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

    카스 2007. 6. 26. 18:18

    잊혀져가는 6.25 - 통일전망대를 가다

     

       한동안 흐린 날씨로 인해 저녁이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던 북경의 날씨가 오늘은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며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아마도 40도를 오르내리는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 되려나 봅니다. 한국은 장마가 시작 되는가 싶더니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다시 더워지기 시작한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다고 합니다. 습도가 높은 더운 여름날 여러분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2007년의 반(半)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6월도 이제 며칠이 안 남았네요.

       옛날 초등학교 시절, 6월은 ‘원호의 달(1963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었다가, 지금은 “호국보훈의 달”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합니다)’이라고 하여,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리본모양의 비닐팩에 원호의 달이라고 쓰인 글을 넣어 왼쪽 가슴에 달고 다녔던 기억이 문뜩 떠오릅니다.

     

       어제는 동족상잔의 최대 비극이자,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분단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준 6.25가 발발한지 57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예전에 비해 기사의 비중도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 드네요.

       물론 남북화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어색한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 역사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 6.25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외세에게 집중견제를 받아 왔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부터 우리는 주변의 열강들에 의해 견제와 침략을 받아 왔고, 심지어 1910년에는 일제의 침략에 의한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어버리는 치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조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희생정신으로 꿋꿋하게 이 땅을 지켜왔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알려진 6.25전쟁은 외국인에게 단순히 남과 북의 내전(內戰)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세계열강들의 다툼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촉매제가 된 것이 바로 한반도였고 여기에 미국, 소련, 중국등이 참가한 국제전(國際戰)의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렇게 세계열강들의 희생양이 된 한반도는 수많은 선조들의 영혼이 전국 산하(山河) 곳곳에 묻혀 버리고, 결국은 허리가 두 동강이 난 채 50 여 년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남과 북에는 6.25전쟁을 몸소 체험하신 분들 중에 아직도 살아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다만 전쟁에 대한 기억, 자신이 어디에 있었냐에 따라 기억이 상이(相異)하다는 점입니다. 남쪽은 북한 괴뢰군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며 북한을 증오하고, 북쪽은 미제 침략주의자들로 인해 우리 산하가 분열되었고 꼭두각시 노릇을 한 남쪽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의 차이로 인해 과거에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좋은 수단일지는 모르지만(저희 블로그 부부도 어린 시절 북괴, 괴뢰군, 빨갱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들었고, 미술시간에 괴뢰군을 빨간 늑대로 둔갑시켜 그린적도 있답니다), 자유, 평화, 행복을 추구하는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론 과거에 연연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과연 6.25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 결과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지 다시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서설이 너무 길었네요.

     

       얼마 전 어느 블로거 분께서 Daum블로그 뉴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신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블로그 뉴스 메인에 실리는 기사의 많은 부분이 해외의 내용에 할애를 하고, 국내에 관한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알찬 내용과 유익한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 저희 블로그 부부도 한국에 계신 많은 블로거 분들께서 유익하고 좋은 국내 정보를 많은 분들과 함께 공유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중국소식이 아닌 한국소식으로 여러분의 곁에 다가갈까 합니다.

       저희 블로그 부부는 현재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짧은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더욱이 어제가 6.25 기념일인 만큼 지난번 한국에 들어갔을 때, 가족과 함께 다녀온 통일전망대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현재 한국에는 여러 곳에 통일전망대가 있습니다. 임진각, 파주, 고성 등등...

       그중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한 곳이 바로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북위 38도를 기준으로 이북 88km 지점에 있고, 북녘땅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는 가장 빠른 1983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곳은 연간 100만 명의 실향민과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으며, 천혜의 절경이라 할 금강산과 푸른 동해바다를 감상할 수 있답니다.

     

       각설하고, 저희와 함께 최북단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로 가 볼까요?

     

     

       통일안보공원(출입신고소)에 세워져 있는 고성군 안내도.

     

       통일안보공원(출입신고소)은 통일전망대 남방 10km 지점에 세워진 곳으로, 통일전망대에 가려면 먼저 이곳에서 신청서에 인적사항, 차량번호, 차종 및 출입인원을 기재하여야 하고, 강당에서 약 8분간의 안보교육(동영상)을 받고 교육이수 도장을 받아야 통일전망대로 출발할 수가 있답니다.(사실 저희 가족이 갔을 때는 영상을 방영하는 기계가 고장나 안보교육이 생략되었답니다. 물론 방영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형식적인 거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낳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개별적인 출발은 불가능하고 30분 간격으로 기다렸다가 동시에 이동하게 됩니다.

