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7. 11. 20. 19:11

공암마을 유래비


공암마을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영토로써 조비천현에 속한 마을 이였으며 서기757년 (신라 경덕왕)에는 조비천현을 양산현으로 개칭하고 사벌주(경북 상주시) 관성군 (충북 옥천군) 양산현 (영동 양산면)에 따른 마을 이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서기 1018년 (고려 현종왕)에 양산현을 경상부(경북 성주군)에 이속시킴으로써 공암 마을을 경산부와 양산현의 속동이 되었다. 

이조시대에는 서기 1413년 (조선 태조왕)에는 공암마을은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속되었으며 서기 1740년 (조선 영조왕)에 관성군을 옥천군으로 개칭하고 옥천군 양남면 철동리의 속동으로 되었으나 공암마을의 이름은 용암으로 되어 있다. 

서기 1906년 (조선 고종왕)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암마을은 옥천군에서 영동군으로 이속시킴으로써 영동군 양남면 철동리 용암동으로 되었다. 

서기 1909년(조선 고종왕)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남면을 양남일소면과 양남이소면으로 분면하면서 리제(里制)가 없어지고 면 洞制로 되어 공암마을을 영동군 양남일소면 용암동으로 되었다. 

서기 1914년(일제) 행정구역 정리로 리동(里洞) 제를 부활하여 양남일소면을 학산면으로 용동을 공암으로 개칭, 아암리를 신설함으로써 공암마을을 영동군 학산면 아암리 공암으로 되었다. 현재는 아암리 법정리동이고 공암은 행정리동이다. 

공암 마을은 백하산에서 발원되는 실개천을 중앙에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부락이 형성되였으며 이곳에 언제 누가 먼저 거주 했는지 고증할 수 없다. 다만 마을 어귀에 있는 동굴 (박쥐굴)에서 마제석검 (돌칼)이 출토되고 인근지역 산찌양지(장항마을)에서도 양날석검이 출토되였으며, 괴서증매 (매년 섣달 그믐날 온동민이 정서을 모아 제를 올림) 등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연일정씨가 터를 잡고 거주하고 그 후 여러 성씨들이 모여 부락이 형성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마을 어귀에 울창한 숲속에 괴암 절벽에 천연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을 속칭 용굴바위 또는 박쥐굴이라 한다. 이 동굴 연유로 마을의 이름을 용굴바우 굴바우 변화된 것으로 보며 동굴을 뜻하는 이명 동의어로서 고유명칭으로 토착된 것을 추정하고 있으며 한자 표기로는 용암 공암으로 통용되고 있고 마을의 마음을 담아 이 비를 세우다.


2010년 5월 일

공암마을 주민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