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문학

Song Of Songs 2009. 6. 1. 21:24

 

 

 

 

 '월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하면 어떤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넣는다. 그만큼 그 작품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친숙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

 

이다. 이 4대 비극을 모두 읽어 본 이는 얼마나 될까? 아니 넷 중 단 하나라도 읽어 본 이는 얼마나 될까?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아니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졸지 않은 이라면 네 작품 모두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 작품을 직접 끝까지 읽어 본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인도 그 중 한 명이기에 영문학도로서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다 이번에 4대 비극 중 햄릿을 읽을 좋은 기회가 생겨서 부끄러움을, 영문학도로서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되어 위안이 된다.

 

 햄릿은 왜 4대 비극에 속할까? 우선 비극과 희극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극적인 결점(tragic flaw)'에 있다. 주인공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을 극복하면 희극이 되는 것이고,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이 되는 것이다. 햄릿은 비극적인 결점을 극복하지 못하였기에, 비극적 요소가 강하기에 4대 비극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햄릿의 비극의 시작을 잠깐 살펴보자.

 

 이야기는 성 위에서 시작한다. 두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는데 저 멀리서 유령이 나타난다. 그 유령은 선왕, 현재 왕의 형이었다. 선왕은 주인공 햄릿의 아버지였기에 보초들은 햄릿에게 그 사실을 보고한다. 햄릿은 유령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동생인 현왕에게 독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령은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햄릿은 수락한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된 후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아버지가 죽은지 두어 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 동생에게 시집을 가서 그의 품에 안긴 어머니를 생각하니 심사가 뒤틀린다. 어머니로 인해 여자에 대한 증오로 이어져 사랑하던 오필리아를 버리는 몹쓸짓을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햄릿의 심리적 갈등의 묘사가 두드러진다. 내적 갈등과 의문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한다. 그런 그의 갈등은 다음의 유명한 대사에 매우 잘 나타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그의 정신적 방황은 결국 되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상황을 이끈다. 모두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과연 상황을 개선 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을까? 모두의 죽음이 아닌 화해와 공존은 불가능 했을까?

 

 우리는 원인은 다르지만 종종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갖는다. 그때 나에게 행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습과 교육 등으로 인한 심리적 제어 장치가 작동하여 용서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을 친다. 사회의 성문법이나 도덕법에 견주어 죄질이 가볍다면 쉬이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의 경우와 같이 부모를, 가족을 살해한 이를 용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피의자가 나와 매우 가까운 이였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마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런 상황에서 용서를 발휘하기란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연극의 주인공이다. 우리의 인생에는 '비극적인 결점'이 있다. 그것을 극복하면 희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