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dante 2021. 6. 16. 13:59

거리가 좀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지켜지는 예의가

낯익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흔합니다.

처음 해보는 일을 할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하지만

익숙한 일을 할 때는 건성으로 하다가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 관계, 환경...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편해지면 조심하지 않아

사고가 나고 뒷걸음질 치기 쉽습니다.

 

2021년 여름은 제가 살아온 여러 해 중에 가장 편하고 편리한 해,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무례하고 시끄럽고 건성으로 가득한 해.

그래서 아래 글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송혁기의 책상물림

익숙함을 경계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조선 후기 문인 홍길주가 오랜 지인인 상득용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축하하는 이유가 이상하다. 상득용이 말에서 떨어진 일을 축하한다는 것이다. 뼈가 어긋나고 인대가 늘어나서 꼼짝 못하고 드러누운 채 종일 신음만 내뱉고 있는 이에게 축하 편지라니. 찰과상으로 흉측해진 상득용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지지 않았을까? 사리에 어긋난 일임을 잘 알면서도 홍길주는 자신이 축하하는 이유를 써내려갔다.

 

상득용은 무인이다. 말을 자기 몸처럼 다루며 능수능란하게 타는 것으로 이름이 났으며 본인도 말 타는 능력만큼은 자부하곤 했다. 홍길주는 바로 이 익숙함이야말로 낭패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말 타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고삐를 부여잡고 안장에 바짝 앉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갔을 테니 크게 떨어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워낙 익숙했기에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한밤중에 험한 길을 내달리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낭패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경계는 그렇다 쳐도, 축하할 이유는 무엇일까? 홍길주는

<주역> ‘서합()’ 괘에 대한 공자의 해설을 끌어왔다. ‘서합’ 괘의 첫 효사는 “차꼬를 채워 발꿈치를 상하게 하니 허물이 없다”이다. 공자는 이를 “이익이 없으면 열심히 하지 않고 위협이 없으면 경계할 줄 모르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작은 징벌을 받아 더 큰일의 경계를 삼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당장은 낙마의 고통과 수치가 커 보이지만 이를 계기로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본다면 더 큰 낭패를 미연에 막을 수 있을 테니 참으로 복된 일이다. 이것이 홍길주가 밝힌 축하의 이유다.

 

익숙함에 대한 경계는 낭패를 방지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공자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잃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정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여겼다. 부끄러움에 둔감하고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것 역시 익숙해짐의 결과다. 우리 자신을 이루는 것은 순간순간 별 생각 없이 익숙하게 던지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다. 그러니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대상은 아직 오지 않은 낭패가 아니라 우리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퍼져 있는 익숙함이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6160300045#csidxf53a94bbed66b349780ab6875bb98d1 

지론에 동의합니다
그런데,한 가족처럼 익숙하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날 생면부지의 사람처럼 돌변해 철저히 이기적으로 대할 땐 어쩌죠? 저는 익숙했던 지나날이 다 위선이고 지금의 모습이 본성이라 여겨 화해의 제의를 받지 않고 평범한 관계로 대하고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일곱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행 못하는 저는 기독교인 자격이 없는거죠?

 
 
 

오늘의 문장

dante 2019. 1. 10. 12:00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네 고민이 뭔지 구체적으로 말해봐'라고 할 때

이 말에 나오는 '고민'과 '구체적'은 한자어입니다.


한자어 없이 순수한 한국어로만 말하거나 글을 써야 한다면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쓰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한자는 쓰지 말고 한글을 전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실에서 한자는 사라지고 영어가 국어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자 교육이 꼭 다시 부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수없이 많은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한자를 모르고 가르치지 않는 것도 이상하려니와 

소리글자인 한글과 뜻글자인 한자를 함께 쓰는 것은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지성을 연마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어제 경향신문에서 읽은 송혁기 교수의 관련 글을 옮겨둡니다. 


*사족: 가끔 'SKY 캐슬'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이 블로그를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캐슬은 '성(城)'을 뜻하는 영어 단어 'castle'이고

        SKY는 '하늘'을 뜻하는 영어 단어이거나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의 영문 명칭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소위 일류대학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송혁기의 책상물림]마천과 여주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최상류층 저택 단지에서 입시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드라마 <SKY 캐슬>이 화제다. 과장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 드라마의 웃음 코드 가운데 하나는,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이면서 허당 기질이 다분한 정준호 분 강준상 교수의 행태다. 나의 전공 탓이겠지만,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다. 미리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서 국회의원의 환심을 사려던 강 교수가 한자로 적힌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를 마천 신혁사로 잘못 읽는 해프닝이다.

그러나 ‘驪’와 ‘勒’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시청자라면 그냥 웃어넘기기엔 뭔가 찜찜하다. 한글로 쓰면 될 것을 굳이 한자로 써서 망신을 주는 설정이 와 닿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강 교수의 볼멘 항변에 공감이 간다. “저희 땐 한자를 안 배웠습니다. 학력고사 과목에 없었거든요.” 학력고사 전국 1등의 수재라 하더라도, 대학 입시와 상관없는 내용은 몰라도 당당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국권을 빼앗기고 타의에 강제된 근대화를 겪으면서 한문으로 표기된 전근대 문물은 부정의 대상이었고, 이는 해방 이후 한글 전용의 전격 시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한문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문 교육의 의의와 내용이 실려 있고, 이를 흥미롭게 구현한 교과서들이 나와 있으며, 전공 교육을 충실히 받은 교사들이 양성되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육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대학 입시에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글 전용이 세대를 넘긴 지금, 한문 교육이 우리의 민족 자존감을 무너뜨리거나 전근대적 가치관으로 회귀시킬 것이라 우려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동아시아의 일국으로서 어휘 및 문화 교육의 측면에서 한문 교육의 실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시대다. 교육과정의 선택과목 체계에서 한문과의 위상을 재배치하고, 대학 입시에 편중되는 중·고등학교 시수 편성을 정상화하는 원칙 수립이 시급하다. 대학들도 온전한 고등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한문 실력을 입시 전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 철학과 비전 없이 방향성 없는 경쟁으로만 치닫다 보면, 여주를 마천으로 읽는 실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082038025&code=990100#csidxbc3ec75ebe74777a863e5c5091cdaf7 


