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1. 1. 2. 17:31

어머니 댁 현관에서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설 때면

늘 슬픔이 솟구쳐 오릅니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서입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밖에서 딸들을 만나 점심을 드시던 어머니이지만

확진자가 천 명을 넘어서니 자녀들 모두 외출을 자제하시라고

권했습니다. 

 

'집안에만 있으면 갑갑해서 생병이 나는' 어머니이시니

우리집에서라도 점심을 드시겠느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반색을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12월 마지막 두 번의 토요일에 이어 오늘도

어머니는 우리집에서  점심을 드셨습니다.

원래 솜씨가 좋으신지라 남이 하는 음식은

성에 차지 않는 분인데, 처음 점심을 드시러 오셨을 때는

칭찬이 후했습니다. 

 

엊그제부터 허리가 많이 아프셨다더니

그 고통 때문인지, 오늘은 들어오실 때부터 표정이

밝지 않으셨습니다. 식탁에도 늦게 앉으셨고

국을 한 술 뜨시자마자 싱겁다며 소금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잘하는 사람은 쉽게 하는 일도 못하는 사람에겐 힘이 듭니다.

저는 솜씨가 어머니 같지 않아 반찬 없는 점심 한 상을

차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몸도 좋지 않아

어젠 종일 누워 있다시피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 싶어 부엌에서 종종거렸는데 어머니가

불만스런 표정을 하시니 기분이 나빠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해 바뀌며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든 최선을 다하리!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신 어머니가 "거실 바닥이 따뜻하네"

하시는데, 눕고 싶다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누우시라고 베개를 놓아드리니 못 이기는 척 누우셨습니다.

어머니가 우리집에서 드러누우신 것은 처음입니다.

허리가 얼마나 아프시면 저러실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머니 얼굴에 햇빛이 비쳐 눈이 부실까 염려했더니

온몸에 햇빛을 쪼이니 좋다며 "너, 이담에 늙어도 이 집에서 살아라" 하고

웃으셨습니다. 아흔 넘은 어머니의 눈엔 일흔 가까운 딸도 아직 노인이

아닌가 봅니다. "엄마, 저 이미 늙었어요. 저도 법적인 노인이에요" 하자,

다시 희미하게 웃으셨습니다.

 

한참 누워 계시다 일어나신 어머니는 허리가 좀 나아지신 듯

표정도 밝아지셨습니다.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마트에 들러

좋아하시는 밤을 산 후 어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현관에 밤을 놓고 어머니를 배웅했습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칭찬은 안 하셔도 좋으니 부디 아프지만 마셔요!

 

 

  

 

 

   

부럽습니다.모친께서 생존해 계시니. 저희 어머닌 아버님 보다 7년 먼저 돌아가셔서 어언 29년이 흘렀네요.바로 동네 뒷산에 모셨지만 지척인데도 잘 찾아뵙지 못하내요. 돌아가신 다음엔 마음 뿐이니 살아 생전에 살갑게 대하세요~~~^^ 잘하고 계시지만......

 
 
 

나의 이야기

dante 2017. 8. 28. 08:31

누군가를 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하는 행동이나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대륙과 같아 그의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60여 년을 함께 산 사람으로서, 어머니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저녁에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둘째 아우와 제 생일이 임박하자 어제 어머니가 저희를 호텔 레스토랑으로 초대하셨습니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생각 깊은 아우는 제게 줄 꽃다발과 함께 

한여름에 두 딸을 낳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께 감사하는 꽃다발도 준비해왔습니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주는 축하 금일봉과 함께 당신이 아파트 마당 화분에서 키운 조선 호박도 한 덩이씩 주셨습니다.

여든여덟 해의 무게에 호박 두 개의 무게까지... 그 짐을 모두 들고 언덕 위의 호텔까지 걸어오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색은 않고 속으로만 울었습니다.

생맥주 500 cc를 나눠 마신 덕에 세 모녀는 시종일관 웃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일요일 점심을 함께 했지만 어제 저녁은 그 어느 점심 때보다 즐거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어머니는 가수입니다.

음반을 내거나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돈을 번 적은 없지만 노래를 아주 잘하십니다.

지금도 일 주일에 네 번이나 노래교실에 가십니다.

가족 모임이 끝나고 나면 어머니는 으레 노래방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족들 중엔 어머니처럼 노래방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어머니의 제안은 늘 거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어제 저녁 어머니가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조금 더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노래방에 모시고 가고 싶었습니다.

호텔 직원에게 들으니 호텔엔 노래방이 없고 호텔 문밖 길 건너편에 노래방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침 그 길은 어머니가 댁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주 잘됐다고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노래방에 가시자고 말씀드렸습니다.

함박웃음을 웃으며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노래방?" 하고 미소를 지으실 뿐 가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 딸들을 배려해서 그러시는가 하고 재차 졸랐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안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부른 배를 안고 호텔 마당을 걸어 내려가면서야 왜 안 가시려 하는지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든다섯까지만 해도 노래를 할 수 있었는데 노래가 안 나오더라고.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아예 안 나와.

이젠 노래 못해.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봐, 뭔가가 없어져 버린 것 같아." 

어머니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심상하게 말씀하셨고, 저도 "그러실 거예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드렸지만 제 가슴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습니다.


이년 전 아버지를 잃고 한동안 나가지 않으시다 다시 노래교실에 다니시기에 이제 좀 살만 하신가 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지나가듯 하시던 말씀 같았나 봅니다.

"지금 아버지 옆으로 가면 제일 좋겠어. 그렇지만 어떡해? 죽어지지 않으면 살아가야 하잖아?" 


