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7. 3. 28. 20:00


▲ 영동읍 조심리 마을자랑비, 마을유래비


▲ 조심교 옆에 있는 영동읍 조심리 마을자랑비


▲ 영동읍 조심리 마을자랑비 뒤로 보이는 아파트는 조한드림플러스 아파트


▲ 조심교에서 바라다 본 조심리 마을전경


▲ 영동읍 조심리 마을회관


▲ 영동중학교, 영동고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는 조심리 마을자랑비




▲ 영동읍 조심리 마을




조심리 마을자랑비


행정구역상 본래 매천리인 우리 마을 조심리는 마을이 형성될 무렵 각종 수목으로 우거진 가운데 영동관내 참새 떼가 집중 서식하고 있었다 한다. 이러한 사연으로 거주민 자신들이 새심이라 불리던 지명이 새 조(鳥)자, 마음 심(心)자를 써 조심리라는 행정구역으로 명명하던 것이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동쪽에서부터 돈 바우라는 바위산을 시작으로 서쪽으로 길게 쭉 뻗은 용두봉까지 그림처럼 펼쳐 있는 병풍 아래 130여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1980년대부터 마을 부녀회 45여명으로 구성된 농악대는 영동읍을 대표하여 많은 수상을 한 바 있고, 이로 인한 부녀회의 활약으로 마을 발전에 한 몫을 단단히 하였다.

일제 강점기 70여년 전부터 배(梨)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타 마을보다 높은 소득을 올려 부촌(富村)을 이루었고, 지금은 "배목배" 라는 자체 상표로 전국 각지로 출하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선조들의 노력으로 잘 가꾼 이 터전을 우리가 더욱 더 계승 발전시켜 우리 후손에게 물려 주어 자자손손 번영의 터전으로 영원히 이어 가길 바라며, 우리 마을의 무궁 무진한 전진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담아 이 비를 세운다.



2001. 12. 20

마을 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