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19. 10. 30. 07:41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수희가 이맘 땐 아예 떠나지 않습니다.

제 몸무게쯤 될 수박을 들고 평창동 언덕길을 올라오던 모습과

단양 사과밭 사이 오두막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모습이

자음과 모음처럼 만났다 헤어졌다 합니다.


"저예요." 전화선을 타고 오는 그의 정갈한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그를 보낸 후 한동안 새벽 어스름 집안 곳곳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수희는 제가 잃어버린 첫 친구입니다. 그는 사십 대에 이승을 떠났습니다.

저는 강남의 삼성의료원을 싫어합니다.

그 병원에선 수희가 제 발로 드나들던 때엔 병명도 찾아내지 못하다가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일이 없으니 퇴원하라고 할 때에 이르러서야 혈액암이라 판정했습니다.


수희만큼 그리운 건 인숙입니다.

손수 키워 다듬고 씻어 보내주었던 대파가 생각납니다.

저는 본래 초록에서 하양으로 가는 대파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그의 대파는 제가 본 그 어떤 대파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장협착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인숙이 병원에서 한 달이나 머물다 패혈증으로 숨졌을 땐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생애 처음으로 심장CT를 찍기도 했습니다.

저는 행당동의 한양대학교 병원을 싫어합니다.

인숙이 숨진 건 의료사고라고 생각하니까요.


육십여 년 생애 동안에 좋은 친구들을 만난 건 큰 행운입니다.

매일이 버거워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노인들의 키가 자꾸 줄어드는 건 추억의 무게 때문일 겁니다.

특히 이승을 떠나간 친구들이 가슴 속에 남기고 간 무덤 때문이겠지요.


떠나가는 사람이 늘어나니 무덤의 무게도 늘어납니다.

나날이 걸음을 옮기기 힘들어지다가 어느 날 마침내 그들을 따라가겠지요.

떠난 후에 누군가의 가슴에 무거운 무덤을 남겨 그의 키를 줄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새가 되어 날아간 김흥숙처럼 남는 친구들의 삶도 오히려 가벼워지면 좋겠습니다.  


아,40대에 친구를 잃으셨군요...
지역 후배가 좀더 일찍 양파껍질환을 만들었음 좋았을텐데~~
양파를 껍질채 발효시켜서 환을 만들었는데 퀘르세틴 함량이 증폭 되고 체내 흡수율이 높아 암 환자는 물론 백혈병 환자들에게도 효험이 있답니다. 고혈압,당뇨에도 특효가 있구요.이런 질병으로 더 이상은 지인 분들 떠나보내지 마시고 연락 주세요~~~^^ 추억의 무게를 덜어버리고 가볍게 사시길!

 
 
 

나의 이야기

dante 2011. 12. 9. 08:52

눈이 날립니다.

하늘에 사는 내 친구의 엽서입니다.

‘잘 있어요? 전 잘 있어요.’

 

예의바른 인사는 일 년처럼 짧지만

쓰여지지 않은 그리움은 추억처럼 깁니다.

 

‘저도 잘 있어요. 밥 먹고 잠자고 똥 싸니

온몸 가득 무엇이 자라고 있어요.’

 

몸은 마흔에 만나 쉰도 못되어 헤어졌지만

마음은 한 삼백년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창문으로 달려드는 눈잎마다 하얀 웃음 묻었습니다.

‘천천히 와요, 호 호, 내가 남긴 밥까지 먹고 와요.’

 

매일 행주를 삶던 친구는 서둘러 하늘로 가고

행주와 양말을 함께 세탁기에 넣는 저는 남았습니다.

 

눈이 날립니다.

하늘에 사는 내 친구가 세상을 닦고 있습니다.

‘수희씨, 부지런한 손 그만 쉬어요!’

 
 
 

나의 이야기

dante 2011. 6. 18. 11:51

컴퓨터 바탕화면이 군자란에서 재스민으로 바뀌고 나니 제 마음까지 달라집니다. 주홍 큰 꽃이 화려하고 짙푸른 잎이 넓직한 군자란을 대하면 저도 모르게 기가 솟곤 했는데, 보라색 재스민 꽃과 손톱보다 조금 긴 작은 잎들을 보면 들떴던 마음도 가라앉습니다. 마음이 시선을 좌우하는 일이 적지 않지만 눈이 마음을 지배하는 경우도 그에 못지 않은가 봅니다.  

 

사람도 군자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스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파바로티의 아리아들을 들으며 그가 군자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는 그 어느 테너로도 메꾸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장수의 시대에 겨우 72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으로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그의 이른 죽음을 생각하다 그보다 더 먼저 떠난 제 친구를 생각합니다. 기품있으나 재기어린 미소를 담고 있던 눈빛, 색으로 표현하면 꼭 저 재스민 꽃빛입니다.

 

군자란이든 재스민이든, 군자란 같은 사람이든 재스민 같은 사람이든,  살아있는  존재는 무엇이나 죽음에 이르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삶은 끝나지 않습니다. 지구처럼 크고 아름다운 수박을 들고 하늘하늘 언덕길을 올라오던 제 친구도 여전히 제 기억 속에 푸르게 살아 있습니다. 오수희, 여전히 아름답구나, 재스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