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ante 2021. 4. 11. 08:24

한때는 어네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1961)를

좋아했습니다. 장식적이지 않은 문체가 좋고 작품 속에 녹아 있는

무수한 경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의 작품에 넘쳐흐르는 남성성을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좋아했던 소설들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졸저 <우먼에서 휴먼으로>에서 남자든 여자든

적어도 갱년기 즈음부터는 성적 이분법(man, woman식 구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썼는데, 헤밍웨이는 죽을 때까지

소위 '상남자'였습니다.

 

이제 제가 읽을 수 있는 헤밍웨이의 작품은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뿐입니다. 이 작품에도 헤밍웨이의

'상남자' 기질이 남아 있지만 젊어서 쓴 작품들만큼 심하진

않습니다. 

 

이 중편소설은 그가 만 52세이던 1951년에 쓴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성숙도가 달라짐을 생각하면 그때의 그는

요즘의 일흔쯤 될 것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늙은 어부 얘기를 읽다 보면 가끔 눈이 젖습니다.

 

조금 아픈 사람은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말하지만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은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통증이 너무 커서 '아프다'는 말이 새어나가지 못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노인과 바다>는 통째로 아픈 사람 같은 작품입니다.

꼭집어서 이 문장이 슬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읽다 보면 눈이 젖습니다. 

 

1973년 대학 일학년 때 만난 펭귄북스의 <The Old Man and the Sea>는

누렇고 바랜데다 자꾸 한 장씩 떨어져 테이프로 붙여가며 읽습니다.

가끔 궁금합니다. 그때의 저도 이 책을 읽다가 눈이 젖곤 했는지...

 

p. 40

No one should be alone in their old age, he thought. But it is unavoidable.

(늙은이는 혼자 있으면 안돼. 그러나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이야.)

 

p. 93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순 있어도 패배할 순 없어.'

 

p. 94

It is silly not to hope, he thought.

(희망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나의 이야기

dante 2019. 1. 12. 08:25

새해 들어서고 12일 째, 오전 8시가 지났지만 하늘은 아직 밝지 않습니다.

새로 선 아파트들이 산의 능선을 지우고, 욕망으로 색칠된 도시는 참으로 추레합니다.

욕망을 이룬 사람들과 이루지 못한 욕망으로 달아오른 사람들이 도시를

추레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세상이야 어떻든, 저는 저 자신이나 단속해야겠습니다.

보이는 추레함 너머 보이지 않으나 항존하는 아름다움을 향해 계속 걷고 싶습니다.

졸저 <우먼에서 휴먼으로>에 썼던 열두 가지를 기억하면서.


1.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정말 중요한 일이 무어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무언지 구별할 것.


2. 무슨 일을 하든 이 일이 의미 있는 일인가, 옳은 일인가 생각할 것.


3.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할 것.


4. 질투하지 않을 것.


5.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할 것.


6. 말을 줄이고 잘 볼 것.


7. 걱정하지 않을 것.


8. 한결같은 태도를 가질 것.


9. 누구에게나 친젏할 것.


10. 미워하지 않을 것.


11. 몸과 마음을 분리할 것.


12.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

여기에 하나 더 붙임, 불의를 보면 분노할 것!~~~~^^

 
 
 

나의 이야기

dante 2013. 8. 11. 11:10

조금 전 인터넷판 연합뉴스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평균 49세에 폐경을 맞는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국립보건연구원의 폐경 여성 실태 조사 결과, 폐경은 기억력이 떨어지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수반해 삶의 질을 낮추지만, 폐경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준비 없이 폐경기에 들어서는 여성이 많다고 합니다.


졸저 <우먼에서 휴먼으로>에도 썼지만, 폐경은 여성이면 누구나 겪는 생의 한 과정입니다. 사춘기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갱년기가 오고 월경이 끝나는 시기가 옵니다. '폐경을 했으니 이제 인생이 끝난 것이다'라고 우울해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유치한 것입니다. 폐경은 '가임기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생의 끝'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임신의 가능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되니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하는 시기입니다.


폐경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라고 하지만, 폐경기에 겪게 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다룬 책은 무수히 많습니다. 책을 보기 싫은 사람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만 방문해도 수많은 정보와 만날 수 있습니다. 


삶은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들은 결국 '자기 밖의 변화'와 '자기 안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밖'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나 혼자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안의 변화'는 자기에게 달린 것입니다. 그 변화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뒷걸음질치기도 합니다. 


기억력이 저하되면 '그래, 이제 쓸 데 없는 것들은 좀 잊고 살자'고 생각하고, 피부가 건조해지면 '젊어서는 괜찮다가 이제야 건조해지니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젊을 때보다 피곤하면 '나이들었으니 더 피곤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까지 지치진 않습니다. 


가임 상태로 들어가며 겪는 월경처럼, 그 상태를 벗어나는 폐경 또한 여성이 동물(생물)로서 자연히 겪는 과정입니다. 폐경은 21세기 초 한국의 여성들이 처음 겪는 신체의 변화가 아니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어 지구상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경험이라는 거지요. 


아침이 오면 해가 뜨고 저녁이 오면 해가 지듯 자연스러운 일들, 자본주의 사회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조차 요란하게 반응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런 풍조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마흔아홉이든 쉰아홉이든, 폐경을 맞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월경기보다 자유로워진 폐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길 바랍니다.