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글
안녕하세요?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저물고 있네요.
헤리티지는 강화도에 가 초등학교 학생들이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운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이 내용을 포스팅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2만9000여명의 소년병이 나라를 위해 싸웠답니다.
2만9603명. 국방부가 추산하는 6·25전쟁 참전 소년병 규모입니다. 소년병은 18세 미만의
어린 나이에 참전한 소년들입니다.
병역의무는 없으나 군번을 받아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로 3년 이상 복무했습니다.
북한군의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전쟁 초기에 많은 소년병이
동원됐지요. 일부 소년병은 “국가적 위기를 지켜만 볼 수는 없다”며 자원입대하기도 했지만,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입대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키가 크다’는 이유로 징집된 사례도
있었답니다. 소년병뿐만 아니라 소녀병 467명도 입대해 전선을 누볐습니다.
어찌 이뿐이리요. 인천의 재학생 2천 여명이 자원 입대, 군번도 없이 육군으로, 해군으로, 해병대로, 공군으로 휴전이 될 때까지; 일반병과 같이 북한군과 싸웠습니다. 약 200여 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장사리 상륙작전을 전개한 772명의 학도병들은 거의 전원이 전사했다고 하지요.
학도병들은 다부동 전투를 비롯해 인천상륙작전, 1·4후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거제 포로수용소 경비작전 등 6·25전쟁의 주요 전투와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573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일부는 국립 현충원에 잠들기도 했지만 일부 전사 청소년들은 시신도 없이 호국의 영령으로
산화했지요.
삼가 6.25 전쟁에서 산화한 소년병들의 명복을 빕니다.
◀선조들의 숨결 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