       출입신고소를 출발하여 최북단 마을인 명파리를 지나면 민통선 검문소가 나오고, 이곳에서 작성된 신청서를 제출한 다음, 민통선차량출입증을 받아 통일전망대로 갑니다.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다보니, 아무래도 절차가 까다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전망대에 도착해보니 맞은편에 짧은 수목으로 이렇게 “통일 산림청”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네요.   

       “통일”은 마음에 드는데, “산림청”은 왜 새겨 놓은 것인지...

       “산림청”이라는 글자가 눈에 거슬리네요. 차라리 “평화 통일”이라고 새겨 놓으면 좋았을 것을...

     

     

     

       이곳에서 희생되신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위해 세운 “고성전투지역 충혼탑”

     

     

     

       공군351고지 전투지원작전 기념비.

       “351고지”는 통일전망대 앞에 있는 고지로, 산의 원래 높이는 366m였지만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351m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얼마나 폭격을 당했으면 15m나 낮아졌는지 상상이 안가네요.

     

     

     

       계단위로 보이는 곳이 바로 해발 70m에 위치한 통일 전망대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이렇게 2층 건물의 통일전망대가 있고, 그 앞쪽에는 탁 트인 시야 속으로 북한 땅이 눈에 들어옵니다.

     

     

     

       2층의 한 켠에는 이렇게 망원경들이 늘어서 있고, 관광객은 망원경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북녘 땅을 좀 더 가까이, 그리고 자세하게 관찰 할 수가 있답니다.

       물론 망원경 사용은 유료입니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과 바다.

       좌측으로는 금강산으로 향하는 동해선 도로와 철도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이 보입니다.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의 거리는 가깝게는 16km, 멀게는 25km의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이 방문했던 날, 때마침 날씨가 무척이나 맑아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답니다.

     

     

     

       사진기의 렌즈 줌으로 더 가까이 땡겨 보았습니다.

       날씨가 워낙 맑아서인지 모든 사물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아,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보였답니다.

     

     

     

       구선봉(九仙峰) 전경.

       산봉우리의 모양새가 마치 낙타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일명 “낙타봉”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구선봉은 금강산 1만 2천봉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정상에는 아홉 신선이 놀았다는 바둑판이 그려진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수 십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넓다고 합니다.

     

     

     

       해금강 전경.

       금강산 중에서 바다에 접한 부분을 해금강(海金江)이라고 부르며, 주변은 여러 아기자기한 조그마한 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송도(松島) 전경.

       이곳의 바위 사이로 나있는 두어 그루의 소나무가 바람에 휘날리며, 때로는 이곳에 학이 앉는다고도 합니다.

     

     

     

       바다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은 금강산 전경.

       푸른 하늘과 짙푸른 바다색깔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보시기에 색감을 보고 혹 후보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실텐데, 여기에 올린 모든 사진들은 아무런 뽀샵처리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진에 리사이즈만 한 것입니다.

     

     

      

       통일전망대 좌측으로는 이렇게 동해선 도로와 철도가 북한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금강산 육로관광이 활성화 되면서 이용차량이 많아져 가끔 남북을 통행하는 차량을 볼 수도 있답니다.

     

     

     

       남북을 잇는 철로의 모습.

       얼마 전에는 시험운행까지도 성공적으로 마쳤다지요.

       사실 저희 블로그 부부는 북경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이 꿈이랍니다. 물론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고생도 있겠지만, 어서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통일전망대 밑에서는 끝없이 연결된 철책선 옆으로 우리의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네요.

       어여 이 철책선을 고물상에서 엿으로 바꿔먹고, 땡볕아래 이렇게 고생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없어야 할텐데...

     

     

     

       통일전망대의 한 쪽 옆에는 통일미륵불상이 북녘 땅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통일미륵불상 앞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한 할아버지께서 부처님께 절을 하며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실향민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봅니다.

     

     

     

       통일미륵불상 바로 아래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역시 북녘 땅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그 마음이 북녘 땅에도 전해져 하루빨리 통일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비무장지대의 바닷가 전경.

       50 여 년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인지, 모래사장은 자연 그대로 새하얀 백색의 자태를 드러내고, 수심이 얕은 바다는 맑은 옥빛으로 빛나고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마치 원색의 짙은 파란색 물감으로 농담(濃淡)을 표현해 놓은 것 같네요.

