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기독교

Song Of Songs 2010. 12. 29. 21:10

 

< 이미지 출처 : 갓피플몰 >

 

 

 

 

 기독교 교리는 성경을 체계적이고, 통일성 있게 정리를 한 것이다. 따라서 교리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교리를 알면 성경을 더 넓게 이해 할 수 있다. 성경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다. 말씀의 달콤하고, 오묘한 맛을 더 깊이 음미 할 수 있다.
 기독교 교리는 보통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으로 구성된다. - 반드시 이 순서로 구성 되지는 않는다. 신학자에 따라 기독론 다음에 성령론을 추가하기도 하고, 구원론이 빠지기도 한다. 혹은 종말론이 앞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 외에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 이 중에 인간과 특히 관련이 있는 것은 인간론과 구원론이다. 다시, 이들 중 구원론은 보통 소명, 중생, 회심,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로 구성된다. 여기서 살펴 볼 것은 신생, 거듭남이라고도 불리는 중생이다.
 중생은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이 죽고,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다(루이스 벌코프, 조직신학 中.). 중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中.). 중생이 없으면 칭의도 없고, 성화도 불가능하다. 중생하지 않으면 결국 영화 또한 불가하다.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다’

 이 책은 거듭남의 교리를 다루고 있다. 거듭남, 다시 말해서 중생의 본질을 깊이 있게 파헤치고, 그것의 중요성을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중생이 왜 필요한지, 복음적 특권을 향유함에 있어 중생이 얼마나 필요한지 등등 중생에 대한 총제적 가르침을 제공한다.
 중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면 이 책에서는 그것을 힘써서 빨리 구하라 권고한다. 단지 구하라고만 하지 않고 중생을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도 알려 준다. 그렇다면 중생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기도하고, 본성의 부패함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의 율법의 완전함을 자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관찰하고, 모든 은혜의 방편을 부지런히 활용하며 복음을 연구”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중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지 구원의 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중생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통해 중생을 구하도록 촉구 받고, 마침내 구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책을 잘못 읽었거나 그는 믿음이 없는 자일 것이다.) 중생한 자는 그것에 감사하며 더욱 기쁨으로 그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3:5). 이 두 말씀만으로도 중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생에 얼마나 무관심 한가? 간절함으로 적극 구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령님의 은혜로 쉽게 받는다. 중생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무감각하게 받는다. 이는 교리 교육의 부재, 무지한 성경 지식 탓이 클 것이다. 어쨌든 중생은 천국을 들어가는 열쇠이고, 그곳에 가기 위한 한 과정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생하지 못했다면 그것을 구해야 할 것이고, 중생하였다면 감사하며 그 다음인 성화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거듭남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책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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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