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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 2008. 10. 30. 12:08

     

    새롭게 단장한 역사 속의 상업거리 - 전문대가(前門大街)


       어제는 아침부터 한바탕 비를 내릴 것처럼 하루 종일 찌푸린 날씨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날씨와 더불어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불어 닥친 경제 불황의 온갖 악재(주가폭락, 환율급등)로 인해 몸과 마음속에는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몰아치듯 더욱 춥게만 느껴집니다. 더욱이 최근 불거져 나온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의 과욕 문제 등, 혼탁한 시국은 서민들의 분노를 사다 못해 절망감까지 들게 하네요. 어서 빨리 잔뜩 찌푸린 먹구름을 걷어내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화창한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분 전환도 할 겸, 얼마 전 다녀온 전문대가(前門大街)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물론 시국이 시국인 만큼 저희 블로그 부부는 어린 서희를 데리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려고 했지요. 왕복 지하철비 8위안, 중간에 갈증이나 구입한 음료수 6위안, 총비용 14위안이 들었지만 바깥주인은 안주인에게 욕을 먹어야 했답니다. 비싼 음료수 때문에 비용이 초과 지출되었다고...ㅜㅜ


       전문대가(前門大街)는 베이징의 중심축인 천안문(天安門) 광장의 남쪽에 위치한 거리의 이름으로, 과거에 베이징에서 가장 번성한 상업거리 중의 하나였답니다. 이렇게 상업이 번성하다보니 주변으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후통(胡同 - 골목길)들이 생겨났고, 많은 서민들에게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환경정비 사업으로 전문대가(前門大街) 주변의 후통(胡同 - 골목길)들과 서민들의 터전은 2006년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도로를 비롯한 도로변의 건물들은 20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올림픽 개막식 하루 전인 2008년 8월 7일 공식적으로 개통을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블로그 부부가 2년 전 공사를 막 시작할 무렵의 이곳을 사진에 담으면서,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몇 장의 사진이 있네요.

     


    전문대가(前門大街) 역사(歷史)

     

       전문대가(前門大街)는 명대(明代)부터 지금까지 약 500 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거리로, 남북으로 뻗어있는 거리의 길이는 약 845m라고 합니다.

      

       거리의 북단(北端)에는 성내(城內)로 진입할 수 있는 정양문(正陽門)이 세워져 있고, 명대(明代)부터 민국(民國) 시기까지는 ‘정양문대가(正陽門大街)’라고 불리어졌고, 1965년부터 정식 명칭을 ‘전문대가(前門大街)’로 명명(命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명(明) 시기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과거시험 준비생들이 이곳 전문대가(前門大街)에 몰려들면서 상권(商圈)이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청(淸)나라 초기에는 성내(城內)에 유흥업소를 금지시켜, 성(城)밖인 이곳에 극장, 찻집, 기방(妓房)등이 생겨나면서 더욱 번화하게 됩니다. 1920~1930년대에는 베이징의 가장 번성한 상업거리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50년대에는 이곳에 약 800 여 개의 크고 작은 상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2007년 5월 9일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정비작업 끝에, 1920~1930년대의 모습을 재현한  지금의 새로운 전문대가(前門大街)의 모습이 탄생되었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단장한 전문대가(前門大街) 전경.

       환경친화적인 전동 경찰차가 앞에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올림픽이후 다시 혼탁해진 공기와 대조가 되네요.

     

     

     

       2년 전에 찍은 전문대가(前門大街)의 모습입니다.

       그 당시에는 왕복 2차선의 도로(교통체증의 천국)였고, 패루(牌樓)에는 ‘전문대가(前門大街)’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차량도로를 없앤 보행가(步行街)로 바뀌었고, 패루(牌樓)도 예전에 비해 더 크고(베이징에서 가장 큰 길거리 패루라고 하네요), 이름도 ‘정양교(正陽橋)’로 바뀌어 있습니다. 과거 역사적인 문헌과 사진을 근거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하네요.

     

       사실 이곳 전문대가(前門大街)는 명대(明代) 이래로 황제(皇帝)가 천단(天壇 -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선농단(先農壇 -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을 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2년 전 정양문(正陽門)의 모습.

       정양문(正陽門)은 과거에 베이징의 성내(城內)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지금은 정양문(正陽門) 앞으로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전문대가(前門大街)의 출발점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습니다. 더욱이 가이드들이 이끄는 단체 관광객이 눈에 많이 띄네요. 아마도 조만간 한국의 베이징 패키지여행에도 이곳이 포함되지 않을까 싶네요(이곳은 입장료가 없으니까 여행사 입장에선 돈을 절약하는 좋은 코스이지요).

     

     

     

       과거에 전문대가(前門大街)를 시발점으로 운행했던 궤도전차 “당당처(當當車)”.

