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청바지 클래식

패션 큐레이터 2003. 6. 9. 11:52

 

오랜동안 글쓰기 작업이 중지 되었습니다. 글쓰기 작업이 어려워서라기 보다 제 주변을 둘러싼 상처의 풍경들이 쉽게 제 마음속에서 조응하며 지워지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글은 제가 문화비평지'알바트로스'에서 춤의 역사편 스페셜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S#-프롤로그
춤은 인간의 억누를수 없는 체험 중 하나다. 원시종합예술에서 현재의 세분화된 형식으로 무용이 발전되기까지는 유구한 시간이 필요했다. 예술의 형식으로서 혹은 내용으로서 무용의 역사는 또한 인간의 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인 ‘시학’의 제 1장에서 무용의 이념을 공식화 해 놓았다. 즉 무용의 목적은 율동적인 움직임에 의해 성격과 정서 및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시시대 태양에 대한 미사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의 학자들이 그리스 연극의 형식을 빌어 발레를 창조한 이레 발레란 이름의 무용예술은 많은 변천을 겪었다. 고전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용예술의 연대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S#1-원시 및 고대이전

원시인들은 여러 다양한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감과 동물을 모방하는 춤을 추었다.그들에게 자연은 무섭고도 장엄한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을 양육하고 때로는 질책하는 존재로서 인식되었다. 대기근과 홍수등 자연의 재해와 원시공동부락을 둘러싸고 언제든지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야생동물들, 이들 앞에서 아직까지 이들을 힘으로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인 인간은 무용이란 제의를 통해서 그들은 강력하고 신비한 자연의 폭력을 달래고 진정시킬 수 있기를 바랬다.

 

그들은 자연의 힘 앞에서 깊이 감동되었고 여기에는 뚜렷한 춤의 인식에 대한 어떠한 견고한 토대도 없었다. 이들은 단지 개인과 전체로서의 종족 그 양쪽의 삶에서 모든 중요한 경험들과 관련되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었다. 문화 인류학자 죠셉 .프레이져는 그의 저서 ‘황금가지’에서 땅과 사람들의 번식 전쟁 혹은 액막이 주술에 관한 제식의 한 형태로 춤이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춤을 통하여 자연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과 순응의 감정을 표시하는 법을 체득했고 이를 통해 집단적인 동일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문명이 점차 발달하고 집주가 이루어지면서 춤이 가진 제의성과 마술적인 요소는 점차 희박해 지고 각 문명은 각 시대에 맞는 고유한 춤을 만들어 내고 발달시켰다.

S#2-고대 그리스와 중세

니체는 자신의 초기저작인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예술을 모든 예술의 모범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를 당시의 예술작품의 배경에 녹아있는 그리스적인 이성과 감성의 결합으로 설명했다. 바로 이성을 대표하는 태양신 아폴로와 감성을 대표하는 주신인 디오니소스의 결혼을 통해서 그리스 예술은 꽃을 피게 된것이다. 그 중에서 그리스에서 시작된 오케시스(지금의 연극)는 초기에는 무용과 음악 그리고 문학이 결합된 형식으로 그리스 예술의 핵심이 된다. 여기에서 음악과 무용이 그리고 후에 연극이 분화되고 발전되기 시작한다. 처음에 이야기 했듯 그리스인들은 춤을 정신과 육체의 완전한 조화의 표현으로 간주했다. 이 시기에는 개인과 국가, 이 양면에서 개인의 삶과 관련된 경험의 양상들이 춤으로 표현된다. 즉 점차 결혼식과 장례식 등의 통과제의 의식과 종교상의 축제 또는 혹은 자기방어를 위한 군사연습의 일부분이 되면서 사회 내에서의 종의 통합을 이루는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다. 즉 질서를 유지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꿈을 하나로 모으는 제의의식과 수단으로서 발전하게 된다.

