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12. 5. 16. 22:07

몇 시간 전 제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은 '숲' 영어로 'Forest'입니다. 굳이 영어 제목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 시집의 시들이 우리말과 영어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영한대역이라고 하는 형식이지요. 제가 그동안 써두었던 시들 중 짧은 것들만 골라 묶었습니다. 시와 산문을 엮은 책을 두 권 냈지만, 시만으로 책을 낸 것은 이 번이 처음입니다. 


시든 산문이든 쓰여진 글이 모두 책이 되는 것은 아니며, 책으로 태어날 운명이어야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서울셀렉션의 양미순 이사님 덕에 태어났습니다. 그 분이 이 블로그에 올린 제 시를 보고 좋다 하시어 태어나게 되었으니까요. 양 이사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이 책은 한국과 미국에서 판매하는데 국내 가격은 9,500원 미국내 판매 가격은 15달러로 국내에서 더 쌉니다. 대개의 우리 물건은 나라 밖에서 싸고 국내에서 더 비싼데 이 책은 그렇지 않으니, 그 점도 서울셀렉션에 감사합니다. 여기에 '숲'의 서문을 옮겨둡니다.



세상의 모든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람은 누구나 시인으로 태어나지만 자신이 시인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시인임을 알게 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가, 골목을 산책하다가, 오래된 벗과 헤어져 돌아오다가, 견디기 힘든 일을 견디다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 애쓰다가... 그러다가 제 안에서 무엇이 흘러 나왔고 저는 그것을 붙들어 종이 위에 앉혔습니다. 그렇게 저의 시들이 태어났습니다.


어떤 시들은 훨씬 어렵고 긴 연금의 과정을 거쳐 태어납니다. 시인의 종류는 사람의 종류만큼 많고 시의 종류는 시인의 종류만큼 많습니다. 이 책 어디선가도 얘기했지만 ‘시(詩)’는 그 한자가 뜻하는 것처럼 ‘언어의 절간’입니다. 절에는 단청과 풍경(風磬)이 화려한 절이 있는가 하면, 목어조차 없이 단출한 절도 있습니다.


이 시집의 시들은 아무래도 후자입니다. 문도 담도 없고 절집마저 없이 나무 한그루, 샘 하나만 있는 절터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들고나며 앉았다 서성였다 할 수 있는 곳이지요.


이 짧은 시들이, 자신이 시인임을 잊고 사는 분들을 일깨웠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쓰거나 쓰지 않거나, 쓴 시를 책으로 묶어 출판하거나 하지 않거나, 우리는 모두 시인입니다. 이 책은 한 시인이 세상의 모든 시인들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받으신 분들이 가능한 한 많은 ‘언어의 절간’을 세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쓰는 일은 세상의 악화를 막는 가장 아름다운 노력이니까요.


흩어져 있던 문장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주신 서울셀렉션의 김형근 대표님과 편집자 김유진 씨, 디자이너 이복현 씨, 국문과 영문 원고를 대조해가며 보아주신 콜린 모우엣 씨, 영문 시 감수를 맡아주신 아이네스 민 씨, 그리고 이 시집을 낼 수 있게 영감을 주신 양미순 씨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합니다.


Preface: A Letter to All the Poets of the World


All people are born poets but many of them are not aware of the fact. only a few realize that they are poets and then often only by chance. I think I am one of them.


While reading a book by the window, while strolling around neighborhood alleys, while parting with an old friend, or while putting up with something intolerable or struggling to understand something incomprehensible, I found words flowing out of me and committed them to paper. That is how the poems in this book were born.


Some poems come to life after a much longer, more complicated process of alchemy. Poets are as varied as people and poems as varied as poets. As is written somewhere in this book, the Chinese character for poetry, “詩” depicts a "temple of words."


Some temples are colorful and have charming wind chimes whereas others don't even have wooden fish to their name. The poems in this book belong to the latter group. The temple here may be a simple ground without gates, walls or even a house. It may have nothing more than a tree and a fountain, where anyone is free to enter or leave, sit or walk around.