       옛날 궤도전차의 앞쪽에 동(銅)으로 만든 종(鐘)을 달아 운전기사가 가속 페달을 밟으면 ‘당당’하고 소리를 내어 전차 앞을 지나가는 행인이 소리를 듣고 피한다고 하여 “당당처(當當車)”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땡땡’하고 소리를 표현하니, “땡땡이 차”라고 불러야 할 것 같네요. ㅎㅎ~

       참고로, 원래 올림픽 개막과 더불어 “당당처(當當車)”를 운행하려고 했지만, 무슨 문제인지 아직도 운행은 하지 않고 전시용으로만 전문대가(前門大街) 입구의 양쪽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새로이 단장한 전문대가(前門大街) 주변의 건물들.

       현재의 이 모습은 과거의 사진과 역사적인 문헌 고증을 거쳐 1920~1930년대의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전문대가(前門大街)를 중심으로 양측에 건설된 건축물의 면적은 약 6.6만 평방미터에 달하며 180 여 개의 상점이 입주할 수 있다고 하네요.

     

       현재는 예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있던 몇몇 “라오쯔하오(老字號 - 대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에게 부여하는 칭호)”상점만 개점한 상태로, 대부분이 텅 빈 상태로 있어 약간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돕니다.

      

       참고로, 새롭게 단장한 이곳에 입주를 하려면 100㎡의 한 달 임대료가 보통 8만 위안(1,600 만원)이라고 하니, 왠만한 영세업 상인은 이곳에 자리를 잡지 못할 것 같네요.

     

     

     

       전문대가(前門大街) 가운데로 전차가 지나갈 궤도가 보이고, 양 옆으로는 상가 건물들이 제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앞쪽으로는 정양교(正陽橋) 패루(牌樓)와 정양문(正陽門)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정양문(正陽門)을 통과하면 마오쩌뚱(毛澤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마오쩌뚱(毛澤東) 기념관’천안문(天安門) 광장이 나타납니다.

     

     

     

       전문대가(前門大街) 입구의 동쪽에 첫 번째로 자리하고 있는 건물이 바로 “따베이자오샹관(大北照相館 - 대북사진관)”입니다.

       "대북사진관"은 베이징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진관으로, 1921년에 세워졌다고 하네요. 원래는 전문(前門) 외곽의 후통(胡同 - 골목길)에서 시작하여, 1958년 현재의 터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2년 전 전문대가(前門大街)에서 처음으로 환경미화 사업을 시작한 월성재(月盛齋)의 공사모습.

       좌측에는 공사 후의 모습을 커다란 걸개그림으로 걸어 놓았네요.

     

     

     

     

       새로운 모습으로 재단장한 월성재(月盛齋)의 모습입니다.

       월성재(月盛齋)는 청대(淸代)인 1775년에 세워져 200 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베이징에서 유일하게 “칭쩐(淸眞 -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들은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고, 주로 소고기와 양고기를 애용하여 붙은 이름)” 고기 요리를 전문으로 파는 국유(國有) 기업입니다. 특히, “지앙로우(醬肉 - 간장에 절인 고기)”“샤오로우(燒肉 - 먼저 익힌 다음 굽거나 볶은 고기)”가 유명하여, 베이징 토박이들의 식탁메뉴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리로 사랑을 받아 왔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청대(淸代)에는 황궁(皇宮)에서 이곳의 요리를 애용하여 특별히 “야오파이(腰牌 - 허리에 차는 입궁 통행증)”도 하사(下賜) 하였다고 하네요. 더욱이 어느 겨울날 이 상점의 주인이 뒷산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부주의로 산불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당시의 규율에 의하면 참형(斬刑)에 처해야 했으나, 황태후(皇太后)가 “그를 죽이면, 나는 무엇을 먹나?”라고 하면서 사면(赦免)을 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상점의 요리가 호신부(護身符) 역할을 한 셈이네요.

     

     

     

       중국을 대표하는 음식점인 “취앤쮜더 카오야(全聚德烤鴨 - 전취덕 오리구이)” 본점(本店)의 과거모습.

       1864년에 세워진 이 음식점은 전문대가(前門大街)의 환경미화 사업으로 인해 작년 4월 25일 문을 닫은 뒤, 일년이 지난 올해 8월이 되어서야 전문대가(前門大街)의 개방과 함께 다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취앤쮜더 카오야(全聚德烤鴨 - 전취덕 오리구이)” 본점(本店)의 모습.

       과거 상점 앞으로 세워져 있던 전신주와 얽히고설킨 전선들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시야가 탁 트이네요.

