바람 조차 불지 않아서인지

열매들의 무게에 눌려 축 쳐진 가지를 땅으로 늘어뜨리고 서 있습니다.

꼭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도 우울해 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흔들어 주지 않는 나무는 참으로 적막합니다.

햇볕이 없는 나무는 참으로 쓸쓸합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않고, 솎아 주지도 않아서, 가지에는 너무 많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하나도 제대로 '모과답게' 익어갈 알맹이가 없답니다.

아프리카에 태어나서 그 어떤 문화적 경제적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바글바글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처럼..

 

오늘은 이메일도 없습니다.

큰 따님은 번역일을 맡아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하고

작은 따님은 일하느라 바쁜가봅니다.

며칠 전, 20년동안 사용하던 전화를 해지했습니다.

그래서 이젠 전화도 영영 먹통인채로 주저앉아있습니다.

전화가 살아있다면, 바쁜 작은 따님이 시간을 내어 긴긴 수다를 떨었을텐데...

이사가는 날, 20년된 가구도 30년 넘은 가구도 버릴것입니다.

정든것들과 익숙한 것들과 미련 갖지말고 헤어져야합니다.

산다는 것은 이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나이 예순이 되던 해에, 많은 사진들과 책들과, 정리하고 싶은 여러가지들을

버리고 없애고 간추렸건만, 이제 새삼스레 이렇게 우울한건 왜일까요.

아직도 가진것에 대한 미련과, 오래도록 해오던 습관을 버리지 못함은 또 어인 미련함일까요.

 

세상으로부터 한뼘 물러나서

구경꾼으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내가 주인공으로 세상을 헤집고 살고 싶은 욕망이

내 의식 밑바닥 저 구석에 앙금처럼 깔려있나봅니다.

 

버리는 연습, 이별하는 연습,

듣고도 못듣는 연습, 보고도 못보는 연습을 더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하늘도 바람도  나도 너무너무 우울한 날입니다.

 

 

 물안개와 새벽 보름달

그 날, 그렇게 우울하셨지만 오늘 파리에서의 은비님이 빛나시고 계신다는 것이 참 기분 좋습니다.
살던 보금자리를 옮긴다는 것이 내 어머니 세대에게 어떤 무게인 줄을 알기에
그 날 은비님의 저렸던 맘이 제게도 진동해 옵니다.
아버지 돌아 가시고 그 공간에서 모든 흔적들을 버리거나 옮기시던 엄마의 손이 왜 그리 느렸었는지..
하지만 엄마도 지금 은비님처럼이나 빛나는 새 인생을 사시고 계십니다.
은비님도 울 엄마도 이제 앞으로 더 떠나 보낼 일도, 맘 시린일도 없는 채워지기만 할 시간들만 보내셨음 합니다.
은비님! 아시죠? 너무 멋진 주인공이시라는거!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을 진정된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바라봐 주시는 루스모스님이 있기에
체감이 더욱 저립니다.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스모스님의 어머니께서도 새 인생을 빛나게 사시고 계시다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되어진 환경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