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2. 5. 20. 08:03

홍제천변을 잉크빛으로 물들인 수레국화들을 보면

아주 작은 몸이 되어 그 사이에 들어가 서고 싶습니다.

수레국화들 사이에서 시치미 떼고 그들과 함께

바람을 그리고 싶습니다.

 

함께 걷던 친구가 풀밭에 떨어진 수레국화 한 송이를

집어 줍니다. "보셨지요? 꺾은 게 아니고 떨어진 걸

주운 거예요." 결벽증도 때로는 사랑스럽습니다.

 

가장 작은 병도 수레국화 한 송이에겐 너무 큰집.

하얀 휴지 한 장을 접어 넣고 물을 담습니다.

휴지를 딛고 선 수레국화가 제법 꼿꼿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어찌 그리 아름다우신가'

탄식합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저 선명한

잉크 꽃잎이 마냥 지속될 것만 같습니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느 날 문득 꽃잎의 끝이

하얗게 바래기 시작합니다. 하양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

모든 꽃잎을 물들이고 어떤 꽃잎들은 말라 오그라집니다.

이젠 수레국화가 아니고 한때 수레국화였던 어떤 것입니다.

 

제가 수레국화인 걸 깨달은 건 꽃잎 끝이 하얗게 바래는 걸

보았을 때입니다. 그와 제가 바래는 방식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한 적 없이 바래기만 하는 게 부끄럽지만

이미 바램의 과정에 들어섰으니 하는 수 없습니다.

 

최선의 달성이 목표가 되는 시절이 있는가 하면

최악을 피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시절도 있습니다.

지금 제 목표는 가능한 한 덜 추하게 바래가는 것입니다.

수레국화 선생을 제 앞에 모셔다 준 친구와

함께 바람을 그렸던 친구들... 그들의 사랑이 헛되지 않게

가능한 한 덜 추하게 바래고 싶습니다. 

 

김택근 샘의 논설에서처럼 죽늠에 길을 물어보시나요? 삶의 몸부림이 결국 죽음을 향한 진군으로 귀결되지만 그래도 가끔씩 착각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도 생을 윤택케 하는 동기(?) 부여를 하지 않을까요? 수레국화의 파란빛으로 흰빛을 덮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