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dante 2021. 3. 4. 11:04

바로 어제 아침 신문에서 독일군 최초의 트랜스젠더 대대장 아나스타샤 비에팡

(Anastasia Biefang)에 관한 글을 읽으며 변희수 하사를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같은 신문에서 변 하사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를 보는 순간 비명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 나라의 후진적 사고와 체제가

또 한 사람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겁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나라가 부유해지면 한국이 곧 선진국 그룹 'G-7'에 들 거라고

떠드는 사람들과 매체들이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그 어느 나라보다 심한

한국이지만 국민 소득을 평균내면 부자 국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선진국'은 돈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은 'G-7'에 들더라도 '돈 많고 협량한 졸부'를 벗어나지 뭇할 겁니다.  

 

아나스타샤는 20년 동안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숨기다가 마흔 살이 되던 2015년에

상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이름을 바꾸고, 성 확정 수술을 받는 동안에도

계속 군인으로 생활했고, 작년까지 정보 기술 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트랜스젠더라고 고백하자 상관은 이 사실을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하자며

그녀에게 언제가 좋겠느냐고 물었고, 그녀가 아무 때나 좋다고 하자 “아, 그럼 조금 후에

열리는 정기회의에서 바로 얘기합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나스타샤 자신도 커밍아웃이 자신의 군 경력에 아무런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점이

놀라웠다고 하는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변희수 씨는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군 생활을 접어야 했으니까요.

 

아나스타샤의 조국은 선진국이지만 변희수 하사의 조국은 후진국입니다.

변희수 씨, 얼마나 힘들었나요?

참으로 미안합니다...

 

아래 링크 중 첫 번째를 클릭하면 변희수 하사의 비극에 관한 기사로,

두 번째 링크는 아나스타샤에 관한 기사로 연결됩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032052001&code=940202#csidxda2dfb26067d3cdbb61866b1f099c38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030300025&code=990100#csidxeecb2500caa8544a8fc27a5b7e7437e 

 
 
 

동행

dante 2021. 3. 3. 11:46

어제 마트에 가니 정육코너 앞에 사람이 유독 많았습니다.

오늘이 3월 3일 '삽겹살데이'라 삼겹살을 세일한다고 했습니다.

 

두 개에 천오백 원하는 '제주 무' 세일 코너에선 젊은 직원이

커다란 투명 비닐에 담긴 무를 매대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이만치 떨어져서 그이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는데 

여인 하나가 저를 밀치고 매대로 가더니 쏟아지는 무 중에서

큰 것을 고르느라 바빴습니다. 저렇게 하면 직원이 일하는 데도

방해가 되고 자기도 위험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름 붙은 날과 행사가 많아지며 하루 지난 과거부터

여러 해 지난 과거까지 기억돼야 할 날들과 기억돼야 할 사람들은

빠르게 잊히고, 무엇이 중요한가를 고민하는 일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과 고민 없이는 나아감과 나아짐 또한 없으니 

삽겹살을 먹을 땐 먹더라도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오늘 아침 '묘소', 즉 '불멸의 기억을 위한 곳'에 대한 글을 보았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지미 스트레인의 피아노 곡

'March'를 들을 수 있습니다. 'March'는 3월이자 '행진'...

3월이 가기 전에 모란공원에 가고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VvE-JDbv7g

 

[조운찬 칼럼]‘노동운동의 성지’ 모란공원

 

이름 때문일까. 모란공원 하면 봄이 느껴진다. 지난 주말, 그곳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전태일 열사의 무덤에 햇살이 내리고, ‘노동해방’ 머리띠를 두른 흉상에도 봄볕이 드리운다. 바로 옆은 지난달 15일 세상을 뜬 백기완 선생의 묘소다. 뗏장 사이로 붉은 흙이 드러난 봉분 앞에 프리지어·국화 꽃송이가 수북하다. 그 뒤쪽은 이소선 여사의 무덤이다. 그는 생애 전반은 전태일의 엄마로 살았지만, 후반부는 아들의 유지대로 ‘노동자의 어머니’로 헌신했다. 열사의 묘 오른쪽 뒤편에는 3년 전 산재로 숨진 김용균 노동자가 잠들어 있다. 전태일, 이소선, 백기완, 김용균.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네 사람이 반경 20m의 한 묘역에서 영면 중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백기완 선생이 전태일 열사와 나란히 묻힌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재야인사, 통일꾼, 시인, 민중사상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선생에게 가장 어울리는 호칭은 역시 ‘노동자의 벗’이다. 특히 노동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20년’은 선생의 화양연화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용산 철거민 투쟁,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크레인 농성, 쌍용자동차 복직 투쟁 등 2000년 이후 노동운동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선생은 파업현장과 농성장을 돌며 ‘정리해고 중단하라’ ‘노동자를 죽이지 말라’고 외쳤다.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에는 영결식과 추도식장을 찾아 유족과 동료들을 위로했다. 노동 열사들이 묻힌 모란공원도 숱하게 다녔다. 공원 내 노동자 무덤 곳곳에는 백기완 선생의 글귀를 새긴 빗돌이 세워져 있다.

