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7. 3. 19. 20:08



원촌마을 유래비

- 서원의 정취가 숨쉬는 원촌마을 -


우리 마을은 황간현 내남매하면(梅下面) 지역에 속햇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동(水洞-모현대 둔덕리) 원촌(院村-서원마덕고리)의 이름을 따 수원리(법정)라 하였으며, 행정리는 원촌리(院村里)로 덕고리(德古里-더구리)와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덕고리 15가구가 1989년 육군본부 직할 군사시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없어졌다.
본래 원촌리는 서원(書院)의 원(院)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으로 섬마라고도 한다.
조선조 현종 7년(1656년)에 선현을 추모 향사하기 위하여 송계서원이 창건되어 조위(梅溪 曺偉), 박영(松堂 朴英), 김시창(嵐亭 金始昌), 박응훈(梧村 朴應勳), 남지언(三槐堂 南知言), 박유동(一石 朴愉棟)을 배향했다.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송계서원이 헐리고 1955년 3월 유지들의 성금으로 마을 남쪽에 송계서원 유허비를 세워 보호 비각을 건립하여 6현의 단묘를 설치해서 매년 음력 3월15일 향사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기름진 들과 장교천의 풍부한 물과 유물 발굴 등으로 미우어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우리 마을의 옛터는 물 건너 정연들로 주막과 물레방아간이 있었으며 정연들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살던 것이 1932년경 새로운 신작로가 현재 동네 앞으로 지나가게 됨에 따라 한 집 두 집 지금의 터로 옮겨 오기 시작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지금은 정연들에는 한 집도 살지 않고 있다.
또한 한양을 가기위해 영남의 선비들이 괘방령을 넘어 장터를 거쳐 서당가보의 정연들 앞길을 지나 신어재를 넘는 중요한 소로였으나 1999년 군도로 지정되어 2차선의 도로가 확포장 됨에 따라 거리 단축으로 영동으로 가는 주된 길이 되고 있다.
우리 마을은 11개 관향을 가진 26가구가 살고 있으며 1980년 초까지 벼보리의 미맥(米麥)위주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지금은 포도 복숭아 감 등 고소득 작목으로 전환하여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하였으며, 1996년 경로회관로,005년 마을공동창고 신축으로 살기 좋고 의리가 넘치는 전통의 마을을 후손에게 전하며 영원무궁토록 협동단결 봉사하며 이웃 사랑속에 행복을 누리며 누구나 살고 싶어 찾아 오는 마을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마을 사람들 모두의 뜻고 힘을 담아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08년 11월   일


원촌마을 주민 일동




마을유래비 길 건너편에 있는 원촌경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