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1. 2. 24. 17:08

허리를 삐끗해 자세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낮엔 길에 나가 꼿꼿이 걸어보려 애씁니다.

텅 빈 머리로 걷다 보면 가끔

사소한 풍경이 옛일을 불러냅니다. 

 

가끔... 참 아픈 단어입니다.

제 한영시집 <숲 Forest>엔 '가끔'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프랑스에 사는 로라 망소 (Laura Manseau)씨가 좋아하는 시...

 

 

 

가끔

 

가끔 생각합니다

마음에 있으면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또 가끔 생각합니다

마음에 있어도

한 번은 보아야 한다고

 

 

From Time to Time

 

Sometimes I think

it doesn't matter if I see you or not

as long as you are on my mind.

 

Other times I think

I have to see you at least once,

even if you are on my mind always.

 

 

 

 

 

 

김시인님 정신은 최상이신데 몸이 자주 편첞으시니 걱정입니다.건강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싱식적으론 산에 오를 힘만 있으면 못 나을 병이 없답니다. 경사가 낮은 산에 정기적으로 오르세요.지난번 우슬환 효능 있던가요?

 
 
 

나의 이야기

dante 2021. 2. 18. 18:51

엊그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강남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지하철엔 사람이 많았습니다.

늘 집 동네에 머무는 저는 한낮에 지하철 승객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한참 만에 보는 객차 안 풍경은 예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이나 후줄근한 차림의 사람이나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습니다.

 

일곱 명이 앉은 자리는 두꺼운 겨울 파카로 인해

여덟 명이나 아홉 명이 앉은 듯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다들 그렇게 끼어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만삭의 임신부나 아흔 노인이 앞에 와 선다 해도

자리를 내줄 순 없어 보였습니다. 앉은 사람들의 눈이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앞에 선 사람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양재역 부근 프랜차이즈 카페의 손님들도

여느 카페에서 보았던 손님들처럼 시끄러웠습니다.

지하철에서나 카페에서나 마스크를 썼을 뿐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진 게 없어보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 역 부근 노점에서 귤 한 상자를

샀습니다. 집에 와서 옮겨 담으며 보니 상한 귤이

열네 개나 되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에선 어린 아이들을

죽인 어른들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가끔 산책길에서, 정물처럼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듯한 고양이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눈이

‘조금도 부럽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1809-1892)의

시 중에도 그런 제목의 시 -- I Envy Not in Any Moods —가 있지만,

내용은 오늘날 고양이들이 눈으로 하는 말과 전혀 다릅니다.

19세기는 오늘에 비해 훨씬 인간적이고 낭만적이었을 테니까요.

 

사랑하지 않은 것보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좋듯이 펜데믹 없는 세상보다 겪고난 세상이 진일보했음 좋겠습니다
코로나의 순기능 중 하나는 평소에 부러웠던 대상이 많이 격하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치관의 변혁이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지켜 볼 일입니다~~^

 
 
 

나의 이야기

dante 2021. 2. 2. 11:22

 

내일은 한 해의 첫 절기 '입춘.'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갈색 나뭇가지마다 푸른 피가 돌고 사람들은 검은 옷과 털모자를

벗겠지만, 마스크는 아마도 오랫동안 피부의 일부로 남을 겁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마스크를 벗으려면 마스크를 쓰게 한 원인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 원인은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우리 사회에, 우리 지구촌에

남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반성'의 부재 혹은 부족이지요.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유통되면서 국민 중 누구에게 먼저

접종할 것인가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선거가 코앞이니

정치적 저울질도 하겠지요.

 

그러나 접종의 순서는 명약관화합니다.

 

코로나19는 그간의 생활 행태가 초래한 바이러스이니

잘못된 행태로 지구촌을 황폐화시키고 오염시킨

나이든 사람들이 더 잘 감염되고 사망하는 게 당연합니다.  

 

아기들과 어린이들은 코로나19에 강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코로나19에 취약하지만, 어린 세대 먼저 접종해야 합니다.

 

일년 넘게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병원 안팎의 의료 종사자들과

어린 세대와 젊은 세대들 모두에게 접종한 다음에도 백신이 남으면

그때 노인들에게 접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그래야

우리 노인들의 부끄러움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짝짝짝!
저도 노인의 한 사람으로 김시인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노인들이 악착같았던 것은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함도 포함되오니 심하게 자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다만 무지해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대했던 결정적 실수에 대해선 책임을 저야죠. 스마트한 눈사람이 베란다의 꽃나무랑 함께 있어도 기어코 봄은 오고야 말텐데 그때까지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음 어쩌죠? 넘 숨죽어 있으니 다이나믹했던 지난 날이 많이 그립습니다, 북적대던 김포공항의 썰렁한 모습이 넘 을씨년스럽습니다. 획기적인 값싼 치료제가 어서 개발되었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