     

       이 모습을 보니, 갑자기 올해 초 당시 이명박 당선인의 “대불산단 전봇대 사건”이 생각나네요.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복지부동(伏地不動)인 기관의 아부근성과 냄비근성의 언론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전봇대가 이쑤시개 뽑히듯 뽑혔다죠.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고, 보통 한 마리에 200 위안 전후로 상당히 비싼 가격(이제는 환율 급등으로 모든 것이 비싸게 느껴지네요.ㅜㅜ)임에도 불구하고 “취앤쮜더 카오야(全聚德烤鴨 - 전취덕 오리구이)”를 맛보려는 손님들이 이렇게 길게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전문대가(前門大街)의 또 다른 곳에 위치한 “뚜이추(都一處 - 도일처)”라는 식당으로, 이곳 역시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줄을 지어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1738년에 산서인(山西人)이 창업한 식당으로, “샤오마이(燒麥 - 돼지고기·양파·소금·후추 따위를 혼합하여 얇은 피(皮)에 넣고 찐 만두의 일종)”가 유명하다고 하네요.

     

     

     

       “뚜이추(都一處 - 도일처)”식당 옆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에 의하면, 1752년 건륭(乾隆)황제는 2명의 신하를 이끌고 일반인 차림으로 민정을 살피기 위해 베이징의 남쪽인 통저우(通州) 지역으로 암행(暗行)을 갔다고 합니다.

       황궁(皇宮)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문대가(前門大街)를 지나면서 배가 출출하여 주변의 식당을 찾았으나, 섣달 그믐밤의 늦은 시각이라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유일하게 한 곳의 식당이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었고, 황제일행은 이곳에서 맛있는 요리와 함께 반주(飯酒)를 하며 만족해하였다고 합니다.

       이후에 황제는 당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읍지에서 유일하게 장사를 하는 곳이라 하여 “都一處”라는 이름을 친히 명명(命名)하였고, 扁額(편액)을 직접 써서 하사(下賜) 하였다고 합니다.

     

     

     

       1785년에 세워진 “이티아오롱(壹條龍)”“칭쩐(淸眞 -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들은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고, 주로 소고기와 양고기를 애용하여 붙은 이름)” 요리와 “슈안양러우(涮羊肉 - 양고기 샤브샤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입니다.

     

     

     

       이곳 역시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알고 보니 “양러우추안(羊肉串 - 양 꼬치구이)”를 팔고 있었답니다. 블로그 바깥주인이 좋아하는 먹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입맛만 다셔야 했지요. 날씨도 추워지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 때문인지 이럴 때일수록 배가 더 자주 고파지는 것은 왜일까요?

     

       이 식당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원래는 “난헝쉰(南恒順)”이라고 불리는 양(羊)고기 요리점 이었다고 합니다. 1897년 늦봄의 어느 날, 스물 댓 살 정도로 보이는 주인과 사십을 넘긴 듯한 하인이 이곳에 와서 “슈안양러우(涮羊肉 - 양고기 샤브샤브)”를 먹고 요리 값을 내지 않았다고 하네요. 당시 식당의 주인은 손님의 차림새를 보니 무전취식(無錢取食)할 사람은 아닌것 같아, 나중에 아무 때나 와서 갚으라고 친절하게 손님을 대했답니다. 그리고 이튿날 황궁(皇宮)에서 “타이지앤(太監 -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식당에 와서 음식값을 지불하였고, 식당주인은 그제서야 어제의 그 젊은이가 바로 광서(光緖)황제였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곤 황제가 앉았던 의자와 사용했던 식기들을 황금빛 보자기에 싸서 소중하게 보관을 했다고 하네요.

       사실 당시에 용(龍)은 황제를 상징했기에 일반인은 “龍”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못했답니다. 청(淸)나라가 몰락한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에야 비로소 “이티아오롱(壹條龍)”이라는 식당 간판을 내걸을 수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식당에는 당시 황제가 사용했던 식기들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문대가(前門大街)의 끝자락 부근에는 우체국, 중국서점, 장일원(張一元 - 茶를 판매하는 상점)등이 일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일원(張一元 - 茶를 판매하는 상점) 역시 1900년에 세워진 100 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라오쯔하오(老字號 - 대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에게 부여하는 칭호)” 상점이랍니다.

     

     

     

       이 건물은 상단에 붉은 별이 새겨져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문득 ‘애드가 스노우’ <중국의 붉은별>이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최근에 새로 단장된 거리라 그런지 거리가 상당히 깔끔하고, 환경 미화원들이 쉬지 않고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쓸고 닦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저희 집 귀염둥이 서희의 걸음마 연습이랍니다.

       막 걷기 시작한지라 조금 어설프게 뒤뚱뒤뚱 걷지만, 하루 하루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희 블로그 부부에게 커다란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네요.