Though they are short, I hope these poems will help people realize their true identity as poets. We are poets whether we write poems or not, whether our poems are published or not. This book, then, is a letter from one poet to all the poets of the world. I hope those who receive it will build as many of their "temples of words" as possible, for writing poetry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ways of saving the world from becoming a darker place.


For their help in bringing these poems together from across my several notebooks, I wish to express my deep appreciation to Kim Hyung-geun, CEO-President of Seoul Selection, and his staff -- the publishing coordinator, Eugene Kim; the designer, Lee Bok-hyun; and Colin Mouat, who compared the Korean and English versions. I would like to express special thanks to Ines Min, who did the final copy reading of the English version, and Yang Mi-soon, who inspired me to have these poems published.

 

 
 
 

나의 이야기

dante 2011. 3. 5. 09:05

제게 커피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믿음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으니까요. 특히 블랙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저 사이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정한 커피가 추억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와 마시던 커피 생각이 먼저 납니다.

 

1980년대 중반 언론의 자유를 저당잡힌 상태에서 기자 노릇을 하던 시절, 저와 같은 출입처를 출입하던 다른 신문사 기자가 안기부 (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 고문을 당하고 나왔습니다. 고막을 다쳐 이비인후과를 드나들던 그 친구가 병원 가는 길에 한 번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종로 어디쯤 작은 이비인후과에 들어가 치료를 받는 동안 저는 그 건물 지하의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침 시간인 만큼 지하 커피숍은 텅 비어 있었고 주인인지 바리스타인지 한 사람만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메뉴판엔 수십 가지의 커피가 있어 이름값을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집 이름이 '커피 커피'였거든요. 거기서 마셨던, 계피가루를 살짝 뿌린 모카 커피의 맛, 제 잔이 빈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도 하기 전에 다시 정성껏 한 잔 내려다주던 바리스타가 지금도 종종 생각납니다. 

 

다 자라 만난 후배의 아내 미순씨와 각별한 사이가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두 사람이 다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는 점일 겁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다 별로 튼튼한 위장과 몸을 갖지 못해 가끔은 아무리 마시고 싶어도 진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연민과 우정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외출이 뜸한 제가 어쩌다 시내에 나가면 종착지는 대개 미순씨가 일하던 사간동의 서울셀렉션 북카페였습니다.

 

지난 가을 미순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니 제 갈 곳 하나가 줄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도 그가 없으니 커피 맛까지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밥맛도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더니 커피맛도 그런가 봅니다.

 

'커피 커피'의 바리스타처럼 미순씨도 제 마음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언제부턴가 그가 어바인에 있는 '피츠 커피 (Peet's Coffee)'의 커피를 보내줍니다. 엊그제도 두 봉의 커피가 왔습니다. 맛을 비교해보라는 짤막한 메모가 미순씨 얼굴처럼 반가웠습니다. 집에 커피 많이 있으니 보내지 말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착하고 순한 미순씨가 이 일에 관해서만은 제 말을 듣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나 봅니다. 태평양을 건너온 원두의 향에 취해 마시기도 전에 행복했습니다.

 

어떤 상대를 좋아하면 그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피츠 커피'가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 집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후 미국으로 이주한 네델란드 사람인 알프레드 피트 씨가 첫 번째 가게를 연 것이 1966년, 지금은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일리노이, 매서추세츠, 오레곤, 워싱턴 주 등에 피츠 커피가 있다고 합니다. 스타벅스의 창업자도 '피츠 커피'에서 커피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피츠 커피'를 받아 그 향기를 맡을 때, 그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릴 때, 완성된 커피를 마실 때, 미순씨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도 지금쯤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을까, 몸의 형편이 진한 커피를 마실 만 할까... 커피는, 선물은, 받은 사람 속에 자꾸 제 영토를 확장하는 나무입니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미순 나무'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