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dante 2021. 2. 28. 11:46

아메리칸 블루 화분을 옮긴 후 허리가 고장나긴 했지만

고장은 제 탓이지 꽃 탓이 아닙니다. 

 

회색 하늘에 아랑곳하지 않고 색색으로 피어 세상을 밝히는

꽃들은 한 송이 한 송이 다 등대입니다.

 

겨울을 이기고 봄으로 가는 꽃들이 특히 아름다운 것처럼

꽃집들도 2, 3월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거리에 꽃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컴컴했을까요?

 

아래에 일러스트포잇(illustpoet)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실린 꽃집 얘기를 옮겨둡니다.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시시한 그림일기'로 연결됩니다.

 

 

시 한편 그림 한장

꽃집 - 박연준

 illustpoet  2018. 1. 2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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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색연필




꽃집
                 박연준

빛이 빛에게
수분이 수분에게
가시가 가시에게
흙이 흙에게
조그마한 삽이 조그마한 삽에게
기대어 잔다

어떤 따뜻한 열기가 신발도 없이
살금살금 내려 앉고
이따금 문 위에 매달린 종이 찌르릉 소리를 내고
찬 기운을 구두코에 묻혀 들어온 사내가
잠든 장미 열 송이를 사가고
(열 송이의 잠이 부드럽게 증발하고)
달큼한 잠에 빠진 푸른 잎사귀들
깰까 말까, 따뜻하게 고민하는
길모퉁이 꽃집
밖에는 신호등이 깜빡깜빡





 



겨울 실내에 노랑빛이 화사하다.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더 이쁜 주인공 버전이라 할만한 지인이, 2년여전 개인전 전시를 축하하며 선물한 노란 호접란이 잊을만하면 꽃을 피워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종을 닮은 봉오리들이 하나, 둘 열리며 기운 없던 내게, 노랑 나비들이 열지어 박수를 보내는 모습으로 꽃잎이 벌어지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쁜 마음으로 꽃집에서 꽃을 사는 사람은 없지 싶다.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꽃을 고르는 마음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당분간은 꽃집 들릴일 없으니 어여쁜 이 호접란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몸이 편찮으심 기쁨이 절반으로.....
요즘엔 부쩍 기본소득에 심취해서 공부하면서 전파하고 있씁니다.무한 경쟁의 천민자본주의를 탈피해 따스한 이해관계자본주의로 이전하는데 후륭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봄을 환화는 꽃들과 함께 김시인님의 건강도 속히 되찾으시길 소원합니다.

 
 
 

나의 이야기

dante 2021. 2. 24. 17:08

허리를 삐끗해 자세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낮엔 길에 나가 꼿꼿이 걸어보려 애씁니다.

텅 빈 머리로 걷다 보면 가끔

사소한 풍경이 옛일을 불러냅니다. 

 

가끔... 참 아픈 단어입니다.

제 한영시집 <숲 Forest>엔 '가끔'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프랑스에 사는 로라 망소 (Laura Manseau)씨가 좋아하는 시...

 

 

 

가끔

 

가끔 생각합니다

마음에 있으면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또 가끔 생각합니다

마음에 있어도

한 번은 보아야 한다고

 

 

From Time to Time

 

Sometimes I think

it doesn't matter if I see you or not

as long as you are on my mind.

 

Other times I think

I have to see you at least once,

even if you are on my mind always.

 

 

 

 

 

 

김시인님 정신은 최상이신데 몸이 자주 편첞으시니 걱정입니다.건강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싱식적으론 산에 오를 힘만 있으면 못 나을 병이 없답니다. 경사가 낮은 산에 정기적으로 오르세요.지난번 우슬환 효능 있던가요?
선생님,

봄이라 더욱 바쁘실 텐데...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받은 복이 많으니 가끔 아프기라도 해야 박복한 사람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거의 나았으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보내주신 우슬환, 감사히 먹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김 흥숙 드림

 
 
 

동행

dante 2021. 2. 21. 11:48

나를, 적어도 내 몸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알지 못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허리가 고정 나 종일 누워 있다 일어났습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신 백기완 선생님을 생각하니

부끄러웠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지팡이 삼아 죽는 날까지

살아가겠습니다. 부끄러움에서 해방되는 그날까지.