     

     

    중국에서 살아가기  "전문대가(前門大街)"와 관련된 또다른 이야기

     

    사라져가는 추억 - 북경 골목(胡同) 철거의 현장을 가다 (←이곳을 꾸욱 눌러 주세요)

     

    북경 오리구이의 대명사 - 전취덕(全聚德) 이야기 (←이곳을 꾸욱 눌러 주세요)

    오호 두이추(都一处)가 열렸나 궁금했는데 열렸군요...
    이번 북경올림픽에 북경을 가려했는 못가 본 것이 아쉬웠는데 덕분에 북경 정보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환율이 너무 비싸서 가까운 중국이 멀어진 중국이 되었내요...
    안녕하세요...Sgoon님...

    都一處에서 음식을 드셔 보셨나요?
    중국음식에 입맛 들이기가 쉽지가 않으셨을텐데...*^^*

    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중국이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된 느낌이네요...ㅜㅜ
    잘보고,잘읽고 갑니다. 사진속의 청명한 하늘이 인상(?)적이군요.
    안녕하세요...머니님...

    먼저 저희 블로그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사실 베이징의 하늘은 가까이서 보면 청명(?)하지만, 멀리 바라보면 지표면 바로 위로 누런 오염덩어리를 볼 수가 있답니다...ㅜㅜ
    내가 알고 있던 그곳인가?아닌가?지금 아리송 하답니다.ㅋ전문대가를..중국말로 치엔뭔이라고 부르는곳 맞나요?그곳같은데 너무 많이 바뀐것 같아요...2년전에 또 주인님 블로그에서 보고 치엔뭔 근처에 있는 후통에 가봤거든요...천안문 근처에 그런 후통이 있는거 보고 좀 놀랬어요..그리고..후통안에 여관같은 호텔에서 하루 묵었거든요..ㅋㅋ 그런데..주인님 사진보니까..내가 알고있는 그곳이 여기 맞나 싶어요..그때도 조금씩 철거하고 있었거든요...ㅋㅋ새로워요...^^ 점점 발전하는게 눈에 보이네요..

    서희가 부쩍부쩍 자라네요..심각하게 주인님 글 읽다가 마지막에 겸둥이 서희사진보니까
    미소지어 지네요^^
    주인님의 가정의 행복함이 느껴진답니다..호호호~~~

    벌써 11월이네요..추운겨울...ㅠㅠ
    경기가 안좋아서 그런지..이번겨울은 더 춥게 느껴지네요.
    주5일근무지만...토요일에도 저는 출근했답니다.ㅠㅠ
    휴~~~ㅠㅠ 즐거운 주말...행복한 주말 되세요^^

    안녕하세요...송인숙님...

    이곳이 바로 님께서 알고 계시고, 예전에 다녀 오셨던 "치앤먼(前門)" 이랍니다.*^^*
    너무 많이 바뀌어 놀라셨죠?
    물론 지금은 주변의 후통을 모두 철거해 버리는 바람에 예전처럼 서민적인 진솔한 모습이 사라져버려 아쉽지만...

    그리고, 사실 저희도 서희땜시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ㅎㅎ

    아니 주5일 근무인데, 오늘도 출근하시다니...
    근무외 수당은 나오나요?

    날씨도 춥고,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거적 하나만 깔아 놓으면 될려나? ㅋㅋㅋ

    요즘, 국제적으로 경제가 불황(그 중에서도 한국이 특히 심하지요)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심리가 위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더욱 적극적인 모습으로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송인숙님도 힘내세요... 아자~아자~ 홧팅 !!!

    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즐거운 주말 맞이 하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반가운 소식 접하고 갑니다. 그간 칩거에 얽힌 사연을 읽으며 가슴 무거웠는데 귀한 아이가 오려고 그리 힘들었나 봅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안주인에게 특히(물론 주인장에게도) 축하 인사 전합니다! 서희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글과 함께 접할 수 있어 더 좋네요~
    비밀댓글입니다
    그동안 들어와두 들어와두 안계셔서 아주 포기 했다 오늘 들어 왔더니,,드뎌 계시네요.방가방가
    저를 기억 하실지도 자신이 없지만,, 딸이 한국 대학으로 진학 하게 되어 이제는 한국에 들어 와 있답니다,, 서희 모습에서 두 분 모습 상상 하니,,선남선녀시네요,,정말 귀여운 아기예요,,이쁘게 건강 하게 잘 키우시길 기도 드릴께요,,,이제 알았으니 자주 놀러 올께요,,,^^ 건강 하세요~~
    이쁜 블로그에 멋진자료 감사합니다.
    즐거운하루되세요.. ^^
    I wish you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아가가 너무 기엽네요!
    들렀다갑니다. 놀러오세요 http//cafe.daum.net/lux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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