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dante 2021. 10. 24. 08:40

새 옷을 산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옷을 사지 않는 이유는 첫째, 옷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옷의 수는 나이에 비례합니다.

일 년에 하나만 사도 30년이면 30벌이 되니까요.

 

둘째는 외출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다닐 때나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외출을 별로 하지 않으니 새 옷이 필요없습니다. 

 

셋째는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위의 두 가지에 해당되는 경우에조차

계속 옷을 사는 일이 흔합니다. 돈이 많으면 낭비도 많으니

적당한 가난은 축복입니다.

 

'옷은 나이가 입는다'는 말도 있지만, 예전에 자주 입던 옷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아파트 주민들이 헌 옷을 내놓는

헌 옷 수거함에 넣어야 합니다.

 

때로는 헌 옷 수거함에 있는 옷을 가져다 입기도 합니다.

남이 오래 입은 옷도 처음 입는 제게는 새 옷입니다.

동생이나 친구를 만날 때 새로 구한 헌 옷을 입고 갔다가

멋지다는 칭찬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헌 옷 수거함은

준 사람을 알 수 없는 선물이 가득한 보물단지입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 버린 옷을 입었다가 그 버린 사람을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덕택에 잘 입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겠다고 하면 정말? 하는 듯한 표정을 보입니다.

 

어제 신문에서 헌 옷을 입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쓴 글을 보았습니다. 아싸!

 

여적

친환경 청바지

안호기 논설위원

 

글로벌 호텔 체인 힐튼의 상속자이자 할리우드 스타인 패리스 힐튼은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념 배우로 불리는 <해리 포터> 주인공 에마 왓슨은 ‘옷을 (입는 게 아니라) 갖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소비행태가 일종의 도벽 비슷하다’고 힐튼을 비판한 바 있다. 그랬던 힐튼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백’한다며 “의식있는 소비자가 되기 위해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썼다. “지금 입은 옷은 중고다. 새 옷 대신 중고를 구입하면 의류 탄소 발자국을 82%까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힐튼의 결심을 이끈 것은 미국의 온라인 중고품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의 캠페인이었다. 스레드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쇼핑 급증에 따른 낭비를 줄이기 위해 ‘지속 가능한 옷장 만들기 7단계 챌린지’를 제안하고 있다. 중고 옷 입기, 빌려 입기, 친환경 브랜드 이용, 세탁물 공기 중 건조, 입었던 옷 다시 착용, 수선해 입기, 버리는 대신 주거나 재판매하기 등이다. 스레드업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의류·신발 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의 8%를 차지한다. 의류의 재활용 비율은 1% 미만이고, 소비 후 73%가 매립 또는 소각된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2050년 전 세계 탄소 예산의 26% 이상이 섬유산업에 쓰이게 된다.

 

청바지는 지구환경을 오염시키는 대표적인 의류로 꼽힌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청바지 한 벌 생산에 물 7000ℓ가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염색과 탈색, 워싱 등을 거치면서 많은 물과 화학약품이 쓰인다. 여기에 원재료인 목화솜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물까지 더하면 사용량은 훨씬 더 많다. 청바지는 또 목화에서 실, 원단, 제품으로 가공 및 운송되는 과정에서 한 벌당 이산화탄소 32.5㎏을 발생시킨다. 어린 소나무 12그루를 심어야 탄소중립이 가능해진다.

 

이랜드의 의류 브랜드 ‘스파오’가 2023년까지 청바지 원단인 데님 제품 전체를 친환경 소재로 생산한다고 22일 밝혔다. 재활용 또는 친환경 면사를 재료로 쓰고, 가공 과정에서도 물과 약품 사용을 최소화한다고 한다. 친환경 청바지가 나온다니 반갑지만 한편으론 곤혹스럽다. 새 옷 구매는 지구 오염을 가속화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yeojeok/article/202110222028005#csidx8fee7da2f177a61998e3b5f46661618 

지금의 시대정신은 기후위기 탈출입니다. 몸이 정신을 규제 하듯이 자연과학이 사회과학을 규정하니 그렇습니다,새상은 분면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지도자란 사람들도 의식이 존재를 결정한다고 착각하고 있어 진단도 처방도 엉터리니 답답합니다.아무리 훌륭한 지식을 가졌어도 육체가 망가지면 끝이듯이 사회적 부와 고고한 문화를 갖췄어도 지구가 망가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지연에 순응해야는데 자연을 개발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교만이 아직도 펄펄 살아 있으니 걱정입니다.

 
 
 

동행

dante 2021. 10. 21. 09:13

오래 전 애인은 책을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책 읽기처럼 재미있는 일을 즐기지 않는 게 궁금해

어느 날 그에게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반문했습니다. 왜 그리 책을 읽느냐고.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하니 그는 자신은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다며, '책은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책이 어떤 책이냐 물으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고

했습니다. 불교 신자도 아닌 사람이 <싯다르타>라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문고판을 빌려주어

저도 그 책을 읽었지만, 왜 그 책 하나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십년쯤 후 다시 그 책을 읽는데 참 좋았습니다.

왜 그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아니, 꼭 그 책이 아니어도,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책이 재미있고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책 읽는 사람이 읽지 않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거나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죽어라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엔 지식 자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식으로 먹고 사는 것은 몸이나 기술로 먹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중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 또한 많으니 우습습니다.

아는 것을 일상을 통해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요.

 

어제 제가 '응급실'이라고 부르는 카페 에스페란자 로우스터스에서

바로 그런 지식을 경계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사랑 없는 지식은 사람을 파괴한다." (p. 152, <크리슈나무르티>, 고요아침)

 

지금 우리의 주변엔 '사랑 없는 지식'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날로 시끄러우니 안타깝습니다... 

 

지론에 동의하면서 '사랑' 대신 '분노'를 대입하고 싶습니다 "분노 없는 지식은 사람을 파괴한다" 진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방해꾼들을 향한 분노가 발산 되겠죠? 그래도 사랑 보다는 사랑을 가로막는 사회적 적폐들을 향한 분노가 먼저가 아닌가 합니다.다독자일수록 구조악에 대해서 잘 알테니까요!

 
 
 

나의 이야기

dante 2021. 10. 19. 08:43

이른 아침 산책길

마스크 위 안경에 자꾸 김이 서려

걷다 멈추고 걷다 멈춰야 했습니다.

 

시야가 흐려지니 걷는 게 영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보도블럭 중엔

잘못 놓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기분이 나빠지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동쪽에 낮게 뜬 해를 보았습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일까요

해는 밝은데 젖어 보였습니다.

슬프지만 명랑한 아이나 노인처럼.

 

가던 길 멈춰 서서 한참 올려다보니

해가 느릿느릿 나뭇가지 사이로 숨었다 나오고

다시 숨었다가 나왔습니다.

숨바꼭질 덕에 김 서린 안경 뒤의 눈과

마스크 속 입이 웃었습니다.

 

흰색과 검은 색 사이

모든 빛을 끌어안은 듯한 얼굴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네게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알아?'

 

오늘도 또

부끄러운 하루의 시작입니다.

 

30도를 오르 내리던 시월이 급전직하 4도로 곤두박질하며 미처 준비 못한 파란 잎들을 뜨거운 물에 데친 것처럼 삶아버렸습니다.기세 좋게 뻗어가던 호박넝쿨이 처참하게 일그러졌습니다.더분에 누렇게 잘 익은 호박들이 위세를 드러내며 자랑질입니다.잘 익은 벼들은 추수를 재촉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