 
 
 

오늘의 문장

dante 2018. 2. 1. 11:01

지금 같으면 아예 대학에 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가고 싶은 학교는 성적이 나빠서 갈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권하시는 대로 대학에 갔습니다.


다른 신입생들은 다 그 학교에 오고 싶어서 온 듯 명랑했지만 저는 마음붙이기가 어려웠습니다.

학교 앞 도로 변에 늘어선 양장점과 미용실이 무엇보다 싫었습니다.

4년 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의 양장점과 미용실엔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가고 싶지도 않았고 갈 돈도 없었습니다.


학교 주변의 문제점보다 학교 자체의 장점을 보게 된 건 김옥길 총장선생님 덕택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학교가 한국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을 강조하시며, 그 학교의 학생과 졸업생은 

그 사랑을 갚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떳떳한' 것이라며 언제나 떳떳하게 행동함으로써 

당당하게 살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이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이 학교의 학생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학 중에나 졸업 후에나 늘 떳떳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제 경향신문의 칼럼 '송혁기의 책상물림'에 실린 '당당함의 무게'를 읽으니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 그곳에서도 여전히 당당하고 아름다우시지요?


칼럼의 문패에 쓰인 '책상물림'의 사전적 의미는 "책상 앞에 앉아 글공부만 하여 

세상일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글로 만난 송혁기 교수는 그런 분이 아니니, 

여기서의 '책상물림'은 다분히 반어적으로 쓴 것이겠지요?

 

 

당당함의 무게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895년 4월23일 오후, 자신에 대한 사형 선고문이 십여 분에 걸쳐 낭독되는 것을 다 듣고 난 뒤에 전봉준은 천천히 말한다. “정부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바친다 해도 아까울 것 없다. 다만 나는 바른길을 걷고 죽는 자인데 역적의 죄를 적용한다니 그것이 천고에 유감이다.” 바로 이튿날 서둘러 교수형이 진행되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때가 이름에 천지가 모두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함에 영웅도 어찌할 수 없구나. 백성 아끼고 정의 세움에 나 잘못 없건만, 나라 위한 붉은 마음 알아줄 이 그 누구랴.”

모진 고문으로 인해 혼자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로 끌려나온 전봉준이 의연함을 잃지 않고 또렷한 정신으로 최후진술에 임하는 모습은 참관했던 일본 기자들마저 경탄하게 만들었다. 이 당당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추호의 사심도 없이 정의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내적 성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걸어온 삶이 법에 저촉된다면 죽음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나, 그 죽음 역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지난 29일 자신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이루어진 자리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행한 최후진술에서도, ‘당당함’을 본다. 정치 입장이나 개인 성향은 차치하고, 그의 이 당당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청와대 관행에 따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행했다. 법조인으로 일했던 제가 불법을 동원할 이유는 없었다”는 진술에 드러나듯, 온갖 의혹과 혐의들이 제기되어도 법적으로 문제없음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그는 당당할 것이다. 마지막에 판사에게 당부한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는 말 역시, 무섭게 다가온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와 부끄러움이 전제되지 않는 당당함이라는 것, 그 무게가 얼마나 될까.

전봉준은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릴 일이지, 어찌 이리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죽이느냐”라고 말했다 한다. 그 말은 123년 만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올해 봄 종로1가 거리에 녹두장군의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제 그 당당함의 무게를 겸허한 마음으로 만나볼 일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302053005&code=990100#csidxc5d46aa5c36c40a8056a576398b13a7 


나의 대학 입학식 환영식에서 김옥길 총장의 우렁찬 목소리는 많은 것을 시사했습니다.
'이 자리의 여러분은 선택된 자이고 ,선택된 자는 사회에 빚진 자로 세상의 낮은데의 어둠을 밝히는 낮은 자의 길을 가길 바란다.'라는.지금도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분입니다.
소수의 선택된 자로써 가족 이기주의,인맥 이기주의의 경고를 하셨지요.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되돌아 봅니다......
척양척왜 보국안민! 동학혁명군이 내건 반 외세와 자주국가 건설,,인민의 편안한 삶은 지금도 똑 같이 유효한 목표이고 바램입니다! 동학혁명이 설공하여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외세를 배격한 가운데 자주국가를 세웠다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프랑스혁명보다) 근대국가로 태어났을 것이며 그야말로 생산대중이 주인 노릇하는 최상의 민주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정적일 때 언제나 반민족적인 사대주의자들은 외세를 등에 없고 개인의 영달만 누린 탓에 이렇게 허리는 동강나고 지금도 양키가 쪽바리를 대신해서 우리 민족의 운명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 제발 역사에서 배웠음 좋겠습니다!
어째서 살아 있는 교과서인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