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7. 4. 26. 12:43









▲ 마을 입구 도로변에 세워있는 여장군


▲ 마을 입구 도로변에 세워있는 마을 표지석


▲ 유래비 근처에는 벗꽃길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뒤에는 비봉 앞에는 금강이 흐르는 산자수명의 아름다운 우리 수두 마을은 옛부터 높은 기상과 순후한 인정미와 상부상조를 본으로 삼아온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마을의 유래는 먼 신라시대 조비천현에서 양산현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는 충청도로 편입되어 옥천군 양내면 수두 대곡동으로 불렀으며,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곡동을 병합 행정리명을 수두리라 하였으며, 자연부락으로 내수두(안 숲머리) 외수두(바깥 숲머리) 대곡(틸)이 포함되어 있다.

원래는 양산숲(수두리-송호리)의 머리쪽이 되는 곳에 자리잡았다하여 "숲머리"라 불리워졌으나 지금은 숲은 없어지고 몇 그루의 노송과 느티나무가 옛날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마을 앞 맑은 금강변에는 구선대 봉황대 한천정 등 경관이 수려한 명소가 있어 옛 성인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인데, 요즘은 매년 많은 관광객이 철따라 몰려와 쾌적한 피서지가 되어 있으며,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에는 서울,영호남을 왕래하던 교통 요지로 도선장이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낭만이 넘치는 나룻배 대신 주민의 협동으로 100m 가 넘는 세월교를 가설하였으니 주민의 협동정신은 우리 마을을 이끌어 오는 정신의 지주로서 먼 옛날부터 윗 어른들께서 어려운 환경 여건속에서도 주민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협동 단결하여 많은 임야와 전답을 마련 마을의 공동재산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뜻을 이어가는 우리 마을 정신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랜 역사와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마을 사람들은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며 이웃간에 화목하게 살아가는 농촌의 표본마을로 주민이 합심하여 영농기술을 향상 복합영농으로 소득을 올리며 근검절약하는 조상들의 높은 뜻을 후손에게 전수하여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 마을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미풍양속이 살아 숨쉬는 순박하고 인정많은 고장으로 길이 남기고자 내외주민 모두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1994년  11월    일


수두리 주민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