S#3-고전발레와 낭만주의 시대

우리가 알고 있는 발레란 4세기 동안의 끊임없는 정련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 테크닉에 의해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예술의 형태이다. 원래 발레(ballet)란 말은 발레띠(balletti,,즉 춤추는 것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 ballare에서 유래했다) 에서 온 것인데 이것은 16세기까지만 해도 단순히 그 시대의 궁정무용에서 사용된 춤의 형식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발레작품은 이탈리아의 발레 교사인 발타자르 보조와예가 프랑스 앙리 2세의 왕후 카트린트 드 메디치의 후원아래 제작한 ‘여왕의 발레 꼬미끄’로 알려져 있다. 고전발레는 연기의 완벽성을 위해 반드시 규정된 방법으로 행해야 하는 고정된 움직임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언어의 조합처럼 동작의 조합으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갖는 특질은 인위적인 아름다움에 있었다.

 

이러한 인공성의 미학은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18세기의 당스노블 즉 귀족들을 위한 춤으로 발전해 간다. 바로 이때부터 무용은 귀족들의 유희양식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귀족들을 위해 오늘날의 극장형식을 건축하고 이 안에서 무용공연이 이루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후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초기의 제한된 무용동작의 어휘들은 내버려 진다.

 

낭만춤은 그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냉혹한 미학에 반발하면서 정서적으로 자유롭고 주관적인 표현을 위해 모든 형식을 배격했다. 즉 형식보다는 정신성을 찾게 되기 시작한 것인데 이 시기를 대표하는 것이 장 조르주 노베르란 안무가가 주창하고 실천한 ‘발레닥숑’(ballet’d’action)운동이다. 이 운동의 핵심은 다름아니라 발레는 극적인 구경거리-말이 없는 연극-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프랑스 혁명이후 관객들이 귀족뿐만 아니라 보다 광범한 계층에서 몰려 옴에 따라 발전해 간다. 19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마리우스 쁘띠빠란 안무가를 통해서 오늘날의 ‘클래식 스타일을 대변하는 발레의 형식이 나오게 된다.그러나 이러한 스타일은 20세기 초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라는 안무가를 통해 새롭게 갱신의 기회를 갖게 되고 발레는 여타의 예술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려는 대중의 공통된 시각을 변화 시키는 기회가 된다. 그들의 스타일은 발레가 상연되는 시대 상황이 움직임의 특성까지 규정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즉 개인의 창조성과 예술적 통합의 실천을 통해 시대의 맥락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S#4-현대에서 포스트 모던까지

모던 댄스는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무용가를 기점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녀가 현대춤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의 무용을 통해 춤은 개인적인 진정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매개가 되었다. 현대춤은 그 주된 목표를 어떤 내적인 욕구의 표현에 두면서 능동적으로 고전발레의 인위성에 대항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와 동시에 주제상에 있어서도 이전의 종교적인 소재나 신화에서 개인의 체험을 주요한 소재로 삼게된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춤은 그러한 표현을 위해 생명력 있는 형식을 필요로 했고 스스로 형식이 갖는 미학적 가치와 그런 표현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완성시켜 왔다.

 

마사 마사그래함과 모리스 베자르 알마 호킨스 알빈 니콜라이등 많은 무용가들이 이러한 현대무용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했고 그들의 노력은 새롭게 떠오르는 현대성과 맞물려서 새로운 형태의 무용을 만들어 낼수 있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모던 댄스에 대항하는 포스트 모던 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작품들에서 활용된 유형의 인과적인 서술 구조를 따르지 않고 ‘플레쉬백(과거회상)’을 통해 자의적이고 우발적인 방식으로 이미지와 사건을 재현해 내는 수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기존의 양식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전통의 개혁과 재충전을 이루어 낸다.

 

최근에는 재즈와 현대무용의 결합을 통해서 또 다시 한번 시대의 무늬들을 짜깁어 가고 있다. 이러한 재즈의 유행은 흑인 하위 문화를 주류의 문화로 편입시킴으로써 기성화 되어가는 자신의 세계에 대해 대안적인 목소리들을 낼수 있게 하고 있다. 최근의 힙합과 테크노는 이러한 움직임의 일부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에는 혁신성으로 시작했던 무용의 테크닉이나 정신성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부해 지고 초기의 저항성들을 잃어버리고 경전화 되어가는 경향에 대하여 주류 문화는 예전에는 억압하거나 취급하지 않았던 하위문화의 독특한 성격들을 받아들여서 부패를 막기 위한 백신을 주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