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10. 5. 13. 10:15

갱년기(更年期)의 '갱(更)'을 옥편에서 찾으려면 '갱'이 아닌 '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고칠 경'입니다. 그 '경(更)'을 '갱'으로 읽을 때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고칠 경'에서 '다시 갱'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갱년기'는 인생을 '고치는' 시기가 아니라 '다시' 살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제대로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면 '다시' 살기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압니다. 그건 바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그것에 따라, 혹은 그것을 위해' 산다는 뜻입니다.

 

'갱년기'라는 말이 들어가는 말은 거의 우울합니다. '갱년기 우울증,' '갱년기 증상,' '갱년기 여성,' '남성 갱년기'... 이러한 표현 뒤에는 으레 이 상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처방이 따릅니다. 호르몬제를 먹는 사람, 봉사 활동에 나서는 사람, 명상과 요가에서 답을 찾는 사람, 춤이나 에어로빅을 배우는 사람, 골프를 배우는 사람, 남녀상열지사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

 

약한 사람은 더 심하게 갱년기 증세로 고생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몸이 자꾸 고장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은 마음이 길을 잃거나 뒷걸음질을 칩니다. 물론 몸과 마음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몸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마음의 퇴행에도 가속도가 붙기 쉽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을 굳건히 지키거나 오히려 고양시키는 사람은 참으로 훌륭하지만 아주 드뭅니다.

 

십년, 이십년, 삼십년, 사십년... 이어져 오던 우정이 갱년기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 몸과 마음의 변화에 있습니다.  한번 아프고 괴로울 때마다 어떻게 해야 아프지 않을까 자신의 복리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 때부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아기 시절, 엄마가 힘들거나 말거나 배가 고프면 울던 그 시절의 정신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의 정신 상태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흔한 갱년기 증세입니다.

 

자신보다 친구들을 먼저 생각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딸의 진로를 놓고 상담을 청하는가 하면, 교양있는 친구 속에서 거칠고 공격적인 사람이 튀어 나옵니다. 겸손하던 친구가 눈을 내리깔고 세상을 보는가 하면, 머리가 좋아 감탄을 자아내던 친구가 상식조차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빈 자리를 보고 뛰어가 앉는 것이나, 식당이나 찻집에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드는 건 약과입니다. 나라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문화에 투자하는 예산이 제일 먼저 깎이듯이,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면 제일 먼저 염치와 예의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갱년 중이다 보니 친구들 중에도 비슷한 증세로 고생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마음과 몸을 붙잡아 한 발 한 발 나아가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다!'며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화는 좋지만 그 변화가 부디 '개악' 아닌 '개선'이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제일 먼저 집어던지는 것이 예의가 아니길 빕니다.  눈을 들면 온통 '개악'투성이인 서울에서 친구의 개악까지 보고 싶진 않으니까요.

좋게 변하는 갱년기. 그것은 자신의 환경이 좌우 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환경도 크게 좌우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