 

‘너/ 어디서건 눈을/ 부라려/ 해방의 역사를 빚고 있구나/ 용균아’(김용균), ‘종배야/ 날마다 먼동이 트거들랑/ 역사와 함께 일어나거라’(김종배)…. 선생은 ‘노동해방’을 마지막 글귀로 남길 정도로 노동자의 편에서 싸웠다.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의 묘 옆자리는 50년간 비어 있었다. 공원묘지가 만장이 돼 저마다 숨어 있는 묫자리를 찾아나섰을 때마다 누구한테도 내어주지 않았던 공간이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은 웬만한 사람의 접근을 허용치 않을 만큼 무겁다. 그런데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시자 이구동성으로 그 빈자리를 지목했다. 열사가 선생을 위해 예비해둔 것 같았다. ‘노동자의 대표’ 전태일과 ‘노동자의 벗’ 백기완은 그렇게 죽어서 만났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은 1969년 조성된 사설공원묘지다. 100만평의 야산 전체가 묘지공원인 이곳이 특별한 것은 민주열사 묘역이 있기 때문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모란공원에 안장된 이후 그의 묘 주변으로 민주인사, 노동자의 무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열사들의 무덤이 골짜기를 채우면서 자연스레 ‘민족민주열사 묘역’이 만들어졌다. 현재 이 묘역에는 민족민주열사 150여명이 안치돼 있다. 이 가운데에는 김근태·노회찬 의원과 같은 정치인, 문익환·문동환·계훈제 선생과 같은 재야인사, 독재권력에 희생된 박종철·한희철·우종원 등 대학생도 적지 않지만 가장 많은 계층은 노동자들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물꼬를 튼 전태일에서 김진수·김경숙·박영진·김말룡·김용균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묻힌 노동운동가와 열사는 근 30명에 달한다. 광주 5·18묘지가 ‘민주화의 성지’라면 모란공원은 ‘노동운동의 성지’다.

 

노동 열사들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덤이 많아서가 아니다. 비문을 읽으며 망자들의 고통스러운 삶, 안타까운 죽음을 상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15세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죽어간 문송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원진레이온 노동자 김봉환,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비정규직 김용균은 산재의 참혹함을 일깨운다. 민주노조 운동이 한창인 1980~1990년대 사측과 공권력의 노조 와해에 맞서 목숨을 끊은 젊은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힘들지만, 참배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이날에도 가족 또는 친구들로 보이는 몇 팀이 삼삼오오 무덤에 조화를 바치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한국의 성장과 번영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이뤄졌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지만 노동 조건은 그에 걸맞지 않게 열악하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는 여전하고 산재로 매일 6명이 스러져 간다. 대다수 비정규직은 노조 할 권리조차 없다. 가파른 노동의 현실 속에서 모란공원을 찾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이 땅의 노동상황이 열사들을 깨우기 때문이다. 비석 곳곳에 걸린 ‘노동해방’ ‘단결투쟁’ 리본들이 이를 말해준다. 모란공원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하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끌어주는 연대의 장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030300045&code=990100#csidx10a73278169620da5a8a93853533952 

 
 
 

동행

dante 2021. 2. 28. 11:46

아메리칸 블루 화분을 옮긴 후 허리가 고장나긴 했지만

고장은 제 탓이지 꽃 탓이 아닙니다. 

 

회색 하늘에 아랑곳하지 않고 색색으로 피어 세상을 밝히는

꽃들은 한 송이 한 송이 다 등대입니다.

 

겨울을 이기고 봄으로 가는 꽃들이 특히 아름다운 것처럼

꽃집들도 2, 3월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거리에 꽃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컴컴했을까요?

 

아래에 일러스트포잇(illustpoet)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실린 꽃집 얘기를 옮겨둡니다.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시시한 그림일기'로 연결됩니다.

 

 

시 한편 그림 한장

꽃집 - 박연준

 illustpoet  2018. 1. 2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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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색연필




꽃집
                 박연준

빛이 빛에게
수분이 수분에게
가시가 가시에게
흙이 흙에게
조그마한 삽이 조그마한 삽에게
기대어 잔다

어떤 따뜻한 열기가 신발도 없이
살금살금 내려 앉고
이따금 문 위에 매달린 종이 찌르릉 소리를 내고
찬 기운을 구두코에 묻혀 들어온 사내가
잠든 장미 열 송이를 사가고
(열 송이의 잠이 부드럽게 증발하고)
달큼한 잠에 빠진 푸른 잎사귀들
깰까 말까, 따뜻하게 고민하는
길모퉁이 꽃집
밖에는 신호등이 깜빡깜빡





 



겨울 실내에 노랑빛이 화사하다.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더 이쁜 주인공 버전이라 할만한 지인이, 2년여전 개인전 전시를 축하하며 선물한 노란 호접란이 잊을만하면 꽃을 피워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종을 닮은 봉오리들이 하나, 둘 열리며 기운 없던 내게, 노랑 나비들이 열지어 박수를 보내는 모습으로 꽃잎이 벌어지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쁜 마음으로 꽃집에서 꽃을 사는 사람은 없지 싶다.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꽃을 고르는 마음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당분간은 꽃집 들릴일 없으니 어여쁜 이 호접란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몸이 편찮으심 기쁨이 절반으로.....
요즘엔 부쩍 기본소득에 심취해서 공부하면서 전파하고 있씁니다.무한 경쟁의 천민자본주의를 탈피해 따스한 이해관계자본주의로 이전하는데 후륭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봄을 환화는 꽃들과 함께 김시인님의 건강도 속히 되찾으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