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dante 2021. 3. 7. 16:36

상황에 따라 생각나는 친구가 다르듯

기분에 따라 다른 책을 펼치게 됩니다.

 

제법 따끈한 봄볕 속을 걸은 후라 바다 생각이 난 걸까요?

<백경 (Moby-Dick)>이 눈에 들어옵니다.

 

166쪽 중간의 한 문단이 미소를 자아냄과 둥시에 질문을 던집니다.

"나의 예일대학은 무엇인가?'

 

"...만일 나 가운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장점이 있다고 하면

또 내가 정상적으로 야망을 품고 있는, 매우 작기는 하지만

고귀한 침묵의 세계에 있어서 어떤 명성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또 만일 앞으로 대체적으로 사람으로 했어야 할 것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임종시에 유언집행인, 아니 채무자가

나의 책상 속에서 어떤 귀중한 원고를 찾아낼 수 있다면, 나는

여기서 미리 이 모든 영광이 포경의 덕택임을 밝혀두겠다. 

포경선은 나의 예일대학이며 하버드대학이었던 셈이다." 

                -- <백경 1>, 신원문화사, 현영민 옮김

 
 
 

오늘의 문장

dante 2021. 1. 31. 11:17

호아... 2021년의 첫달도 오늘로 끝이 납니다.

한달 동안 제 안팎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동네에는 '임대'가 붙은 상점이 많아졌고

제 마음에선 어떤 이름들이 의미를 잃거나 사라졌으며

자꾸 눈과 비가 내려 지상의 낯을 씻었습니다.

 

새 달력을 달고 먹고사는 일에 매진하느라

새로운 생각을 하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은 죽은 날과 같으니

이제라도 생生에 숨을 불어 넣어야겠습니다.  

 

책꽂이에서 <역설의 논리학>이라는 책을 뽑아

목차를 훑어봅니다. 수학 얘기입니다.

처음 치른 대학 입학시험에서 수학은 0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이 잘된 일이지만

당시에는 실패가 부끄러웠습니다.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것보다

부끄러운 것은 수학에서 0점을 맞은 것이었고, 0점 맞은 것보다

부끄러운 건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집어든 수학책도 여전히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왜 플러스가 되는가?' 라는 제목에

매료되어 244쪽을 펼치니, '마이너스의 어려움'이라는 소제목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하나의 이름을 지울 때의 어려움 같은 것을

얘기하는가 하고 읽어보니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 중에 이해할 수 있는 문장 몇 개가 반갑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는 '8 빼기 10'을 알지 못했다고 하며

스탕달도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에 관련하여 자서전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마이너스의 양을 어떤 사람의 빚이라고 생각했을 때, 1만 프랑의

빚에 5백 프랑의 빚을 곱하면 , 그것이 어째서 5백만 프랑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게 되는가?'"

 

투르게네프의 이해 불능, 스탕달의 질문은 시대를 뛰어넘어 바로

저의 것입니다. 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가

왜 플러스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플러스보다 마이너스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끝없이 가볍게 하여 어느 날 문득

저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오르고 싶으니까요.

   

 

   

모든 학문의 기초가 인문학이라는 칼럼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학에도 해당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분이 계시면 이제라도 찬찬이 배워보고 싶습니다.말처럼 비우고 버리기가 쉬운가요.그럴려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얀디 그냥 희망 사항으로만,그렇지 않아도 코로나가 우리 모두를 감량시키고 있어 자천타천으로 말라가고 있으니......

 
 
 

오늘의 문장

dante 2021. 1. 14. 12:01

어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고 말을 하고 눈 녹은 길을 걷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심장이 멈춘 듯했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으려 하는 건 가끔 있는 일입니다.

한의사이신 황 선생님은 제 심장이 '태업'을 하려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심장에 녹이 슬었거나 때가 낀 거라고 생각합니다.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필요가 없는 소리를 듣고

갈 필요가 없는 곳들을 다니며 마음 쓸 필요가 없는 일들에

마음을 쓰는 바람에 녹이 슬고 때가 낀 것이지요.

가슴에 문이 있다면 그 문을 열고 서랍 속 물건을 꺼내듯

심장을 꺼내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싶습니다.

 

언제였던가, 다이 호우잉 (戴厚英)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보며

깊이 감동하고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이 호우잉은 그새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제 심장은 더욱 녹슬었습니다.

 

우연히 집어든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심장을 씻는 손 유에를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이 책을 번역하신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지

꼭 5년이 되는 날이네요.  심장이 필요없는 세계로 가신 두 분을 생각하며

다시 두 분의 문장을 읽습니다.

 

"나는 내 심장을 꺼내서 구석구석까지 조사해 보았다. 돌기된 부분에 한 군데

상처가 나서 심하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곳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수도꼭지로 갖고 가서 깨끗이 씻었다.

     '상처를 어떻게 하면 좋아?' 나는 물었다.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놔두면 자연히 낫게 돼.' 호 젠후의 심장이 대답했다. 나는 심장을 가슴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어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나는 싱글벙글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어때요? 나, 멋지요. 자, 당신 심장도

씻어 줄께요.' 나는 과도를 그에게 갖다 댔다.

그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뭐라구? 내게 심장이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거야? 당신은 인정도 없나?'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럼 당신의 심장은?...'

(하략) "

 

 

 

 

 

아, 김 시인님 그렇게 허약하심 어쩝니까.아무래도 양파를 의식적으로 많이 드셔얄 것 같습니다.양파는 피를 맑게 하니 피를 다루는 심장도 튼튼하게 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