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dante 2021. 6. 28. 08:56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껏 스스로 마음을 육신의 노예로 부렸으니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홀로 슬퍼하여 서러워하는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이미 깨달았으니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일은 바르게 할 수 있음도 알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 그리 멀지 않으니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잘못된 지난 일들 이제부터 바르게 하리

 

舟遙遙以輕颺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고향까지 남은 길을 물으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희미한 새벽빛에 한숨 쉬네

乃瞻衡宇 (내첨형우) 저 멀리 우리 집 보이니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뛰어가네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자식들이 문에서 나를 맞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길에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이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자식 손 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하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스스로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마냥 만족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작은 집이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원림은 매일 거닐어도 즐겁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은 있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늘 닫아두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 짚고 다니다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곳을 바라보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아네
影翳翳以將入 (영예예이장입) 뉘엿뉘엿 해는 지려 하고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홀로 서성이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사귐도 어울림도 이젠 모두 끊으리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수레를 몰고 나간들 무엇을 구하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즐겁게 정담 나누며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 타고 책 읽으니 근심이 사라지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찾아와 봄이 왔다고 알려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서쪽 밭에 나가 할 일이 생겼네

 

或命巾車 (혹명건차) 때로는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때로는 외로운 조각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고 굽이진 골짜기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물오른 나무들은 싱싱하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르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때를 만난 만물은 부러우나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은 휴식할 때가 되었음을 느끼네

 

已矣乎 (이의호) 아!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머물 날 그 얼마이리오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가고 머무는 것을 섭리에 맡기지 않고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새삼 바쁘게 어디 그리 서둘러 가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부귀영화는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신선 사는 곳에 다시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시절 생각하며 홀로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지팡이 세워 두고 김도 매며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어보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도 지으며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생명 다해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리

이렇게 여유 만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이 돌아갈 본향을 알고 돌아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