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2. 8. 10. 08:33

오른쪽 눈의 속눈썹이 눈꺼풀을 찔러 상처가 났습니다.

나이들며 눈꺼풀이 내려오는데다 더위로 인해 피부가 거의 항상

젖어 있으니 속눈썹처럼 약한 자극에도 상처가 나는 것이겠지요.

쌍꺼풀의 겹진 부분이라 남의 눈엔 잘 보이지 않지만 쓰라립니다.

 

속눈썹 하면 요섭이 떠오릅니다. 경향신문 정치부 정요섭 기자...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던 그와 저는 1980년대 중반 외무부(지금의 외교부)

출입기자로 만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전두환 정권에게 언론의 자유를 빼앗긴

불행한 기자들이었고, 저는 당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8층에 있던

외무부 기자실에 출입하던 유일한 여기자였습니다. 요섭과 저는 가끔

8층 창가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읊조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제가 기자실의 큰 테이블에 앉아 뭔가를 읽는데

제 옆에 서 있던 요섭이 "와, 김 선배 손눈썹 되게 길다!" 외치듯 말했고

저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귀까지 빨개졌습니다. 평소에 저를 '무섭다'고 하던

동료 기자들이 "와, 김흥숙 얼굴 빨개졌다!" "요즘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있나?"

놀리며 좋아했습니다.

 

1987년 6월, 제가 3년 동안 출입했던 기자실을 떠날 때 그 친구들이 '惜別 (석별)'이라는

제목의 기념패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거기엔 그들 각자가 김흥숙을 정의한 문장이

하나씩, 모두 열 개의 글귀가 있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한 건 '새벽, 계곡의 시내 같은 당신'이라는 요섭의 글이었습니다. 제가 그 글을 좋아했던 건 '새벽, 계곡의 시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였을 겁니다.  

 

당시 경향신문은 전두환 정권의 나팔수로 비판받았고 요섭은 출범 준비 중이던

한겨레신문으로 옮기고 싶어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경향이나 한겨레나 어디나

한국의 신문 방송이 진짜 '언론'으로 작동 중인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불온한 정부와 싸우던

기자들은 언론인의 책무를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벽, 계곡의 시내'처럼 맑던 요섭에게 친정부적 신문사의 기자 노릇은 참으로 괴로웠을 겁니다.

 

요섭은 겨우 서른이던 1988년 3월 1일 새벽 교통사고로 숨졌지만 저는 그를 죽인 건 사고가 아니라 사회이고 그의 '맑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요섭... 그의 긴 속눈썹이 보고 싶습니다.

'새벽,계곡의 시내'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명의 허준도 세벽에 개울물을 길러 약을 다렸다죠? 김 시인님의 심성이 새벽의 개울물 같아 주위를 맑게 하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