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7. 5. 23. 23:18





자랑스런 미촌


우리 마을은 삼국시대 부터 형성되어 신라 경덕왕 때 양산현 지역으로 옥천군 양남 이소면에 속해 있다가 1906년 영동군 용화면이었으나 1947년 학산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봉림리 미촌이나 속명으로는 안산기미 안산구미로 불리고 있다.

마을 앞에는 시항천이 흐르고 한복판에는 200년이 넘은 버드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지닌 채 우뚝 서 마을을 지켜보고 있으며 뒷동산은 6.25 전쟁 이후부터 600여 마리의 백로와 왜가리가 날아와 장관을 이루는 철새도래지로서 천연기념물 보호지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마을 중앙에 있는 성위제 가옥은 9대에 걸쳐 사당을 모신 전통가옥으로 지방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144호(1984.1.10)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특히 광채는 18세기 정도로 추정되는 보기드문 건물이다.

우리 마을의 구성원은 임진왜란 때 한양에서 낙향하신 성균관진사 성공(成公) 호(號) 가정(稼亭) 휘(諱) 언충(彦忠)의 증손인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 휘(諱) 호빈(虎斌) 공께서 자리잡아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고 근래에는 부여 서씨 김해 김씨 고령 신씨 등이 어울려 사는 화목한 마을이다.

최근 우리 마을의 발전모습을 살펴보면 1963년부터 2년동안 전 동민이 힘을 합하여 마을 앞 제방을 쌓았으며 1979년에는 성택제(成宅濟) 선생의 헌신적인 주선으로 마을 앞 다리를 놓았고 1980년대에는 마을회관을 건립하고 경지정리 및 진입로를 개설 포장하여 살기좋은 마을이 이룩되었다.

우리 미촌가족 모두는 우리의 뿌리인 고향을 아끼고 가꾸며 효제의 정신과 미풍양속을 보존하는 근면 성실한 생활로 아름답고 정겨운 이 영원한 고향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다짐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서기 1992년 10월 25일


미촌 가족 일동





고향


                                                     장지성


적막이 알을 품는 뒷골도 길은 골짝

그 자락 정기 깔아 터를 잡고 둥지를 튼

고향은 한 폭의 그림 가슴 열어 맞이하네

마을 앞 버드나무에 온갖 애환 묻어 두고

하봇물 송사리 떼 천렵 또한 잊을 손가

닭 서리 묵내기 하며 밤 마실도 깊던 겨울

시항천 점벵이 들 펼쳐 보던 꿈과 사랑 ...

서럽던 지난 세월 패랭이 꽃으로 풀어놓고

해마다 찾아 드는 학 니래 펼친 미촌이여








마을 입구에 있는 왕버들나무로 한 나무에 11종의 나무가 공생하고 있어서 상생(화합)의 나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양강면 묵정리에서 용화방면으로 난 큰길가에 세워져 있는 미촌마을 입구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