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동의 사계 ◇──/기타 풍경사진

황인홍 2017. 6. 16. 12:34

이곳은 『노근리사건 현장 입니다.


영동읍에서 '영동황간로'를 따라 황간쪽으로 한참을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노근리평화공원이 보이고

평화공원이 끝나갈 무렵 왼쪽편으로 하얀 바탕에 붉은 글씨로 된 길다란 간판이 보입니다.




"이곳은 『노근리사건』 현장입니다"

이곳이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입니다.


60여년 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 때,

피난을 떠나라는 말만 듣고 무작정 집을 나섰던 양민들이

아군으로만 알았던 미국 군대에 의해 무차별 학살을 당한 곳입니다.




1950년 7월 23일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영동읍 주곡리 시골마을에 갑자기 피난을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주곡리 주민들은 안쪽 마을인 임계리로 피난을 왔지만,

7월 25일 저녁 미군은 다시 남쪽(후방)으로 피난을 명령하고,


주곡리와 임계리주민, 그리고 타지역주민 등 500~600명은 영동읍 하가리 하천에서 노숙을 한 후

26일 정오 무렵 4번국도(현 영동황간로)를 따라 황간면 서송원 부근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미군은 국도를 이용하지 말고 철길로 올라가라고 명령을 합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체 명령에 따라 철길로 올라서는 순간,

하늘에서 커다란 괭음과 함께 미군 폭격기가 날아와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합니다.

혼비백산하여 흩어지는 난민들을 향해 이번에는 기관총탄이 장대빗처럼 쏟아집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일부는 산으로 올라가고

많은 무리들이 미군 비행기의 공격을 피해 이 굴다리 밑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하지만 끈질긴 미군들은 근처 야산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굴다리 안으로 총탄을 쏟아 부었습니다.

기관총도 모자라 박격포까지도 동원했다고 합니다.


26일 오후에 시작한 총질은 29일 오전이 되어서야 겨우 멈췄습니다. 




굴다리 입구 벽면에 난 수많은 총탄 자국이 그날의 처절함을 말해 줍니다.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에 걸친 미군의 공격으로 많은 수의 양민들이 희생을 당하였는데,

국가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밝혀진 희생자만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그 당시 중상을 입어서 후일에 휴유장애를 겪는 사람이 63명에 달합니다.


가족이 몰살을 당했거나 연고가 없는 희생자의 경우에는 신고가 되지 않아서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가 정확히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2007년 7월 27일부터 2008년 3월 3일까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노근리사건 피해자 유해발굴을 하였습니다.




노근리사건 희생자 참배단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습니다)


전망대 올라가는 길



전망대는 가는 길은 그리 험하거나 높지는 않지만,

혹시나 힘들까봐 친절하게도 돌로 된 의자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건강한 70대라면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노근리평화공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노근리 평화공원 전경




노근리평화공원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역사 공원이다보니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전차나 항공기, 군용트럭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바로 앞쪽에 낮은 건물은 노근리평화공원 방문자센터이고

저 멀리 뒷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노근리평화공원 교육관입니다.





영동읍에서 영동황간로를 따라 황간쪽으로 가다가 보면 왼쪽으로 쌍굴다리가 보입니다.



어떤 분인지 맛있는 커피를 드시고는 그만 '양심' 을 두고 가셨네요.

가져 가시지...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