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7. 3. 19. 20:39








임산1리 마을 유래비
- 백두대간의 황학산 정기를 받은 임산1리 -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 우뚝 솟은 황학산 정기를 받고 동서남북으로 곤천산(坤天山), 남산칠봉(南山七峰), 수산(壽山), 와산(臥山), 지명산(智命山)에 포근히 둘러싸여 있는 임산1리는 마을 앞으로 옛 이름이 장교천(長橋川)인 초강천이 휘돌아 흐르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본래 황간현 매남매화면 지역으로 1909년 황간군 매화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주리와 관기리를 병합하여 임산리로 상촌면에 편입되었고, 1984년 군조례에 의거 임산1리, 임산2리, 관기리로 행정리가 개편되었다.
우리 마을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임산으로 불리어 온 것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무성하게 우거진 송림(松林) 때문에 이름 지어졌다.
오래전의 일은 상고(詳考)할 수 없으나 한일합방 이후까지도 지금의 마을자리가 대부분 강변이어서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가 하도대리에 있던 상촌면사무소가 1925년 관기리 영모재로 다시 상촌고등학교로 옮기는 등 전전하다가 1930년 현재 임산1리 325-2번지에 상촌면사무소가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마을의 5일장은 인근 수원리(모현대) 장터가 없어지고 1934년 임산장이 개시되어 1일과 6일로 열리고 있으며, 1936년경 아래장터 중심으로 30여호가 들어서고 행정기관과 상가가 조성되어 명실상부한 상촌면 중심지가 되었으며, 장터라고도 불린다.
일제 강점기 때 흥덕리 삼황학금광(三黃鶴金鑛)외 5개를 개발한 관계로 전기도 영동읍 보다 20여년 먼저 들어왔고, 금을 다량 생산하여 호경기와 또한 여러가지 농·임산물이 풍부하여 산중도방(山中道坊)이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 마을은 한국전쟁 때인 1951년 공비들의 습격으로 상촌면사무소가 불타 소실되었고, 1936년 병자년 대홍수 때 마을 대부분이 물에 떠내려가고, 1987년 셀마, 2002년 루사 태풍으로 마을이 많이 피해를 입었다.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1993년 임산장터제방 옹벽공사 완공과 1985년 세심정 부근 49번 지방도 선형개량 공사로 많은 대지가 생겨 소방서대기소, 노인회분회, 전천후게이트볼장, 체육시설 등 많은 문화시설이 우리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2005년 마을회관, 2007년 다목적창고, 2009년 마을동사, 2010년 저온저장고가 신축되어 마을 주민이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주민들의 단결된 힘을 합쳐 오늘의 터전을 마련하여 영원히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나아가고자 주민의 뜻과 힘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13년 12월   일


임산1리 주민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