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패션 큐레이터 2014. 6. 21. 22:50

 

 

여행, 허기진 영혼을 채우는 수프


좋은 영화 한편을 발견하는 날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요리에 푹 빠져있는데요. 마치 멋진 한편의 영화는 오랜동안 간직해온 레시피를 발견한 듯한 기쁨을 줍니다. 쉐프들은 말하지요. "나쁜 요리는 없다, 나쁜 레시피가 있을 뿐"이라고요. 맞습니다. 맛난 영화를 만나는 날엔, 욕심을 부려선 안됩니다. 접시에 너무 한꺼번에 담아도 안되지요. 요리를 한 입에 꿀꺽하기 보다, 혀끝으로 표면을 맛보고 재료 각각의 맛을 기억한 후 그것을 결합시켜 요리에 전체적인 감정을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영화를 읽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레시피를 읽고 계량컵으로 정교하게 밀가루와 계란, 소스의 수준들을 계측해야 하듯, 영화 속 스토리에 들어가있는 재료들, 배우의 연기, 스토리의 견고함, 이야기 전개의 말끔함, 주인공의 의상, 연기자들을 조명하는 빛의 수준과 전략, 이야기의 느낌을 배가시켜주는 음악 등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씩 조심스레 떼어놓고 읽어야 합니다. 토요일 밤, 아내와 함께 본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런 느낌을 준 영화였습니다. 



여행, 당신의 언어를 새롭게 하기


여행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은 많습니다. 예전에 쓴 결혼을 앞두고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원 위크> 잡지사 저널리스트가 뉴욕의 치다른 생이 힘겨워 자신을 찾기 위해 인도를 찾는<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혹은 시간여행을 다루는 <미드 나잇 인 파리>등 사실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야기 구조가 단순합니다. 여행 전과 여행 후의 삶이 바뀐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우도 많죠. 그런데 신기한게 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항상 일정 수준의 선방을 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대중성을 포착하기 쉽다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영화 속 이야기에 대해 다른 장르보다 더 쉽게 빠져들고, 주인공과 나를, 나의 처지를 동일화하기 때문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정말 관객들의 입소문이 좋았고, 너무나도 주변에서 보라고 압력을 주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에 흠뻑 빠졌습니다. 학교에서 고문을 가르치는 고리타분한 선생님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느 한군대 지적할 수 없는 완벽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우연하게 학교를 가다 자살을 하려는 한 여인을 구해주며 시작됩니다. 그녀가 남긴 빨강색 코트와 한권의 책. 그 책에는 리스본으로 가는 열차티켓이 들어있었죠. 설정은 그다지 인상깊진 않습니다. 문제는 리스본으로 가게 된 배경에, 역시 언어를 다루는 선생처럼, 아마데우란 한 의사가 쓴 명상록을 읽으며 글의 행간을 되짚어가려는 열망이 있었다는 점이겠지요. 원래 소설에선 책을 번역하는 과정으로 나오는데요. 영화 속에선 그냥 책을 읽으며 이야기 속 인물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죽은 고어로 된 문장을 가르치는 선생님, 그레고리우스에겐 <언어의 연금술>이란 진부한 제목의 책이 눈에 확 들어왔을 겁니다. 지루하기로 정평이 난 자신의 성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는 이후 리스본에 가서 주인공이 사고로 자신의 안경을 깨뜨리고 새로운 안경을 맞추기 위해 안경사를 찾습니다. 이후 그녀와 친해지고 그녀의 삼촌을 만나면서 책 속 이야기의 맥락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되죠. 


1974년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일명 카네이션 혁명이 영화 속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세계 최초의 지식인 독재를 구현한 포르투갈의 최장기 독재자 살라자르의 총치 하의 포르투갈이지요. 카네이션 혁명은 그의 통치에 반대하던 좌파 장교들 200명이 일으킨 무혈혁명이구요. 주인공 아마데우는 판사인 아버지 아래 안락하게 자란 지식인이고 그런 그가 친구들을 통해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 등이 보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주절주절 쓰고 싶진 않습니다. 


책 속의 인물과 글을 찾아 가는 여행인 만큼, 영화는 그가 쓴 철학적 명상록을 배경으로 인간이란 존재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현재의 주인공은 그의 삶과 자신을 배치시켜가며 깨달음을 얻어가겠지요. 빤한 스토리 전개지만, 문장이 너무 좋은 탓에, 문학적 상상력이 영화를 되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화 속에 드러나는 글의 힘은 셉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씀으로써, 그 글을 읽는 이들이 자신의 생을 되돌아보고 반추해보도록 하는 글의 양식을 쓴 이는 프랑스의 르네상스 시대의 문필가인 몽테뉴였습니다. 그도 여행을 좋아했다고 하죠. 베니스에서 갖가지 기행을 벌이기도 하고 매춘부와 뜨거운 밤을 보냈던지 가져간 금화를 탕진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그가 당시 여행을 하던 방식이,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자칭 여행좀 안다는 이들이 하는 방식과 닮아있죠. 


뒷골목을 탐사하거나, 어떤 한 주제를 놓고 깊게 성찰하고, 자신이 간 도시에서 자기가 살던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치열하게 맛보고 즐겨보는 일. 사실 여행은 지금껏 내가 살아오던 곳에서 습관적으로 누적시켜온 내 모습의 외피를 벗고, 다른 규칙,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나를 놓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길을 찾는 것은 새로운 안경을 쓰는 일이고 지도를 필요로 하죠. 



이 영화에서 그 지도는 바로 아마데우라는 한 인물이었습니다. 정치적 혼란기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인간의 본질을 묻는 사람. 어찌보면 영화 초기, 그레고리우스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읽게 했던 로마의 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아우렐리우스는 항상 로마의 전장터에서 글을 썼으니까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마데우의 글은, 눈에 보이지않는 껍질에 갖혀사는 우리들의 정서에 충분히 공감과 충격을 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이후 원작소설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결혼하고 아내와의 첫 데이트로 본 영화였습니다. 생의 과정 어느 것 하나 곡진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결혼도 그런 과정 중의 하나겠지요. 그 과정에서 제가 아내에게 약속한 것이 '우리가 설령 헤어지게 될 위기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지금껏 쌓아온 추억이 아까와 헤어질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자였습니다. 추억을 반추하며 먹고 살자는 게 아니라, 그 시간에 함께 있었고, 함께 만들어왔기에, 예전에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규정하던 삶을 두 사람이 함께 보고 때로는 토론하고 글로 쓰고 카톡으로 마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었기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였을까요? 더더욱 영화가 와닿았네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의미있는 타자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조각을 짜맞추게 됩니다. 여행은 그 퍼즐의 아교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조형이 그려진 틀이 되기도 하죠. 올 여름......유럽 서부의 고도, 리스본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는동안 야간열차를 타고 낭만적인 여행을 해보는것도 좋을꺼같네요..글 잘보고가요.
같은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함께타고가며 동행할사람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