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dante 2021. 10. 10. 08:30

작년 5월 서울셀렉션 김형근 대표님 덕에 <쉿,>이라는 제목의

시산문집을 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상황을 넘어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각성에 대한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그 책에 실린 글 중에 '노인'이라는 제목의 한 줄 시가 있습니다.

 

"노인

 별 위를 걷는 틀니 낀 아이"

 

엊그제 어떤 인터넷 카페에 이 시가 잘못 인용된 것을 보았습니다.

댓글로 시정을 요청하려 했으나 카페 회원이 아니면 댓글을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음' 포털에 시정을 요청하는 글을

보냈습니다.

 

제 시를 잘못 인용한 글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 시를 옮긴 사람은 왜 이 시의 제목을 '노인'이 아닌 '틀니'로 했을까요?

왜 제가 쓰지 않은 문장들을 제가 썼다고 하고

제가 쓴 문장을 바꾼 걸까요?

 

카페의 이름이 '한자 문화 뜨락'이고 

카페 등급이 '실버 50단계'인 것을 보니

나이든 사람들의 모임 같은데

왜 이런 '실수'를 하는 걸까요?

 

이 카페에 올라 있는 글들은 조회 수가 10을 넘지 않는데

이 글은 조회 수 45로 나와 있습니다.

이 잘못된 시가 더 퍼지지 않게

어서 이 글을 내려 주길 바랍니다.

 

 

 

 

문학  틀니/ 김흥숙

 

 

문학

동아리 회원님들의 활발한 활동이 한승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cafe.daum.net

시너먼추천 0조회 4521.10.07 02:0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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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자갈길을
걸어온 흔적

허나 고난의 세월
다시 흐르고

뒤를 돌아다 보니
별 위를 걸어온

꿈길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노인은 별 위에서
틀니 낀 아이.
남의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군요!
별 위를 걷는 것과 별 위에서는 의미가 다른데.....

 
 
 

나의 이야기

dante 2020. 7. 20. 08:39

재작년까지는 대개 7월 10일을 전후해 제 방 책상 앞에서

매미의 첫울음 소리를 들었는데, 작년엔 22일이 되어서야

산책길에서 들었습니다. 그때의 감격을 이 블로그에도

기록해두었습니다.

 

대범한 사람들은 뭐 그까짓 매미 소리를 갖고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제겐 그 소리가 웬만한 친구의 목소리보다 반갑습니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명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얘기하듯, 계절의 침묵은 인간이 스스로 야기한 회복 불가능한

세계를 의미하니까요.

 

인류가 이미 회복 불능 상태에 들어선 것을 생각하면

매미가 울지 않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며칠 전 ‘SBS스페셜’에서 ‘랜덤 채팅 앱’을 통해 만난

남자들에게 매춘을 해서 돈을 벌고 친구들에게 같은 일을

소개하며 수수료를 받는 십대의 여자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며칠 후에는 같은 방송의 ‘궁금한 이야기Y’에서

십대 청소년들을 소위 ‘에미론’ ‘애비론’ 등으로 유혹해

그 집안을 알거지로 만든 ‘김왕관’에 관한 보도를 보았습니다.

겨우 19세의 김왕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소리 없이 빼앗은

그들의 전 재산은 그의 유흥비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이 모든 범죄는 스마트폰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이런 식의 범죄가 거의

불가능했음을 생각하면, 인류는 최신 기술로

지금의 상황을 이루어낸 것이지요.

 

졸저 <쉿,>에도 썼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맹목적 편리와 이익 추구를

멈추라는 죽비일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인류는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선 그린벨트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은 해제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 중에  그린벨트를 해제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자가 많으면 해제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 나라에선 추억 속에서나 매미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그때는 제가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길 빌 뿐입니다.

매미가 살지 못하는 곳은 사람도 살 수 없는 곳일 테니까요.

 

그러고보니 이곳 남쪽에서도 아직 메미 울음 소리를 듣지 못햇네요. 메미도 그렇지만 저희 밭에 있는 딸기나무도 계속 꽃을 내밀고 장마로 인한 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 이상 기후 탓인지 가늠이 안됩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한 구루 청포도 나무도 계속 꽃을 내고 있고요. 제비는 저희 동네 회관 처마 밑에 한 쌍만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있으니 적은 숫자로 어떻게 강남까지 갈 수 있을런지 걱정입니다.
말씀대로 코로나가 마지막으로 경고 하는데도 옛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우린 이제 절망의 시대를 살아갈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입 다물라고 쉿! 하는데도 떠벌이고만 있으니......

 
 
 

나의 이야기

dante 2020. 6. 16. 14:30

수 백 만 명의 독자에게 배달되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제 시산문집 <쉿,>의 일부가 게재된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고도원 선생님께 감사하며 아래 그 내용을 옮겨둡니다.

책 제목 아래의 글은 고 선생님의 글입니다.

 

 

역사가 위로한다

 

낯선 바이러스가 출현하자
저마다 겁먹고 웅크리지만
질병 없는 시대가 있었던가
사별 없는 하루가 있었던가
낯익어지지 않는 낯설음이 있었던가
역사가 위로합니다


- 김흥숙의《쉿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성찰1)》중에서 - 


*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어찌할 바를 몰라 뒤뚱거릴 때
지난 역사를 잠시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보다 더한 시련을 몇 백년 몇 천년 전에
이미 거쳤던 사실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역사가 현재를 견디게 합니다. 
힘을 줍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그렇지요,
언제 인간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한번이나 있었던가요!
하지만 코로나 앞에서 더 맥빠진 것은 나름 인공지능까지 만들어내는 고도의 경지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쓸 수 없이 당하고만 있으니 그런거죠. 암튼 코로나의 반란은 역기능 보다 순기능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김시인님의 성찰도 단단이 한 몫을 하고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