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6. 10. 23. 13:03

우리 마을은 영동군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민족정기가 흐르는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불당산을 주봉으로 하여 크고 작은 봉우리가 학이 날개를 펼쳐 알을 품은 듯 포근히 감싸 안은 곳.  앞으로는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발원한 장교천이 유유히 흐르며 더 넓은 한 들을 만들어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신라시대에는 소라현, 고려시대에는 황계현, 조선 태종 때 충청도, 임란 후에는 황청현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따라 우리 마을도 이촌을 병합하여 장척리라 하고 영동군 매곡면에 편입되었다.

우리 마을은 본래 장자울인데 덕망이 있는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설과 장자바위가 있어 장자울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장자울은 현 동구밖에 있는 바깥 장자울이라는 곳에 살다가 어느 시기에 현 위치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그리고 못이 잇어 조선시대는 지동이라 불렀다.

우리 마을에 최초로 정착하여 거주한 사람은 달성서씨와 서산유씨가 살았다는 설이 있다. 충주박씨는 내동에서 1550년경 장자울로 이주하여 터를 잡고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그 당시 가구수는 십여호가 살은 적이 있으며, 충주박씨는 1600년경 율수제를 지어 평상시는 서당으로 이용하였고, 시제때는 제숙으로 사용하였다.

지금은 김해김씨, 공주김씨, 선산김씨, 의성김씨, 여흥민씨, 밀양박씨, 충주박씨, 반남박씨, 순천박씨, 상주박씨, 수원백씨, 벽진이씨, 성산이씨, 성주이씨, 전주이씨, 단양우씨, 서산유씨, 인동장씨, 연안전씨, 나주정씨, 서산정씨, 창녕조씨, 해주최씨, 청주한씨 등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팔백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불당산 밑 못골이었던 곳에 한실과 뒷골사이에 자리잡은 마을로 입구에는 사백여년의 느티나무에 금줄을 치고 동제를 지냈는데 1950년 쯤 되어서 없앴다.

우리 마을은 덤더리, 서낭당, 못골재, 바깥장자울, 산막골, 소죽골, 세암골, 여수바위 전설이 깃들어 있는 마을이다. 또한 1950년 6.25 전쟁의 격전지로서 장척 뒷골과 이촌 뒷산에는 UN군이 사빅이산(내동)에는 북한군이 주둔하여 피아간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많은 아군과 적군이 전사하였으며, 당시 미처 피난가지 못한 연로하신 많은 노인들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내장교는 처음 외나무다리, 철가치 다리로 다녀 전설의 고향같은 고장인데, 1972년 내장교가 건설되고 경지정리가 되었으며, 2003년 마을회관 신축, 2004년 다목적 창고, 2006년 저온창고가 신축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태어난 출향인사 벽진이씨 이병선 · 약사 최길순 부부는 남다른 고향 사랑이 애틋하여 마을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사단법인 장척문화재단을 설립(2006년) 십여억원의 기금을 출연, 매곡면민에게 장학금 지급 및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어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근검 · 성실하고 협동심과 애향심이 강하고 봉사하는 생활 속에 마을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며 부락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10년  5월    일

장척마을 주민 일동







마을자랑비 앞쪽에는 전국쌀증산왕비와 예전 마을자랑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자랑비 바로 앞에 있는 이성원, 이병선 부자의 공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