노래를 하지 못하면서 노래교실에 나가시는 어머니... 자식들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어머니가 기울인 그 모든 노력,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기 위해 기를 쓰고 살고 계신 어머니...


저는 어머니를 모릅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육십 년어치 만큼 어머니를 모릅니다.

모르면서 사랑합니다. 이 사랑도 사랑일까요?

 

 
 
 

tbs 즐거운 산책

dante 2016. 1. 24. 12:17

오늘 아침 서울 기온이 영하 18도, 체감온도는 25도였다고 합니다. 바닥을 친 수은주가 이제 차츰 올라 열흘 후면 입춘이 오겠지요. 추위에 지지 마시고 이기려고도 마시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tbs '즐거운 산책(FM 95.1MHz)' 시간에는 Elton John의 'Believe', the Platters의 'My Prayer', 최진희 씨의 '어머니', Ace of Base의 'C'est la Vie'도 들었습니다. 3부 '고전 속으로' 시작 전엔 1956년 영화 '전쟁과 평화'에 나왔던 쇼팽의 '화려한 대 왈츠(Grande Valse Brillante: Waltz No. 1 E flat major: 왈츠 1번 내림마장조 작품번호18)'를 듣고,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습니다.


새해 벽두 북한의 수소탄 실험으로 더욱 악화된 남북관계와 기다렸다는 듯 B-52 폭격기를 띄우는 미국 정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사드(THAAD)'를 들여오자는 사람들... 그러나 사드는 긴장을 증폭시킬 뿐 완화시키는 것은 아니지요. 대통령과 장관들 등 권력 가진 사람들과 재벌기업들의 임원을 비롯한 돈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위해 거리에서 빌딩에서 인터넷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는 기상천외한 나라... 제 정신을 유지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전을 읽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인 세 명 중 한 명은 지난 일년 내내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물리친 것은 러시아의 깨어 있는 민중이라며 민중을 찬양했는데,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페레스트로이카 초입, 출장 중에 모스크바에서 본 풍경이 떠오릅니다. 물건을 사기 위해 눈 덮인 길에 서 있던 시민들 대개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일본 출장길에 온천 마을 벳부에서 본 풍경도 떠오릅니다. 온천으로 먹고 사는 동네에 아주 큰 서점이 있었고 그 서점엔 밤에도 손님이 많았습니다. 


겨울은 추워서 바깥 활동에 제약이 많으니 책 읽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쉬운 책보다는 어려운 책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쉬운 책은 고작 자기를 확인하게 하지만 어려운 책은 뇌의 근육을 키워주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니까요.

<전쟁과 평화>는 어렵진 않지만 길어서 --다섯 권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 읽기 어려운 책입니다. 대학생이라면 <전쟁과 평화> 요약본 원서를 읽어도 좋겠지요. 요약했다고 해도 500쪽이 조금 넘지만. 


2016년 시작과 함께 세상을 등지는 록커들이 많습니다. 지난 19일에는 Eagles의 보컬이며 기타리스트인 Glen 

Frey가 타계했습니다. 그를 생각하며, Eagles의 'Hotel California'도 들었습니다. '오늘의 노래'에서는 '상선약수'를 모토로 사시다 떠나신 신영복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문세 씨와 조영남 씨가 함께 부른 '흐르는 강물처럼'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추위를 이기자는 의미로 Pete Seeger의 'We shall overcome'을 들었습니다. 


아래에 제 칼럼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세상의 모든 딸들'을 옮겨둡니다. 한때 딸이었던 사람이 어머니가 되고 그 어머니가 다시 딸을 낳고 그 딸이 다시 어머니가 되는... 이 아름다운 뫼비우스의 띠가 '세상의 모든 딸들'을 하나로 엮어줍니다.


세상의 모든 딸들

 

어머니는 여든일곱에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 비결은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신 적은 없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그냥 압니다.

 

사소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점심을 먹고

잠시 걷다가 예쁜 카페에 들어갑니다.

카페의 여주인이 어머니와 따님이 함께 계시니 참 보기 좋은데

저는 아들뿐이니 어쩌죠?”하며 서운한 듯 웃습니다.

 

제게도 아들뿐이지만 딸 있는 사람이 부럽진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내 어머니처럼 생각하듯

세상의 아들딸들을 다 내 아이처럼 생각하자고

마음먹어서일까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합니다.

버스의 노약자석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젊은이가

서 계신 어머니를 뒤늦게 보고 일어납니다.

역시 우리 아들입니다.

 

마침내 헤어질 시각, 어머니는 잘 놀았다며 행복해 하십니다.

선물은 무정한 사람들도 주고받으니 선물 때문에 행복하신 건 아니고

딸이었던 어머니가, 어머니가 된 딸과 함께 한 시간,

사랑을 주고받은 그 시간이 행복하신 거겠지요.

 

막 헤어진 어머니가 벌써 그립습니다.

........................좋은 시간을 가졌군요. 행복 만들기를 해야 되는 지금의 나이가 편안해서 좋습니다
젊은 날의 열정과 냉정이 생각나고 따스함이 전해짐니다.
건강하셔요!..
와우~ 덕희님, 넘 오랫만에 짠~ 하고 등장하셔서 방가방갑슴다~~^^
김 시인님의 주옥같은 블로그에 자주 들리셔서 댓글도 좀 달아주시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실패가 광활한 영토와 추위 때문인줄만 알았는데 러시안인들의 높은 의식도 한 몫 했군요? 그나저나 울나라 사람들 지독하게 책하곤 거리가 먼 것 같아욤~~ 엄마와 동행하는 딸,딸과 동행하는 엄마 참 좋은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