     

     

     

       파란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가는 갈매기를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야속하고, 한 편으로는 저 넓디넓은 창공을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는 미천한 조물(鳥物)을 부러워해 보기도 합니다.

     

       아직도 남북에는 타의적으로 가족과 헤어진 이산가족이 무려 천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상봉하는 가족 수는 극히 미미하다고 하네요.

       물론 지금은 통일전망대가 실향민의 애절한 향수를 달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하고 있지만, 하루빨리 우리의 염원인 통일이 이룩되어 앞으로는 통일전망대가 아닌 환경보호전망대로 탈바꿈하도록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저렇게 북녁이 아름다운데 그곳 사람들은 그렇게 삭막한 사상을 따르고 있다니..
    그리고 저기 부처와 성모 사이에 예수와 십자가는 짤렸나봐요...
    잊어서는 안되고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지요 한데 요즘세대가 바쁘게 돌아가서 인지 모두들 자주 잊어버려 문제입니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존 글과 사진 잘 보구 갑니다^^
    건 강하세요~~
    악~! 내사진은 왜있는거여? ㅜㅜ작은아빠 정민이 사진 올리지..ㅜ 왜 내껄루..ㅜㅜ
    님들의 블로그에 슬픈 댓글을 달고 다녀 죄송한마음입니다
    에미의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짐승의 손에 어여쁜딸을 잃은 에미입니다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의 직장내성희롱 살인사건을
    사건발생지도 아니고 피의자의 주소지도 아닌 원주경찰서에서
    사건발생지인 양평경찰서로 이첩시키지 않고 초동수사부터
    사건의진실을 왜곡하고 은폐조작한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아고라 네티즌청원에도 서명부탁드립니다

    새롭네요!
    cass님 방문을주셔서 고마워.
    샬롬~~
    이시길.....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스크랩 하겠습니다
    좋은글 가져갑니다~
    6.25전쟁이 남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잘된 것은 자기탓이고 못된 것은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국민들은 마음이 착하여 남을 배려하는데 힘껏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 즉 자신이 소속하여 활동하고 있는 정당, 단체, 종교, 학교동문회 등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바른소리를 못하는 습관이 많은것 같습니다. **

    **세상살이 어느하나가 자연과 남의 영향을 받지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조선이 일본에게 침략당한 것도 다른나라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입니까?

    **결과적으로 문제는 침략 당한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을 당하게 한 조선의 조정이요, 그 다음 몸보신에 매달려 온 지식인들과 상류사회 양반들이 몸 보신을 위해 침묵하였던 것이 문제였으며 굳이 하나 더 언급한다면 당시 선각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던 어리석은 우리조상들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서산대사 등 당시 장군들과 의병들은 지극히 나라를 사랑 나머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대항하여 무참히 목숨을 받쳤다.

    **이어 조선 말엽에도 가렴주구하여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 목숨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하고자 동학을 창도한 수운 선생(최재우)이 보국안민을 기치를 내걸시 시작한 이래 얼마되지 않아 전라도 지역에서의 조병갑 고부군수 천하 악질적인 백성착취가 발단되어 폭발한 동학혁명이 발발하였으나 신식 무장한 일본군의 총알에 무참히고 죽음을 당한 30만명은 다름아닌 우리들의 선배들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역사적 사실에서 조선을 크게 두번이나 침략을 감행한 천황의 일본 나라는 분명, 좋지않은 행위였다.

    **6.25전쟁도 마찬가지다, 남침한 쪽이 나쁜것이다. 아직도 자유가 없는 차가운 동토의 땅이 아닌가? 지난일은 진심으로 반성하면 우리들 또한 용서하고 최대한 마음을 열어 덤뿍 사랑을 전달하여여 한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각자 스스로의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적응하여 얻어 낼 수 있는 분별력과 판단력이다.

    ** 남침을 인정하고 한마디 사과하지 않음은 일본이 우리땅 침략한 것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음은 무엇이 다를 바 있으리오,

    **더욱이 큰 문제는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우리국민의 의타심이 문제이다.

    **국민이 옳고옳지 않고를 분별하지 못함은 적과 아, 선과 악, 위법성과 적법 다시말해 양심과 비양심을 구분하지 못하여 사회 질서는 힘있는자가 독점하고 궂판을 차지해 혼란은 더욱 가속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우리모두가 알자!
    2006년 2,000km도보여행때 좋은분 만난곳을 다시 보니 그분들이 생각납니다^^
    고등학교때가본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