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살던 고향 ◇─/마을유래비

황인홍 2017. 11. 22. 20:27

죽산리(竹山里) 명소의 고장 죽산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있는 우리마을은 지금부터 800년전 고려중엽에 오정골에 제주고씨 고진손(高震孫)이 금산에서 새터에 진주강씨 강용승(姜龍承)이 거창에서 배암칭이에 밀양박씨 박광침(朴光琛)이 심천에서 이주하여 마을 터전을 잡았고 그후 金 裵 卞 宋 呂 尹 李 張 鄭 黃 韓 씨가 이주하여 함께 모여 정답게 살고 있는 마을로 서기 1759년(영조35년)충청도 옥천군 양내면 오정 죽항 마을과 남이면 중심마을로 되어 있던 것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영동군 양산면으로 속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고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많아 옛날에는 대목으로 부르다 지금은 죽산리로 부른다. 

마을의 영봉인 마니산(摩尼山)은 동서로 1300M의 병풍을 두른 듯한 기암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천연적인 성(城)의 역할을 하여 적벽을 토대로 삼국시대에 동으로 100M 남으로 1000M의 성을 쌓았고 홍건적의 난 당시는 고려 공민왕이 난을 피하여 머물던 어류산(御留山)3정승과 6판서를 거느리고 국정을 논의하던 국사봉(國士峯)과 육판(六判) 날이 있고 왕자의 출생시 태를 봉안한 태봉 등이 마니산 주변의 명칭으로 애틋한 전설과 함께 지금까지 이어지며 마을 뒤 노고산성(老姑山城)은 백제시대 할머니들이 치마에 돌을 담아 운반하여 성(城)을 쌓았다하여 이름을 지었고, 노고산 8부 능선에 샘이 있는데 그 샘물은 약효가 있어 고질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이 샘물을 먹으면 병이 나았고 피부질환도 그 물을 바르면 씻은 듯 나았다하여 영천(靈泉)이라 부르며 샘이 있는 골짜기를 영천골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많은 명소를 지닌 우리마을은 예로부터 인간본성이 순박하여 웃어른을 공경하고 이웃간 우애를 나누는 선조의 정신을 이어오며 미풍양속을 계승 발전시켜 타 마을보다 잘사는 마을로 변하였고 출향인들도 각 지역에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하여 고향발전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미풍양속이 살아 숨쉬는 순박하고 아름답고 인정 많은 고장으로 후손에게 길이 남기고자 주민과 출향인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1993년 11월  일


죽산리 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