 

김택근의 묵언]백기완 선생께서 묻고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하늘이 큰일을 맡길 때에는 그 몸을 수고롭게 하거늘 필시 천명(天命)을 받음일 것이다. 붓을 들면 비와 바람이 숨을 죽였지만 길 위에 서야 했다. 길에서는 묘수와 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높고 낮음이 없다. 백기완 선생. 그는 평생을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 서러운 곳에 있었다. 고문을 당해 육신이 으스러졌어도 포효했다.

김택근 시인·작가

 

시위 현장마다 선생의 백발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우리 시대 아주 익숙한 삽화였다. 많은 이들이 영웅적 서사로 선생의 투쟁을 감싸지만 거리의 투사는 지독하게 고독했을 것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을 떨쳐낼 수 있지만 무작정 저항하는 맨 용기였다면 한시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스스로에게 비겁하지 않아야 했다. 날마다 자신의 둥지를 부수고 퇴로를 끊었다. 선생은 스스로를 다스렸기에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비로소 벼랑 끝에서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불의에 맞서는 ‘장산곶매’가 되었다.

 

길가의 꽃과 나무는 그대로 의젓했지만 해마다 사람들 얼굴은 달라졌다. 어느 날 둘러보니 구호가 어설프고 대열이 성글었다. 한평생 함께 나가자던 맹세는 여전히 뜨거웠지만 길 위의 동지들은 보이지 않았다. 비단 옷을 걸친 가슴들은 시나브로 식어갔다. 세력을 잃었으니 ‘재야’라는 말도 희미해졌다. 그럴수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현장을 놔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광장에 남아 함께 울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혁명의 시간은 짧았고 끝내 울음에 피가 섞였다.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또 그를 미워했던 사람조차도 불현듯 광장을 떠올렸다. 하얀 두루마기 하나로도 광장을 가득 채웠는데 그가 떠나갔구나. 선생과 동행했던 한 시대가 저물었구나. 그때는 마냥 순수했구나. 이제 누가 있어 저 광장에서 노래하고 춤출 것인가. 선생은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다. 떠난 자리가 이리 클 줄은 몰랐다. 추워진 후에야 송백(松柏)이 뒤에 시드는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홀로 푸른 사람이었다.

 

선생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쓴 글씨가 “김진숙 힘내라”였다. 죽을힘으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가 가슴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인간을 진정으로 껴안았던 사랑의 문신이었다.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는 일, 억울하게 해고되는 일은 없게 하자는 마지막 당부였다. 한때는 동지였던, 지금도 분단의 조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과거의 동지들에게 남긴 유언이었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에 머문 병상도 현장이었다.

 

“김진숙 힘내라”는 여섯 글자를 받쳐 들어야만 하는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차라리 뭉쳐서 투쟁했지만, 정권이 바뀌고 주변 사람들이 정권 인사가 되자 더 어렵고 외로웠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계셨던 분이 백 선생님이었다.”(경향신문) 그는 암투병 중임에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와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그의 외침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힘줄이 보일 만큼 투명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 발 한 발 천리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 동안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버리는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이 나라 민주주의입니다.”

 

앞서간 백기완 선생이 산 자들에게 묻고 있다. 새날을 열겠다는 초심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당신들이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있다. 미움보다 무서운 것이 있으니 무관심이다. 김진숙의 마음 하나 얻지 못하면서 어찌 하늘을 우러러볼 것인가.

 

삼가 선생의 야윈 볼에 흐르던 눈물을 기억한다. 눈물의 대통령 백기완, 아주 좋은 봄날 선생의 무덤가에는 그 눈물을 먹은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것은 지조(志操)의 문장(文章)일 것이다. 그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 의관(衣冠)의 도적은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200300005&code=990100#csidxcf1efd32c6b4556b98623ac91fe3090 

일제치하에서 상당한 지위에 오른 것이 자랑이 아니 듯 미제치하에서 어렵게 사신 백선생님이야말로 바르게 사신 분이 확실합니다! 지금의 기득권들 일제치하의 한 자리와 동일함을 깨닫고 투쟁의 대열에 내려서시라!
김시인님의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