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생각/교회

Song Of Songs 2017. 11. 20. 07:55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0년 전, 로마 가톨릭 교회(이하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은 끝내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지는 못했지만, 교회 역사를 뒤바꾸었습니다. 개혁된 교회, 개신교회가 탄생하여 교회 역사가 새롭게 씌어졌습니다.

 

개신교회는 몇 가지 획기적인 변화를 일구었습니다. 먼저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켰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경보다 전통을 우위에 뒀습니다. 특히 교황이 권위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개신교회는 그것을 허물고, 진리의 유일한 원천이자 최종 권위를 성경에 돌렸습니다. 그리고 ‘만인제사장’을 주창하여 성도들의 위치를 재설정했습니다. ‘만인제사장’은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성직자를 두었던 가톨릭 교회의 계급적 태도를 허물고,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직접 예배할 수 있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에 따라 성직자가 하는 일은 성직이고, 성도들이 하는 일은 세속적이라고 구분하는 태도가 철폐됐습니다. 이처럼 - 변화된 것 더 있지만 - 개신교회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와 체제를 부정하고, 잘못된 교리와 체제를 바로잡았습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개신교회는 다시 종교개혁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신학자 겸) 목회자들이 종교개혁을 주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목회자들이 종교개혁을 허물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가톨릭 교회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주의 종’이라고 칭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직제와 같은 특권 의식 혹은 계급 의식을 반영하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에 ‘주의 종’이라는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여 성도들이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차단합니다. 자신들의 말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 주장하며 자신들의 말에 절대 순종을 요구합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이라며 부당한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목사들은 ‘주의 종’인가요? 맞습니다. 목사들은 ‘주의 종’입니다. 하지만 목사들만 ‘주의 종’은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주의 종’입니다. 목사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나 왕 혹은 선지자와 같이 특별히 구분된 자가 아닙니다. 목사도 성도 중 한 명입니다. ‘목사’는 교회의 몇 가지 직분 중 한 가지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며, 섬기기 위해 여러 은사 중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성도입니다. 직분과 은사의 구분은 능력의 차등이나 계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저 쓰임의 차이를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만 ‘주의 종’이라고 칭하는 - 그리고 성도들은 ‘평신도’라 구분하는 - 것은 교회에 가톨릭 교회의 직제, 계급 체계를 이식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목사들은 목사는 같은 목사가 보호해야 하고, 목사에 대한 비판 또한 같은 목사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로 한 목사의 스캔들이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거나 어느 목사의 잘못된 행태가 성도들 사이에서 거론될 때 그런 말을 합니다.

 

목사는 목사가 돕고, 보호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교회 - 정확하게 말하면 노회 - 가 목사를 돕고, 보호해야 합니다. 목사도 교회의 성도 중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목사가 잘못했을 때 같은 목사가 질타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역시 교회 - 역시 노회 - 가 질타해야 합니다. 교회가 치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도 교회의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목사들이 교회, 다시 말해서 성도들의 질타를 받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거나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수치로 생각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교회 내에서의 자신들의 위치를 은연 중에 특정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이 자신들을 ‘주의 종’으로 구분하거나 목사는 목사가 돕고,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 체제를 부러워하고, 교회에 그것을 이식하고 싶다는 욕망이 발현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둘 다 종교개혁을 무로 만드는 위험한 태도이자 그릇된 망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으로 말하면 목사 그리고 은사로 말하면 가르치는 은사는 - 다른 모든 직분과 은사와 동일하고, 동등하게 - 분명히 축복된 직분이자 은사입니다. 그것은 인원과 위치상 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직분이자 은사입니다. 하지만 그 직분과 은사가 소수에게만 주어지고, 만인의 앞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서 특권과 계급으로 인식하면 안 됩니다. 그러한 인식은 스스로 하나님의 축복을 저주로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