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dante 2021. 2. 15. 11:30

선생님, 백기완 선생님,

 

무슨 말씀을 드리오리까.

 

나라의 퇴행과 타락을 야윈 몸으로 막다 스러지신 선생님.

평생의 짐과 고통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소서.

선생님의 상실이 각성으로 이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래는 선생님의 영면을 알리는 연합뉴스 기사입니다.

'더팩트' 링크를 클릭하면 선생님의 사진 연보를 볼 수 있습니다.

'더팩트' 링크:

https://news.v.daum.net/v/20210215105054451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선생 영면..향년 89세(종합)

정성조 입력 2021. 02. 15. 08:04 수정 2021. 02. 15. 10:16 댓글 4103

 

한국 진보운동 '큰 어른'..1987년 대선서 민중후보 출마
1992년 대선 이후 통일문제연구소 세워 통일운동에 헌신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서울=연합뉴스)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2021.2.1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영면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xing@yna.co.kr

[그래픽]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주요 연보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다시는 시원시원하고 카랑카랑한 백선생님의 사자후를 들을 수 없음이 아픕니다
분단조국의 통일과 민중의 권리,푸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큰 어른이신데 그 자리가 너무 커 보입니다.
백선생님이 지향하셨던 목표와 가치관을 살아남은 자들이 이어받아 수많은 백기완선생님으로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아무 근심 없는 평화의 나라에서 길이 영면하소서! 말씀대로 산 자들이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